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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유전자 - 제5장. 공격 ♨ (8) 누가 빌어먹을 천사를 쏘았는가
 

이번에는 <이기적 유전자> 서문을 읽다가 발상했다는 나의 작품 <누가 빌어먹을 천사를 쏘았는가>를 대입해 본다. 애초 이 독중감은 나와 이 책의 ‘게임’이라고 밝혔듯이 오랜 기간 해 왔던 나의 고민들이 책의 내용과 비교된다. 또한 나는 소설을 쓰기에 그러한 고민들이 작품에 반영된다.

이 작품은 특히 이 책으로부터 출발했기에 더욱 할 말도 많고 따라서 제5장 독중감 곳곳에 관련된 내용이 끼어 들어가 있었다. 그러다가 정리를 하면서 한 데 모은 것이다.

점점 세상은 복잡해지고 또한 거기에 계속 노출되는 뇌도 아는 것이 늘어나면서 할 말도 많아지는데, 21세기 들어 약 5년 동안은 꾸준히 블로그를 통해 성토했다. (주로 ‘풍자’였다.) 그러나 거기서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다 보니 오히려 작품은 강렬한 주제의식을 잃고 싱거워져 버렸다고 전에 말한 바 있다. 정보화사회가 되고, 또 꼭 그렇지 않다 해도 세상을 산 만큼 보는 시야도 넓어지고 시각도 다양해지는데, 정작 작품이 주는 힘은 그만큼 약해졌다. 글을 쓴 이력이 점점 쌓이는 만큼 더 숙련되고 깊이도 생겼지만 주제의식은 오히려 약해졌다.

그런데 작년부터 블로깅을 거의 끊다시피 한 상태에서, ‘이기적 유전자’라는 매우 강렬한 주제를 만나 거기서 출발한 이 작품은 매우 강해졌다. 처음에는 그 과학적 주제만 가지고 시작했지만 그 동안 하고 싶었던 온갖 얘기들이 모두 작품에 녹아 들어가서 그만큼 복잡해졌다. 전쟁으로 세상이 황폐해지고 혼란스러워진 미래의 어느 시기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사실은 현실에 대한 비판이 거기 투영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이 작품 역시 ‘게임’의 일부에 속한다. <이기적 유전자>를 ‘읽고’ 그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이 작품을 쓸 때만 해도 아직 책의 초반에 머물러 있었으니까. 그런데 제5장을 읽다 보니 관련된 내용이 있어서 다루게 되었다.


제5장 독중감을 쓴 지 이미 한 달 반이 지났다. 그 사이 다시 손을 보며 ‘연재’를 하다 보니 참 길게도 늘어진다. 여기에만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다른(창작) 작업을 하는 틈틈이 뇌를 쪼개어(크헉!) 연재하기 때문이다. 몇 차례 말했듯이 처음에 잔뜩 썼던 것을 추리기도 하고 때론 보강도 해야 한다. 이번 이야기로 제5장은 마무리를 짓는다. (9월 초에 제5장을 다 읽고 이어 6장도 얼마쯤 읽었는데, 독중감이 너무 길어져서 읽기를 중단했다. 너무 오래돼서 그 내용을 다 잊어버릴까 싶어서이다.)



 누가 빌어먹을 천사를 쏘았는가


이번 단원의 제목은 전에 이곳에 후닥닥 연재하고 2주 뒤에 비공개로 돌린 소설의 제목 그대로이다. 앞에서도 <빌어먹을 천사>라는 줄인 제목으로 몇 번 언급한 바 있다. 그런데 갑자기 그 소설이 왜 한 자리 떡하니 차지하고 앉았을까?

처음에 말했지만 제5장의 주된 얘기는 공격성이다. 그리고 이것은 나의 지대한 관심사라고 말했다. 물론 내가 아니라 그 누구라도 싸움이라는 주제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다만 나는 일반적 기준보다 더 관심이 깊을 뿐이다. (단, 사람들 사이의 간계나 감정싸움은 싫어한다. 짜증이 나서. 내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생물학적, 원초적인 싸움뿐이다.)



