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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SS = Evolutionary Stable Strategy 진화적으로 안정된 전략 독중감 제5장은 해도 해도 할 말이 끊이지 않는다고 처음에 말했다. 내가 어릴 때부터 직접 겪거나 목격한 사례를 중점적으로 넣었지만, 근년의 대한민국 돌아가는 꼴을 지켜보면서 느낀 소감, 그리고 독중감을 연재하는 기간에 발생한 일까지 넣다 보니 제5장만 해도 무려 300쪽 가까이 되었고 따라서 대폭 추려서 정리해야 했다. 그저 사사로운 포스팅이라면 다 집어넣어도 좋겠지만 이것은 과학서적의 독중감이고, 또한 5장만 너무 길어지기 때문이다. 제5장은 너무 길어서 그 자체로 ‘연재’를 하게 되었는데, 그 긴 기간 동안 몇 번이고 되짚어 보면서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나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법치사회에서는 규정 준수야말로 가장 강력한 무기라고 몇 번이나 강조했는데, 조직성이 매우 강한 군대와 직장에서의 경험담에 적용시켰다. 사실 규정 준수와 관련해서는 남은 이야기가 더 있었다. 그런데 문득 그것을 유전자 레벨, 혹은 생물 개체 레벨과 연계시켜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진화적으로 안정된 전략’, 즉 ESS이다. 제5장 독중감에는 ESS에 관한 내용도 써 두었지만 유전자와는 반대되는 이야기였다. 지금까지 나는 온통 청개구리 기질로 살아왔고, 그것은 어린 시절부터 비롯되었다. 남들과 다른 시도를 해서 성공한 사람들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동종의 사업을 하면서 남과 차별화를 해서 훨씬 큰 이익을 올린 사람들의 사례를 어린 시절에 종종 목격했다. 이런 점은 제5장 독중감 초두에서 ESS와 관련하여 잠깐 언급하기도 했다. 따라서 애초 여기에 쓴 ‘사회적 ESS’ 이야기는 유전자 레벨과는 정반대의 것이었다. 그런데 연재를 하면서 ‘규정 준수’라는 행위에 주목한 것이다. 그런 까닭에 애초 써 두었던 이런저런 ‘반(反) ESS’ 사례는 생략하고, 규정 준수 이야기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사회적 동물들은 본능에 의한 나름의 조직적 체계를 갖추고 있다. 먹이 먹는 순서니, 머리 조아리기니, 개과 동물처럼 강자 앞에서 드러누워 배를 드러냄으로써 굴복을 표명하는 것 등이 그렇다. 그러나 그 동물들은 말 그대로 거의 ‘본능적’이며, 스스로의 행동을 성찰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뇌적인 동물인 인간은 그렇게 할 수 있고, 매 순간마다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 되돌아볼 수 있다. 그리고 뇌 스스로가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 낸다. 문화권마다 예절과 법도가 크게 다르다는 점이 가장 단적인 예이다. 유전자 레벨에서 공격적인 매파와 방어/회피적인 비둘기파 중 어느 쪽이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가. 이 문제는 제5장 첫 회에서 말한 바 있다. 결국은 진화적 안정성으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보복파야말로 유일한 ESS에 해당한다고 했다. 인간 사회에서는 바로 그 법도와 규정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ESS에 해당한다. 쓸데없이 싸움을 하지 않지만, 공격을 당했을 때 필요하다면 반격을 가하는 것, 바로 법규를 잘 지키는 것이다. 물론 인간 사회에서의 반격이란 꼭 주먹질이 아니고 온갖 방법이 있다. 고소를 하여 상대를 구속시키는 것도 일종의 반격이다. 다만 인간은 개인 차원을 넘어 ‘자신이 포함된’ 사회 전체를 어지럽히는 자도 법의 심판을 받게 할 수 있는데, 범법자 신고가 거기에 해당한다. 범법자가 활개를 치지 못하도록 해야 궁극적으로는 자신도 안전하기 때문이다. ‘배운 대로 행한다’는 사고가 뇌에 박힌 나는 반은 조폭 집단 같은 군대에서나 혹은 윗사람 눈치를 보는 직장에서나 되도록 규정과 원칙에 충실하려고 했는데, 그런 까닭에 어떤 마찰과 충돌에서 불리한 경우가 거의 없었고, 또한 눈치를 볼 필요가 없으므로 다른 구성원들보다 뇌가 훨씬 편했다. 뇌가 편하니 군대에서는 괜스레 남을 괴롭힐 필요가 없고, 직장 시절에는 회사 일로 밖에서 푸념하거나 술김에 남과 문제를 일으킬 일도 없었다. “규정대로 실시!” 