 

<빌어먹을 천사>는 <이기적 유전자>의 서문을 읽으면서 구상했다고 이미 밝혔다. 워낙 오랜만에 과학 주제의 작품을 쓰자니 구도를 잡기가 조금 힘들었고 한편으로는 장편 분량으로 흥미롭게 끌어가려면 첨예한 인간관계가 필요했기에 주로 인간끼리의 갈등과 쟁투를 다루었다. 또한 폐쇄된 공간을 무대로 한 고전 추리소설처럼 등장인물들이 하나씩 죽는다. 그러나 추리소설의 영향이라기보다는 어린 시절에 보았던, 그래서 훗날 글로 써 보고 싶었던, ‘여러 멤버가 어떤 여정(모험 등)을 거치면서 하나둘 죽어 간다’는 줄거리를 염두에 둔 것이다. 전에도 이런 형식의 장편을 쓴 적 있지만 동료 작가의 의견 때문에 아쉽게도(크학학!) 다 죽이지 못했다. 애초 계획은 딱 한 명만 살리고 모조리 죽여 버리는 것이었다.

<빌어먹을 천사>의 주요 등장인물 중 남자는 ‘미연방 한국사무국장’만 빼면 모두 몸으로 뛰는 젊은이들이다. 처음에는 서로 알지도 못했던 그들은 이해관계가 묘하게 얽히다가 결국 하나만이 살아남는다. 이 작품은 다소 난해한 과학적 주제 때문에 사람들이 지레 선입견을 가지고 기피하지 않도록 되도록 그 주제를 피한다. 그리고 에필로그에 가서 ‘해설자’의 입을 빌려 설명한다. 아울러 주된 등장인물들의 행위와 결과에 대해 낱낱이 밝히는 한편 일목요연하게 비교해서 보여준다.

<이기적 유전자>에서 그와 비슷한 주제를 다루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기에 제5장을 읽다가 눈이 번쩍 뜨였다. 처음 독중감을 시작할 때부터 ‘이 책과 나의 게임’이라고 거듭 밝혔는데, 이 공격성에 대한 비교 분석, 그리고 그 결과가 일치한다는 데서 신기하게까지 느껴졌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직업과 공격 성향은 다음과 같다.


노메트 : 빈민가의 월페인팅 작업 하청업자. 철저한 보복파

핀세일 : 무심하고 자유로운 영혼의 청부 살인자. 살인을 ‘즐긴다’는 점에서 매파에 가깝다.

펜리스 : 미군 순찰대 저격수. 인간사냥에 미쳐 엘리트로서 보장된 미래를 버리고 군대 특수부대를 택함. 전형적인 매파

카마쓰 : 공식(공인) 청부 테러리스트. 상위권 1퍼센트로의 신분 상승을 위해 무슨 짓이든 한다. 전형적인 매파


이들은 어쩌다 하나둘 마주치면서 이해관계가 얽히고, 결국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데 최후에 남는 것은 노메트이다. 그가 살아남을 수 있던 이유에 대해서는 에필로그에서 설명하고 있다. 세계적인 큰 전쟁 이후의 황폐하고 인간성이 말살된 세상에서 살기에 어느 하나 인간적이거나 도덕적인 자는 없다. 주인공 노메트 역시 결코 ‘좋은’ 놈이 아니다.

일단 굵은 줄기만 완성한 뒤 그 뒤로 집중적으로 수정, 보강하는 과정에서 보다 많은 이야기들이 추가되었는데, 거기서 노메트의 보복파 기질은 더욱 부각된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모터바이크이다. 눈에 든 리모델링 바이크를 손에 넣기 위해 평생을 꺼리던 도둑질까지 한다. 그런데 도시 외곽 한적한 도로에서 그 ‘꿈의’ 바이크를 타고 질주를 즐기고 있을 때 보다 고성능인 가스터빈 엔진 바이크를 탄 ‘하이택서’(고액납세자. 즉 상류층에 속한다.) 놈이 슬슬 약을 올리자 발끈해서 상대가 사고를 일으키게 만든다. 그리고 범죄 사실을 감추기 위해 거의 죽어가는 상대의 목을 부러뜨려 깨끗하게 처리할 정도이다. (여기서 죽는 모터바이크 라이더는 주요인물이 아닌 ‘단역’이다. 크학학!)

※ 지난 5월에 독중감을 처음 시작할 때, 그 얼마 전에 썼던 장편을 이야기의 소재로 삼았었다. 그 첫 회의 끝에서 나는 이렇게 예고한(?) 바 있다. ‘다음 작품의 주인공은 더욱 차가워질 것 같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차가운 정도가 아니라 흉악 범죄까지 저지른다. 단, 인간이 만든 제도를 떠나 순수한 자연적 관점에서 보면 범죄라고 할 수도 없다. 그저 ‘반격’을 했을 뿐이다.