지난번에 타 부서원과의 숱한 마찰이나 부서 상사, 임원, 혹은 막강한 파워를 가진 관리부서 상사 등과 충돌한 사례를 다루었다. 그러면서도 잘 ‘살아남고’(크학학!) 오히려 점점 부서의 주요 업무를 맡게 되었다. 그 비결은? 독중감 연재 초부터 종종 언급한 ‘규정 준수’이다. 규정대로 한다. 즉 회사 규정에 없는 상사의 입김이나 권위주의, 압제 등등은 절대 따르지도 않고 굽히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너무 딱딱하면 부러진다. 앞의 직장 사례에서도 보았듯이, 부러지지 않도록 먼저 인정할 건 하고 이유를 다는 등의 방식은 사실상 어릴 때 미국(또는 독일) 영화를 통해 배웠다고 할 수 있다. ※ 다른 경로로는 외국 문물을 접하기 어렵던 시절이라 주로 영화로 배웠다. 이런저런 책을 통해서도 온갖 고전적인 일화를 접하고 그 역시 지침으로 삼아 뇌에 새겨두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현대사회에 적용하기에는 영화가 훨씬 가까웠다. 전제주의 시대의 ‘모범적’ 일화는 아무래도 현대 시스템과는 거리가 있으니까. 즉 서구 시스템의 좋은 점을 받아들여서, 그대로 행했다는 것이다. 어차피 대한민국 기업도 미국 시스템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특히 첨단 기업은 더욱 그렇다. 그렇다면 그대로 하면 된다. 회사가 무슨 종친회도 아니고 전통행사 자리도 아닌데, 그렇다고 깡패집단도 아닌데, 그런 짬밥이나 계급으로 누르려 하는 사고에 매일 필요는 없다. 독일군은 그 진저리나는 2차 대전 당시의 제국주의 시대에도 항명권이 있었다고 한다. 상관의 무모한 명령을 거부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그 항명이 정당한지는 군사재판을 통해 확인하고, 정당했으면 무죄가 된다고 한다. 그러한 사실은 훗날 누구에겐가 듣고 알았지만, 어쨌든 어린 시절에 영화를 통해 상관의 명령에 거역하는 제국주의 시대 독일군의 모습에서도 배운 것이 있었다. 하물며 제국주의 시대의 치열한 전쟁터도 아니고, 현대의 회사에서 그렇지 못할 일이 무엇인가. 일본인들은 “사업은 전쟁”이라고 부르짖는다고 한다. 물론 그 말도 어떤 의미에서는 맞는다. 그렇지만 사업에서 자기 머리를 향해 총알이 마구 날아오고 사방에서 포탄이 터지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따라서 계급주의에 너무 매이면 안 된다. 작년에 군대 문제 관련하여 엠블에서 이런 얘기를 한 적 있다. 만약 대한민국 군대가 복무규정을 그대로 준수했다면, 나는 그 3년을 소림사에 들어가 무술을 수련하는 기분으로 행복하게 지냈을 것이라고. (물론 다른 이들은 전혀 별개이고 그저 내 기준일 뿐이다.) 따라서 군대는 운동선수 집단처럼 바꾸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단, 나이 등을 내세워 짓누르고 구타하는 대한민국식 시스템은 제외다. 축구감독 히딩크도 맨 처음에 한국 대표 팀을 맡았을 때 그 ‘나이 계급주의’ 문제부터 척결했다고 하지 않는가. 썩은 똥배짱이나 자존심보다는 규정대로 하는 것이 가장 마찰도 줄이고 시스템이 원활하게 돌아간다. 그러나 어디에나 물을 흐리는 자들이 있고, 그러다 보면 나중에는 잘못된 것이 정상처럼 되어 버리기도 한다. 당장 군대라는 조직이 대표적이었다. 선임병이 쫄따구를 구타하고 갈취하는 것 말이다. 또한 그 속 좁은 우물 안 근성은 아주 지독해서 편을 가르고, 가르고, 또 가른다. 앞에서 군대 관련하여 두 가지 심각한 문제를 말했었다. 후반기 교육에서 동기들끼리의 패권다툼, 인터넷의 특정 병과 동호회에서 전역병들의 서로 헐뜯기, 정말 한심스러움의 극치이다. 그밖에도, 내가 군대에 있을 때 보면 온갖 우물 안 근성이 심했다. 한 내무반에서 같이 생활하면서도 기갑병(장갑승무)은 쫄따구에게 보병 고참에게 경례를 하지 않도록 가르친다. 당연히 보병도 그렇게 가르친다. 또한 보병끼리도 마찬가지다. 옆 소대 고참에게는 경례를 하지 않는다. 즉 병들 사이에 군기는 소대 단위로만 행해진다. 문만 열면 바로 옆 소대라서 날마다 얼굴을 보는데도. 이러한 보병과 기갑병의 알력은 애초 ‘더부살이’를 하는 소수의 기갑병이 먼저 만들어 낸 것인데, 결국은 자신들만 피곤하게 만든다. 다른 병과에 끼어 살면서 화목한 교류를 거부하니 우물에 갇히는 것은 그 자신들이다. 당연히 스트레스도 훨씬 높다. 그 어디에서나 다수에 끼어 사는 소수는 아무래도 자기들끼리 똘똘 뭉칠 수밖에 없는데, 그런 까닭에 수적으로는 열세이면서도 훨씬 막강하다. 그러나 ‘열세’라는 말 자체가 우스운 것이다. 도대체 무엇이 우세이고 무엇이 열세인가. 