전형적인 (한국)소설과 달리 좋은 놈은 없다. 이렇게 모두의 인간성을 나쁘게 설정한 것은 장르를 SF로 정했기에 정의니 도덕성이니 하는 사회적 통념을 철저하게 배제해야 했기 때문이다. 자칫 독자가 감정에 얽매이지 않도록. 또한 창작의 동기가 된 ‘이기적 유전자’라는 주제는 인간이 만든 각종 관념에서 철저하게 분리시켜야 한다. 도킨스는 진화와 이기주의 등등해서 ‘집단’과 ‘개체’를 철저하게 분리시키는데, 그 의견을 존중해서 사회와 개인을 분리한 것이다.

그런데 이 실험(!)은 비록 에필로그를 제하면 줄거리 전반적으로 ‘과학적’으로 보이지 않음에도, 내가 의도한 ‘공격성’이란 논점에서 도킨스의 책과 일치한 것이다. 그러기에 나도 새삼 놀란 것이고.

왜 그 줄거리가 과학적일 수 있는가 하면 도덕성이니 뭐니 하는 인간이 만든 관념, 그리고 감상적 사고는 모두 배제한 상태에서, 순수하게 그 행동 성향만 가지고 누가 최후의 승자가 되는지를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들 모두는 (거의) 매파이지만, 유일하게 노메트만은 보복파이다. 더욱이 결말에서 노메트가 또 다른 주요인물을 죽이는 이유도 그렇다. 그 자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 노메트를 이용해서 그를 파멸시켰다. 그러나 충분한 액수로 보상을 했다. (그 이유는 그저 단순한 ‘보상’이 아니라 조금 복잡하다.)

결국 노메트는 상대에 대해 잠깐 가졌던 원한을 훌훌 털어내 버린다. 그럼에도 죽인다. 그 이유는 노메트의 입을 통해 직접 들어보자.


“원한 같은 건 없다. 난 코리아틱하지 않으니까.”


“다만, 유를 살려 둘 이유도 없었거든.”


‘그냥’ 죽이는 것이다. 원한 감정보다는, 자기를 이용하고 심리적으로 괴롭혔던 자에 대해 일격을 가한 것이다.

이런 설정을 한 것은 물론 제5장의 공격 성향에 따른 분류를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다. (이 작품을 쓸 때에는 아직 제2장 근처에 머물러 있었다.) 어떻게 해야 ‘이기적 유전자’라는 주제에 독자들이 흥미를 갖도록 할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그다지 ‘착하지’ 않은 주인공(혹은 인류 전체)이 어떤 일을 계기로 조금씩 개과천선하고 변화할 수 있다는 거시적 차원의 ‘희망’과 관련하여 넣은 것이다. 인간, 인류의 미래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독중감 제5장 1회에서 언급하고 또한 연재의 일부로 넣기도 했던, 1993년에 썼던 단편 <재판>과 주제 면에서는 비슷한 셈이다.)

비록 단기간에 급히 설계하고 빠르게 써서 완성한 작품이지만 그 동안 워낙 많은 글을 쓰다 보니 나도 모르게 복잡한 미로 찾기 같은 구조를 통해 주제를 보여준다. 노메트가 여러 사람이 복잡하게 맞물린 싸움에서 최후의 승자가 된다는 설정은 일단 독자의 흥미를 끌기 위해 넣었을 뿐이다. 그런데 여담 삼아 들어간 공격성 분석이 책과 맞아떨어진 것이다. 에필로그에서 해설자는 말한다. 노메트는 다른 자들과 차이가 있었기에 승자가 된 것이라고. 그 차이란 바로 ‘보복파’라는 것이다. 다만 해설자는 정확하게 그것을 꼬집어내지는 않는다. (작품을 쓸 때는 그런 개념이 나의 뇌에 없었다. 아니, 무의식 속에 자리하고는 있지만 정리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자들처럼 공격적이지 않고’, 그렇다고 해서 ‘결코 무력하지도 않은’ 존재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말하자면 보복파이다.

반대로 여자 주요인물도 둘이 나오는데 모두 비둘기파에 해당한다. 그 중 하나는 전반적인 사건 흐름과 별 관계가 없고(없어 보이고) 따라서 생물학적인 손익은 없다. 그러나 하나는 죽음에 이른다. 해설자는 노메트가 가장 큰 승자라고 냉정하게 말한다. 만약 전형적인, 혹은 감상적인 작품이라면 이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별로 착하지 않은 자가 승자가 되고 거액을 챙겨 신분상승을 하게 되니까. 더욱이 그 착하지 않은 자가 주인공이다.