애초 마음 탁 트고 허물없이 지내면 그런 개념조차 없는데. 이것은 마치 과거(현재도!) ‘순혈’을 강조하던 한국인의 사고방식에 비교할 수도 있다. 이러한 순혈 고집은 때로 유대인에 비교되기도 한다. 사실상 미군은 사병끼리는 명령권도 없고 경례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대한민국 군대에는 있는데,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물론 한국인 정서가 미국인 정서와 같지는 않다. 다만 군대 규정에는 분명히 사병 간에 경례를 금하게 되어 있다. 어쨌든 워낙 전통적으로(?) 관습이 되어 어쩔 수 없다 치자. 그러나 그 관습이 일종의 불문법처럼 되어 버렸다면 그것도 화끈하게, 깨끗하게 지키는 것이 좋다. 지지부진 눈치를 보고 속으로 재고, 쓸데없는 곳에 뇌를 많이 쓴다. ※ 이른바 ‘고무줄나이’라 부르는 대한민국의 나이 갈등도 이와 비슷하다. 정말 불필요한 데 뇌를 소모한다. 썩어빠진 ‘나이 계급주의’를 없애야 저런 문제도 사라질 것이다. 얼마 전에 놀이터에서 보니 불과 1학년짜리 초등학생 아이도 다른 또래 아이에게 나이를 속이고는 했다. 정말 기가 막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어릴 때는 어린아이 사이에 그따위 계급주의는 없었다. “규정대로 한다”는 말을 나는 참 많이 쓰지만, 그렇게 해서 손해 볼 일은 없다. 쓸데없는 자존심 다 버리고 저것만 제대로 지켜도 시스템(조직)은 훨씬 나아진다. 내가 군 생활 25개월 차(이때 병장 계급을 단다.) 혹은 26개월 차쯤에 있었던 일이다. 왕고참인 3개월 반 위의 기수가 단체 기합을 주었다. “엎드려뻗쳐!” 이렇게 집합해 있을 때면 계급 순으로 몇 열 종대로 선다. 물론 고참일수록 뒤쪽이다. 나는 앞에서 지시를 하는 왕고참 집단을 빼면 거의 두 번째 고참 기수에 해당해서 맨 뒤에 서 있었는데, 잠깐 생각하다가 곧 엎드려뻗쳤다. 내 동기는 당연히(?) 안 그랬다. 한순간 나 때문에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그러자 왕고참은 내게 일어나라고 말했다. 암묵적으로 병장들은 엎드리지 않는 듯한데(말 그대로 병‘장’이니까!) 그것을 눈으로 확인한 적은 없다. 왜냐하면 병장이 되기 전에는 늘 그 계급에 따라 앞쪽에만 서 있었으니까. 쉽게 말해서 뒤에 눈이 달리지 않았으니까! 내 눈은 토끼처럼 360도 방향을 볼 수 있는 초식동물의 눈이 아니다! (크학학!) 그러나 분명히 고참은 속으로 만족하면서 뭔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저놈이 더 센 놈이다.’ 즉 허튼 자존심 버리고 그냥 따른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최고참은 아니니까. 또한 명령은 명령이니까. 달리 말하면 왕고참을 인정한다는 의미인데, 이것은 ‘말년’에 대한 반란(혹은 도발)의 조짐에 대한 두려움도 덜어주지만, 한편으로는 상대(나)가 어물거리며 눈치 보는 스타일이 아니라는 인상을 심어주게 된다. ※ 엄밀히 따지면 군대에서 사병들 사이의 군기, 지휘체계는 불법이지만 승무원에게는 공식적으로 허용되었다. 보병부대에 얹혀사는 장갑병들은 승무원 주특기 일과에 있어서는 직접적인 통제를 거의 받지 않는다. 그것은 거꾸로 말하면 사병끼리 직접 모든 것을 이끌어 나가야 한다는 의미가 된다. 각 중대마다 기갑 출신 정비반장(하사관)이 있기는 하지만 그도 행정, 보급, 작전 등등 온갖 일로 뛰어야 하므로 일일이 수십 명 승무원들의 일과에 온종일 개입할 수는 없다. 따라서 사병들이 직접 운용을 하니 고참은 아랫것들을 관리해야 하고 그 지휘체계가 제대로 돌아가려면 그만큼 군기를 세워야 했다. ※ 만약 하사관이나 장교 같은 ‘간부’ 직업군인이 지휘를 한다면 굳이 그 정도까지 군기를 내세우지 않아도 잘 따를 것이다. 그러나 사병이 사병을 지휘할 경우에는 갈등이 생기니 엄정한 군기체계를 앞세우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장갑병은 사병 출신이라도 다른 병과의 지휘자(간부)와 같은 능력을 쌓게 된다. 중대 내의 수십 명의 승무원, 정비병과 17대에 달하는 장갑차량에 대한 정비를 지휘하고, 기동훈련 시에는 주둔지에서 승무원들을 관리하고 차량 이동을 지시해야 한다. 보병 장교는 보병을 지휘하는 데도 바쁘니까. 이것은 전차 한 대에 간부(하사관이나 장교)가 둘씩 있는 당시의 전차부대 시스템과도 아주 달랐다. 실제로 나는 전역할 때까지 쫄따구들이 ‘기어오르지’ 못했다. 흔히 말년이 되면 그 바로 밑의 병장들이 반 장난삼아 시비를 걸고 긁어 대고는 한다. 그러나 내 대에서 그것은 거의 사라졌다. 군대생활 잘(?) 해놓고, 나갈 때 되어 아랫것들 눈치를 본다면, 그보다 한심한 일이 어디 있나? 일반적으로 “말년에는 장돌도 피해 간다”는 말이 생길 만큼 몸을 사린다. 만약 바로 아래 기수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면 정말 몸을 사려야 한다. 숫자가 적어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갈참’이 아래 기수보다 숫자가 더 많다면, ‘기어오르지’ 못하도록 끝까지 군기를 잡으려 애쓴다. ※ 그 즈음 최고참(말년) 기수는 3명이고, 그 바로 아래 2주 차이인 기수는 6명이었다. 겨우 그 정도 짬밥 차이라면 친구처럼 대해도 되겠지만 워낙 기수를 엄격히 따지므로 그럴 수 없고, 수적으로 훨씬 불리한 아래 기수가 도발을 할까 싶어 최고참들은 더욱 기세를 부렸다. 게다가 사실상의 2순위 기수는 대부분 성격이 부드럽고 화목한 편이라 아래 기수가 그쪽에 붙어 편을 들 수도 있다. 그 바로 아래가 우리 기수이다. 결국 그토록 2주 후배들을 압박하던 최고참들도 마지막 몇 달은 되도록 허물없이 지냈다. 즉 그들끼리 암묵적인 연합전선을 구축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2순위 기수가 우리 기수와 손을 잡고 긁어 댈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되면 3대 8이 된다. 어쨌든 그렇게 막판에는 최상위 두 기수가 비교적 허물없이 어울린 까닭에 실질적으로는 우리 기수가 2순위 비슷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나는 말년이건 뭐건 그들이 전역할 때까지 깎듯이 대우해 주었다. 군대는 깡패 집단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당시 군대, 특히 ‘아웃사이더’인 장갑차 승무원들은 반쯤 그런 특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내가 규정(?)을 그대로 지키니 당연히 아랫것들도 배운 대로 따른다. 오히려 내가 전역을 열흘쯤 앞두었을 때 위계질서가 흐릿해진 듯해서 바로 아래 기수까지 혼낸 적 있다. 어느 날 내 동기 놈이 하소연을 했다. 무려 10개월이나 차이 나는 자기 소대 쫄따구가 개겼다고. 그래서 그 기수 위로 하나씩 불러서 ‘팼’다. 곧 제대할 내가 두 달 남은 아래 기수까지 혼낸 것은 이례적인 사건인데, 이것은 앞에서 말했듯이 이미 나 스스로가 ‘모범을 보였으므로’ 불만을 토로할 수가 없다. ※ 다만 ‘당연한 일’이지만 쫄따구들이 보는 데서 혼내지는 않는다. 한 명씩 공구실로 불러 패는 것이다. 바로 아래 기수 녀석은 신병 때부터 내가 참으로 다정하게 대해 주었던 놈이다. 때리기는커녕 잔소리 한 번 한 적도 없고, 그래서 거의 친구에 가까웠다. 그러니 제대를 코앞에 둔 고참이 팬다고 했을 때, 놈은 이렇게 제안했다. “그냥 맞은 걸로 하죠?” 밖에서는 보이지 않으니까 슬쩍 넘어가자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답했다. “그렇게 대충 넘어가니까 밑에 애들이 기어오르는 거다.” ※ 전에 말했듯이 ‘절대 구타 금지’인데 어떻게 때렸을까? 답은 자루가 ‘S라인’(크학학!)으로 휘어 있는 미제 삽이다. 삽날의 넓적한 부분으로 때리면 전혀 흔적이 남지 않지만, 제법 충격은 있다. 크게 아프지는 않지만 ‘딥 임팩트’에 의한 심리적 효과가 더 클 것이다. 사실 동기 놈은 그 얼마 전에 무려 2년이나 아래인 쫄따구(부조종수) 머리에 망치를 휘둘러 터뜨린 일이 있었다. 군대에서는 그 정도 차이라면 할아버지와 손자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런데 머잖아 제대할 사람이 왜 애 머리를 깨뜨리는가. 그러니까 10개월이나 차이 나는 상병이 개기지. ※ 배운 대로 따라한다고, 후일 전해들은 바에 의하면 그 망치에 머리가 터진 녀석은 자기가 상병이 되었을 때 신병 머리통을 망치로 때렸다가 ‘고발’에 의해 대대 인사과에 끌려갔다고 한다. (크학학!) 제4회에서 말했지만, 서서히 군대가 바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신병 시절에 머리가 터진 녀석은 내내 그 일이 뇌에 박혀 있다가 자신도 모르게 신병에게 화풀이한 듯하다. 고참이라고 해서 규정을 어기고 월권을 하니까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어차피 힘겨운 군대생활 잘 해 왔다면, 고참은 올챙이 시절을 돌아보면 정말 편안하고 행복한 생활을 누리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굳이 그 이상을 바랄 것이 무엇인가. (다만 외출외박조차 없이 늘 고참들 눈치 속에 살아야 하는 그 지독하게 폐쇄된 시스템에서는 ‘윗자리’에 올라서는 순간 몹시 허탈해진다는 문제가 있기는 하다.) 