※ 사실 이런 냉정한 스타일이 ‘본래의’ 내 작품의 특징이다. 나는 늘 인간(윤리적, 도의적인 면)보다는 과학적(생물학적) 관점에서 접근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한국의 ‘기존’ 문학인들은 한심한 소설이라고 욕할지도 모른다. 대신 콘크리트 정글로 변한 세상에서 어릴 때부터 치열한 경쟁을 하며 자라는 청소년 독자들이 아주 좋아했다. 애초 내 작품의 특성은 산골이라는 소박한 환경에서 자라 훗날 차가운 대도시에 살면서, 직장에서는 치열한 경쟁사회를 경험하면서, 한편으로는 계속 과학서적들을 파고든 데서 비롯된 것이다. 현대 도시사회를 시골 출신의 객관적인 눈으로 해부한 까닭에 그만큼 냉정하고 날카로울 수밖에 없다. 그러기에 전에 말했던 어느 대학교 창작 교수가 관련 논문에서 “윤리관에 얽매이지 않는, 한국에서는 매우 독특한 작가”라고 말했던 것이다.

<빌어먹을 천사>가 흥미 유발을 위해 에필로그를 제외하면 줄거리 전반이 과학적 주제와는 거리가 있다고 전에 몇 번 언급한 바 있는데, 이제 그 점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듯하다. 개체의 공격성에 대해 다룬 제5장과 아주 잘 맞아떨어지니까. 그 줄거리 자체로 제5장의 내용을 충실하게 작품으로 옮긴 셈이다.

처음 완성한 이후 숱한 수정을 가했고, 연재를 하면 독자의 입장에서 보게 되어 다시 또 수정을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말했듯이 ‘이기적 유전자’라는 주제로 출발했지만 에필로그를 제외한 줄거리 전반이 몇몇 인간 개체끼리의 쟁투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까운 미래의 어느 시대를 배경으로 한, 즉 SF 장르에 속하는 작품으로서는 충실함이 부족하다는 느낌이었다.

결국 지난여름에는 또 다른 SF적 주제를 양념으로 넣을 생각을 했지만 그때는 후속작품에 등장하는 기계(차량과 총기) 디자인에 푹 빠져 있어서 글(소설)과는 뇌를 집중적으로 쓰는 부위가 달랐다. 계절이 바뀌어 가을이 되면서 새로운 과학적 요소를 추가하고, 한편으로는 <이기적 유전자> 제5장을 읽다 보니 줄거리 전반에 걸친 주제가 공격성 분석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제는 ‘과학적 요소’에 더 이상 매이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길고도 긴 제5장 독중감을 쓰고, 그것을 연재하기 위해 다시 분석하고 정리하다 보니 점점 더 과학적 주제를 녹여 넣는 방법이 명확해졌다. 다른 장과 달리 주로 공격과 싸움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다 보니 딱 이 작품의 줄거리에 어울렸던 것이다. 따라서 내가 독중감에서 다룬 논제들이 머릿속에서 정리되면서 계속 작품에 추가되고 융화를 이루고 있다. 줄거리 전개 곳곳에 그런 이야기들이 추가된 것이다.

※ 후속작품을 구상하게 된 이유도 뭔가 부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빌어먹을 천사>는 에필로그에서만 주제를 확연하게 밝히고, 한편으로는 인간들 사이의 끝없는 쟁투를 없애자고 해설자는 설득한다. 한편으로는 경고를 한다. 그런데 이 에필로그 때문에 결말이 모호해져서, 이른바 ‘열린 형식’처럼 되었다. 아예 에필로그가 없으면 깨끗하게 완결된 셈인데. 어쨌든 “우리는 이기적으로 태어났지만 이타적이 되도록 하자”는 도킨스의 부르짖음에 부응하여, 그 주제를 보다 확연하게 하고 싶었다. 첫 번째로 쓴 작품에는 그 점이 완벽하게 녹아들지 못한 까닭에 같은 주제로 다음 작품을 구상하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이제 ‘한층 익숙해진’ 상태로 후속작품을 설계하고 있다. 이미 지난 6월 하순에 구상하고 쓰기 시작했지만 일단 접고, 기초설계부터 다시 하고 있다.