괜히 그러다 보면 결국 장난이든 아니든 보복을 당하고, 그 때문에 쪽 팔리게 말년에 눈치 슬슬 보게 된다. 내가 한참 쫄따구일 때는 수세에 몰린 말년들의 모습을 ‘자애로운 할아버지’에 비교해 생각했지만, 막상 계속 지켜보다 보니 그런 것이 아니었다. 일종의 보복심리와 패권다툼인 것이다. 따라서 나는 아예 그런 틀을 깨 버린 것이다. 내 동기 놈은 나와는 정반대 스타일이었다. 인간성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세상과 군대에서 배운 그대로 항상 인상을 구기고 다니면서 ‘애들’을 슬슬 긁어 대고는 했는데, 정작 밑에서 도발을 하니 꼼짝 못한 것이다. 제5장에서 종종 언급한 ‘싸움의 기술’로 치자면 빵점이다. 반대로 나는 지난번에 말했듯이 ‘위계질서를 지키는 한도 내에서는’ 그냥 사회 선후배처럼 재미있게 어울렸다. 입대 전까지도 워낙 다양한 취미와 경험이 있었던 까닭에 그런 쪽으로 집단을 이끌었다. 그러면서 체계를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철저하게 규정을 지키기 때문인데, 단적인 사례 하나를 들어 본다. 우리 소대에서 내 바로 아래 기수인 녀석은 고집도 세고 기질이 아주 강했다. 그러나 규정대로 행하면서도 사적으로는 친구처럼 대하는 내게는 늘 순종했는데, 내가 전역할 즈음 승무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군대에서 돈 갚는 고참은 첨 봤다.” 말년 휴가를 얼마 앞두고 보병들 박격포 사격측정 때문에 화기소대 차량 몇 대가 출동한 적 있는데 그 지휘/관리 때문에 나를 비롯한 승무원 고참들이 따라 나갔다. 그것은 늘 부대에 갇혀 지내는 우리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외출이었다. 마침 사격측정 장소 근처 외진 곳에 구멍가게가 있어, 바로 아래인 그 녀석에게 돈을 밀렸다. 녀석은 기재계라서 정기적으로 돈을 걷어 관리하며 승무원들에게 필요한 행사에 쓴다. 그런데 나는 공금을 횡령(?, 크학학!)한 것이다. 다만 그 돈으로 먹을 것을 사서 쫄따구들까지 똑같이 나누어 먹었다. 그리고 휴가를 나가서 가지고 온 돈으로 공금을 갚았다. 그것이 그토록 신기했나 보다. 사실은 당연한 일이거늘. 결국 나중에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그 일을 무슨 ‘세상에 이런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좔좔 늘어놓은 것이다. (이것은 달리 말하면 내 이전의 고참들이 쫄따구들 돈을 갈취하는 것은 물론 종종 ‘공금’도 꺼내 썼다는 의미가 된다. 그러다 만약 ‘펑크’가 나면 아마도 기재계의 사비로 때워야 했을 것이다.) 전역을 하고 두어 달 지나자 녀석이 말년휴가를 나와서 나를 불렀다. 함께 휴가를 나온 보병 분대원들도 같이 있다고 한다. 아직 돈이 한 푼도 없는 처지라서 ‘사제인간’이면서도 아무 것도 사 주지 못하지만, 일단 시간 맞추어 약속장소에 나갔다. 그러자 녀석은 자랑스럽다는 듯 분대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봤지? 약속은 꼭 지킬 줄 알았다니까.” 어찌 보면,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는 당연할 수도 있는 일이 당시의 군대라는 시스템에서는 신기한 일로 둔갑하고는 했다. 반대로 말도 안 되는 일이 상식인 것처럼 되어 있고. 정말 굳이 필요하지도 않은 허세를 떠나 지킬 것만 제대로 지킨다면 여러 모로 편리하다. 허세를 부리기보다는 허물없이 마음을 트고 대하기는 것이 정신건강에도 좋다. 그리고 규정을 잘 지키는 자는 절로 강자가 된다. 규정을 지키는데 두려울 것이 무엇인가. 한편 아랫것들도 그 빈틈없는 태도를 보면 기어오르지 못한다. 정해진 계급 서열과 규정을 깨끗하게 지키므로 허튼 자존심 때문에 눈치 보거나 잔머리 굴릴 필요가 없고, 그만큼 마음이 편하니 아랫것들을 들볶을 필요도 없이 편안하게 어울린다. 분명히 압제를 쓰지 않고 허물없이 대하지만, 파고들 빈틈은 없는 것이다. 세상 살기에 여러 모로 편리하다. 이런 내 방식은 수많은 상사들이 우글거리는 직장에서도 통했다. 어쩌면 이것은 인간사회에서의 ESS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튀어나온 못이 망치를 맞는다? ESS 얘기가 나왔으니 안티 ESS 얘기도 잠깐 해 보자. 이것은 내가 이미 구구절절 썼던 긴 글을 함축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사회적 ESS에 가장 가까운 것은 ‘규정 준수’일 것이라고 나름대로 결론을 내렸다. 