전에 말했듯이 애초 나는 처음 소설 창작을 SF로 시작했고, 오랜 기간에 걸쳐 틈틈이 그 장르만 썼다. 이후 본격적으로 창작에 뛰어들었을 때에는 보다 다양한 주제, 소재, 그리고 보다 다양한 장르와 분위기를 시도했지만 여전히 기본적인 SF적 감각은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21세기 들어 주로 장편을 쓰고, 또한 과학 혹은 SF와 거리가 먼 작품들만 손대다 보니 너무 감정에 매이고 그만큼 SF 감각은 시들해졌다. 그러기에 이 작품을 처음 시작할 때 애를 먹었다고 한 것이다. 그런데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에서 출발한 작품이, 가을 들어 이 책에 대한 독중감을 집중적으로 쓰면서 거듭 새롭게 태어난 것이다.

‘너무 과학적 주제를 다루면 보편적 독자들은 거부감을 느낄 수 있다’고 전에 말한 바 있다. 그런데 이번 제5장은 물론, 그 동안 계속 독중감을 써 오면서 온갖 비유와 사례를 들어 했던 설명들이 나중에 작품에도 추가되어 자연스럽게 녹아 들어갔다. 등장인물 중 생각이 깊은 몇몇 캐릭터의 입을 통해 작가가 하고자 하는 말을 대신 펼친 것이다. 결국 처음에는 그저 에필로그에서 해설자의 입(?)을 빌렸던 주제가 보다 전반에 걸쳐 스며든 것이다.

다만 이 작품 전반에 걸치게 된 주제는 ‘이기적 유전자’ 자체는 아니다. 그보다는 이기적 유전자를 극복하자는 저자 도킨스의 부르짖음과, 아울러 인간이 만든 잘못된 사회 시스템이 자연에 위배될 수 있다는, 애초 이 작품을 쓰기 전에 말했던 그것이다. 과학이 발달하기 이전 시대에 만들어진, 각 문화권마다 다른 저마다의 잣대를 이제는 보다 현실적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 그것이다. 그리고 그 방법론으로 자연과학을, 생태계의 질서를 직시하고 그 이기주의적 공격성에서 벗어나 모두가 공존하기 위한 것이 현실에 맞는 인성교육이라고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이야기한다. 즉 ‘왜 인성교육이 필요한가’를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것은 에필로그의 해설자의 주장과는 상통하면서도 인성교육의 방법론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조금 다르다. 즉 줄거리 전개 과정에서 등장인물들이 하는 말은 책의 서문과 관련이 있고, 결말의 해설은 본문 전반에 좀 더 가까운 셈이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제5장 독중감과 관련하여 하고 싶은 말은, 비록 작품이 처음 완성되었을 때에는 전반적으로 SF와 거리가 있어 보였지만 ‘사회 시스템을 떠나 순수한 동물 개체로서의’ 공격성 유형에 대한 분석이 일치했다는 점이다.



 보복파가 승리한다


너무나도 길어졌던 이번 장 독중감을 마무리하면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바로 이 단원의 제목과 같다.

싸우지 말라고 어릴 적부터 뇌에 새겨지고 또한 군대에서도 종교활동으로서 기독교보다는 불교를 택했다. 기독교 교회에 가면 거의 ‘광기’ 수준의 선동 일색이기 때문이다. 선동이 당장의 전투를 위해서는 좋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살다가는 스스로의 뇌를 갉아먹을 것이다.

※ 근년에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선교 등으로 말이 많았던 이른바 ‘공격적 선교’가 바로 그런 것이다. ‘의무적으로’ 종교활동을 해야 하는 군대에서 내 발걸음을 불교 법당 쪽으로 돌리게 한 것은 훈련소 첫 일요일에 찾아갔던 영내 교회에서의 ‘광기 어린’ 공격적 선교였다. 도살장에 끌려온 소처럼 불안한 훈련병들을 심리적으로 안정시켜 주기는커녕 오히려 광분시키는 교회 꼴이 매우 싫었다. 그 광분이 단기적인 치료는 될지 모르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악영향을 미친다.

※ 어디에 가나 늘 눈에 뜨이는 이런 광신적 행위는 그런 까닭에 종종 내 작품의 소재가 된다. 이 <빌어먹을 천사>에서도 전반에 걸쳐 광신도들이 등장하고, 에필로그에서는 해설자가 정면으로 기독교에 맞서 일침을 가한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내가 평생 거의 안 싸우고 살았다고 했지만 아주 안 싸운 것은 아니다. 일반인 평균치, 심지어 아예 ‘무’나 전기전술에는 아무 관심 없고 유순한 사람보다도 다툼과 마찰을 덜 일으켰다는 뜻이다. (직장생활 등 단체, 전체를 위한 충돌은 별개이다.)