그렇다면 안티 ESS는?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법규와 관련된, 즉 법규에 위반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법치사회에서는 상식 밖의 것이고, 잡혀 들어가거나 벌금을 잔뜩 물어야 할 테니까. 말 그대로 법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의 생존방식과 경쟁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전형적인 사회적 안티 ESS이다. 중학교 때 처음으로 공부에 흥미를 잃었다는 말을 앞에서 했었다. 그 이유를 이제 설명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이 흔히들 말하는 사춘기의 ‘이유 없는 반항’이었는지 아니면 다른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공부와 관련해서는 점점 옆으로 새기 시작했다. 극도의 청개구리 기질이 나타난 것이다. 아무래도 촌구석에서 자라다 보니 책에 나오는 얘기는 무조건 다 믿었지만(그래도 적어도 교과서는 ‘거의’ 옳다.) ‘가정’과 ‘예’에 대해서는 선생이 획일적으로 단조롭게 가르치는 것을 지독하게 싫어했다. 여기서 단조롭게 가르친다는 것은, 그저 칠판에다 빽빽하게 필기를 하고 그 다음에 설명을 줄줄 늘어놓는 방식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수학 예제를 써 놓고 풀어 나갈 때처럼 ‘특정한 예’를 말하는 것이다. 수십 명의 학생들이 똑같이 그렇게 써 나간다. 사실 각자가 다른 문제를 만들어서 풀어 나가면 더 재미있을(?) 텐데. 이때부터 슬슬 수학과 거리가 멀어지기 시작했다. 내가 전산 프로그래밍 전공자이고 또한 꽤나 예리하며 늘 머릿속에 계산기를 가지고 다닌다는 사실은 이 독중감을 쭉 읽어 온 독자는 잘 알 것이다. 이 블뇌그에 걸려 있는 액자 속의 뇌거울도 사실 계산기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계산을 할 수 없다면 거울이 의미가 없으니까. 그런데 수와 계산이란 것에 대한 관심은 무척 깊고 지금도 늘 실생활(글쓰기 포함)에 적용하지만, 중학교 즈음부터 수학이란 과목을 지지리도 싫어하게 되었다. 얼마나 내가 계산이 치밀한가 하면, 처음 소설을 쓰던 어린 시절부터 그 분량을 계산해서 기존의 책과 비교할 정도였다. 예를 들자면 표준 단행본 한 쪽의 본문 줄 수와, 각 줄의 평균 글자 수를 계산해 노트에 쓴 내 소설과 비교하는 것이다. 훗날 워드프로세서를 사용해서 글을 쓰게 되었을 때에는 용지 규격 및 줄 간격 등을 모두 그 당시의 보편적인 책 규격에 철저하게 맞추었다. 따라서 출판사 사람들이 원고지 매수로 계산하는 것보다 내 계산이 더 정확했다. 우습지 않은가? 그 분야 전문가보다 더 치밀하다. 그들은 이렇게 묻는다. “원고지로 몇 장쯤 되죠?” 나는 이렇게 답한다. “보통 단행본 규격으로 ***쪽 정도 됩니다.” 그토록 수치에 예민함에도 중학교 때부터 수학 과목에 질리게 되었다. 수학뿐 아니라 그 어떤 과목도 나는 선생의 예문이나 예제를 그대로 필기하지 않았다. 그 의미만 파악해 내 스스로 변형시켜 기록했다. 이미 창의력, 창작인이 될 소양인지 기질인지는 충분하다 못해 넘치는 셈이다. 그런데 칠판에 줄줄이 풀어 가는 수학 예제는 변형을 시킨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문제를 내고, 풀고, 그런 식이라면 가능하지만, 그저 열심히 필기하고 설명을 듣는 식이라서 뇌에 곁가지를 둘 여력이 없다. 당시 나는 이런 식으로 필기를 했다. 선생 : x+y(x+z) = x+(y×x+y×z) = ... 뇌신 : a+b(a+c) = a+(b×a+b×c) = ... 즉 다른 예제를 만들 뇌력은 아니었기에 대신 미지수를 다른 것으로 쓴 것이다. 그러니 제대로 따라잡겠는가? 필기 자체도 따라잡지 못하고, 또한 선생이 설명을 할 때도 계속 미지수를 바꾸어 가며 필기를 하느라 제대로 듣지 못한다. (크학학!) 저 정도에서 그치면 다행이지만, 선생이 x, y, z를 모두 쓰고도 새로운 미지수가 필요해 a, b, c 등을 추가하면 나는 그것을 다시 반대로 x, y, z로 바꾸어야 한다. 그러면 뒤죽박죽 엉켜서 도저히 따라잡지 못하게 된다. 그 바람에 어쩌면 내 적성과 잘 맞을 수 있는 수학이 무척 약해져 버렸고 한 번 처지기 시작하니 갈수록 점점 헷갈리게 되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장기적으로는 그렇게 뇌를 ‘석고가 되지 않게’ 부단한 훈련을 한 덕에 평생 무엇을 하든 유리하게 되었다. 첫째, 그 어디서든 획일적이지 않고 새로운 것을 궁리한다. 둘째, 학창시절에 남들보다 뇌력을 두 배로 쓰면서 비록 학과 점수는 떨어지지만 뇌 자체를 보다 강화, 발전시켰다. 지난번에 잠깐 운을 띄웠던, “공부 자체에 싫증을 느끼기 시작한” 이유가 그것이다. 강요되고 주입하는 교육에 질색한 것이다. 어쩌면 선천성일 수도 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초등학교 시절에는 문화생활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산골에서 살면서, 그저 달랑 하나 있는 과학전집만 읽고 또 읽었다. 즉 초등학교 수준의 과학 지식은 학교보다는 독학으로 배운 셈이다. 누구에게 물어 볼 사람도 없어서 그저 혼자 익힌 것이다. 둘째, 교육열이 거의 없었던 당시의 시골 아이들은 학력 수준이 너무 낮았다. 그러니 교과 진도는 제대로 나가지 못하고, 따라서 나는 종종 수업에서 ‘열외’가 되어 버렸다. 즉 그냥 교실 밖에 나가서 놀라고 한 것이다. 4~5학년을 그렇게 보냈다. 그런 까닭에 종종 혼자 책(교과서)을 들추어야 했다. 결국 그러한 독학 방식이 몸에 밴 듯하다. 내가 원한 방식은 선생은 어느 정도 지침만 제시하고, 또한 각각의 학생이 스스로 공부하면서 모르는 부분만 질문하면 그 답을 가르쳐 주는 것이었다. 훗날 알고 보니 서구의 교육방식과 비슷하다. 또한 대학과도 비슷하다. 그러나 한국의 현실은 정반대여서 각자 학과 적성이 다른 많은 학생들을 획일적으로 일정한 수준으로 끌어 올려야 하니 학생들은 처음부터 자의성을 잃고 ‘칠판 베끼기’ 위주의 공부를 하게 된다. 그러한 공부 습관이 몸에 배어 대학에 가서도 마찬가지다. 뭔가를 제시하고는 그것을 스스로 연구해 보라고 지시하면 도무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저 ‘답’만을 원한다. 예전에 내가 잘 아는 분야 관련하여 누군가에게(주로 학생) 한 수 가르침을 줄 때 보면, 늘 이런 식이었다. “***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지? 한 번 잘 생각해 봐.” 그러면 거의 이렇게 말한다. “그냥 답이나 가르쳐 줘요.” (크학학!) 흔히 말하는 ‘주입식 교육’의 산 증인(?)들이다. 스스로 연구해서 답을 찾는 것을 질색한다. ‘물고기 잡는 법’은 배우려 하지 않고, 그저 물고기만 원한다. 그러다 나중엔 어떻게 하려고? 동료 작가에게 들은 일화에 의하면 이런 경우도 있다. 같은 취미를 가진 이들이 어느 곳에 모여 뭔가 작업을 하는데, 그 중 한 사람에게 뭔가를 부탁했다고 한다. “○○(업소)에 가서 *** 좀 사다 줘요.” 그랬더니 그는 이렇게 대답하더라는 것이다. “이 동네엔 ○○이 어디 있는지 모르는데요?” 20대 중반이나 된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그냥 나가서 찾아보면 될 것을, 유치원 어린애도 아닌데 이 동네에 안 살아서 모른다고 하는 것이다. ※ 이러한 교육방식의 문제는 종종 지적되어 왔고 따라서 근년에는 많이 바뀌고 있는 듯하다. 일단 어린아이들에게 연구와 관찰을 강조하는 듯하다. 하긴 요즘 아이들이 오히려 그 이전 세대보다 시골과 자연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으니까. 서울 사람들은 벼를 두고 ‘쌀나무’라고 말한다는 농담도 물론 사라졌다. 이렇듯 인간 사회가 만들어 낸 표준의 (것처럼 보이는) 많은 방법론이 문제점을 안고 있다. 보편적으로 널리 퍼졌다고 ESS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기에 차라리 거기서 벗어나 삐딱하게 가는 것이 때로는 ESS에 가까울 수도 있다. 아니 어쩌면, 많은 분야에서 동물적 본능을 잃은 인간 사회 시스템보다 자연에 좀 더 다가가는 것이 ESS이다. 처음에 안티 ESS라고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ESS일지 모른다. 그러기에 스스로 ‘생각해서’ 시도하는 이들이 성공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보편적으로 흔히 쓰는 방법을 따라하는 것이 가장 안정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진화의 귀결이 아니라, 잘 모르니까, 그리고 당장 연구를 할 여력이 없거나, 혹은 연구를 하기 귀찮으니까 무조건 따라할 뿐이다. 그리고 그 맹목적으로 따라하는 데서 벗어난 이가 성공한다. ESS와 관련하여 처음에 말했던, 어린 시절에 본 어떤 업자의 사례가 그렇다. 동종의 사업을 하는 다른 사람들은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남들이 하니까’ 그대로 따라한다. 그러나 그는 아주 색다른 시도를 한 것도 아니고, 그저 시간차를 두고 남들과 ‘생산 및 출하 시기’를 달리한 것이다. 결국 시장에서 매물의 많고 적음의 차이에 의해 가격이 크게 달라진다. 아주 조금만 생각을 바꾸어도 될 일을 맹목적으로 남들과 똑같이 한 이들은 판매가에 있어서(결국 투자 대 수익 대비) 종종 큰 타격을 입는 반면 그 사람은 꽤나 안정적으로 큰돈을 벌어들였다. 어릴 때부터 늘 거꾸로 생각하는 나의 습관은 그다지 실패한 일이 없다. 꼭 창작이 아닐지라도, 남들과 조금 다르게 보고 다르게 생각함으로써 차별화를 가져온 것이다. 때로는 앞에 말했듯이 사회 시스템이 만들어 낸 ‘맹목성’의 함정에 빠지지 않은 덕도 있을 것이다. 차별화, 혹은 삐딱하게 나가는 방법론으로서 가장 기본은 ‘상투성’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그 하나만으로 충분하다. 인간은 뇌적 동물인 까닭에 자연의 질서와 평형을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하는 습관이 있다. 따라서 많은 부분에 불합리한 요소가 끼어 있지만 그것을 눈치 채지 못한다. 이때 꼭 ‘뇌거울’과 계산기까지는 아닐지라도, 상투성 자체만 늘 유념하고 경계해도 많은 면에서 성과가 있다. 대화실에서 자주 놀던(!) PC통신 시절에 나는 드나드는 이들에게 늘 인사말을 다르게 했다. 매번 쓰는 똑같은 인사말은 상투적으로 느껴져서 그랬던 것이다. 결국 이 상투성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최소한의 성의’가 될 수 있다. 이 문제는 직장시절의 경험담과 연결시킬 수도 있다. 내가 색다른 시도를 하는 것을 상사들은 ‘딴 짓거리’로 보았지만, 결과적으로 그것은 오히려 직장생활에 보다 충실한 것이었다. 대화실에서 매번 인사말을 다르게 하려다 보니 엉뚱하고 재미있는 인사말도 만들어 내게 된다. 결국 그것은 남들의 주목을 받게 된다. 그 시절에야 대화실에서 보다 다양하고 폭 넓은 이들과 교류하고 대화하는 것 자체가 즐거웠지만, 대인관계를 넓히거나 혹은 광고가 목적인 사람이라면 이 또한 매우 중요한 무기가 된다. ※ 실제로 늘 특이한 방식으로 대하는 나에 대해 대화실 이용자들은 흥미를 보였다. 따라서 장난삼아 종종 이런 농담도 했다. “나는 사람 아님. 이용자 아님. 하이텔의 상담 프로그램임.” 그런데 컴퓨터 세계와 인공지능의 발전 정도에 대해 잘 모르는 이들 중에는 그 말을 실제로 믿는 이도 있었다. 꼭 믿지 않는다 해도, 그 자체만으로도 큰 흥미를 보인다. 다만 나는 만민(크학학!)을 즐겁게 해 주자는 의도였지만, 어떤 목적, 즉 사업 광고나 혹은 이성을 꼬시려고(크학학!) 대화실에 매달리는 사람이라면 이 또한 강력한 무기가 될 수도 있다. “모난 돌이 정을 맞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혹은 그 비슷하게 “튀어나온 못이 망치를 맞는다”라는 말도 쓰였다. 물론 이러한 속담들은 오랜 경험의 지혜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획일화된 전체주의 사회에 맞추어 만들어진 것이다. 절대적 가치가 존재하지 않는 복잡다단한 현대사회에서는 긍정적으로 해석해 볼 필요도 있다. 튀어나온 못은 눈에 뜨인다. 그리고 그것은 이른바 ‘자기 PR’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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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르트만이 아무래도 그..
by 뇌의가호 at 01/06 그 대목을 찾느라 대충 훑.. by 뇌의가호 at 01/06 기리티 않아도 이 글 써서.. by 뇌의가호 at 01/06 이기적 유전자보다 훨씬.. by 꼬깔 at 01/05 멋지네요. 근데 109G는 밑.. by hal9000 at 01/05 형님 새해 복 많이 받으.. by hal9000 at 01/05 꼬깔 님도 복 많이 받으.. by 뇌의가호 at 01/01 너도, 아니 너덜 님(.. by 뇌의가호 at 01/01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요~! by 꼬깔 at 12/31 선생님도 새해 복 많이 .. by The Nerd at 12/31 메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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