제5장 곳곳에서 싸움을 자제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만약 법치사회가 아니라면 싸움이란 치명적이다. 법치사회라도 습관적인 싸움은 스스로의 뇌를 갉아먹는다. 다만 나는 법의 테두리 밖의 것을 늘 염두에 두고 있었다. 어린 시절에 ‘적과의 전투’로 세뇌가 되었기 때문이다.

무사는, 혹은 강력한 무기를 가진 동물은 함부로 상대방 동종에게 달려들지 못한다. 그런 까닭에 암묵의 신호와 ‘의례’에 의한 평화가 생겨난다. 이것을 국가 대 국가라는 차원으로 넓히면 이른바 ‘억제전력’이 될 것이다. 그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조심성이 인간 사회에서는 많이 사라졌다. 위대한 뇌를 잘못 사용해서 허상의 명예에 젖었기 때문이다. 잘못된 관념의 함정에 빠진 것이다. 혹은 복잡한 현대사회가 만들어 낸 정신병적 사고 때문이기도 하다.

인간세상, 특히 현대사회에서 괜히 남에게 시비를 거는 이들 대부분은 허풍파에 속할 것이다. 허풍파는 보복파를 이기지 못한다. 그러나 자꾸 똑같이 상대하다 보면(반격) 자신도 닮아갈 수 있다. 아예 무시해 버리는 게 낫다.

책에서도 그 무시의 효과를 언급하고 있다. 사실은 무시를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동물들끼리의 견제에 있어서, 어떤 거짓된 행동으로 우위를 점하는 개체가 있다. 그러나 그 개체는 속임수를 간파하는 능력이 발달한 개체에게 이기지 못한다. 그렇다면 보다 나은 방법은? 아예 아무런 행동을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상대는 내 마음을 읽지 못한다. 즉 그 어떤 행동보다도 그저 가만히 있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이다. 인간세상에서는 ‘포커페이스’가 거기에 해당한다고 한다. 실제로 ‘무시’하는 사람보다 더 상대하기 어려운 사람은 없다.

그렇다고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 ‘무시’가 비둘기파의 모습은 아니다. 비둘기파는 겁을 먹은 ‘행동’을 보이기 때문이다.

<빌어먹을 천사>에서는 중심인물이 되는 몇몇 사내의 공격성에 초점을 맞춘 것이 뜻밖에(!) 제5장의 주요 논점이 되고 있다고 했는데, 이 작품의 앞부분에는 또 다른 시각에서 거기 대해 다루고 있었다.

이 작품에는 하층민(하위권 10퍼센트. 이른바 ‘슬럼’이라 불린다.) 각 구역(타운)의 대표들로 구성된 타운연맹이라는 것이 나온다. 월페인팅 하청 업무 때문에 찾아갔던 주인공은 우연히 그들의 회의를 목격한다. 그들은 서울시 당국으로부터 지역발전 지원금을 받는 문제로 논쟁을 벌이는데, 그들의 공격성이나 사상에 따라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눈다.

로즈파 : 강경파(매파). 실력행사를 통해 일시에 전체 타운의 지원금을 받아내려 한다.

데이지파 : 온건파(비둘기파). 시 당국을 잘 설득하여 한 타운씩 번갈아 지원금을 타내려 한다.

쏜버드그룹 : 로즈파 내에서도 극렬 그룹으로서, 아예 정부를 전복시키고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만들려 한다. (공산혁명이나 마찬가지다.)

데이지파 일부 : 이들은 행동방식 때문에 로즈파에 몸담고 있지만 만민평등 세상을 만들려 한다는 목적성에서는 오히려 쏜버드그룹과 같다.


여기서 로즈파는 킬러를 고용하여 비리, 압제 공직자를 살해하는가 하면 데이지파의 주요 인물도 제거한다. 심지어 같은 로즈파 내에서도 종종 청부살인이 행해진다. 데이지파도 가끔은 너무 과격한 로즈파 인물을 제거한다. 결국 어느 쪽에 속하는 것이 더 생존 가능성이 높은가 하는 문제는 다루지 않았지만, <이기적 유전자> 제5장에서는 각 유형의 점수를 집계, 비교한다.

사실 데이지파가 온건파라고는 하지만 그 내부에서도 로즈파의 과격한 인물에 대해 강경 대응을 하는 이들이 있는데, 그들이 보복파에 속하는 셈이다. 다만 자신이 보복파 성향을 가졌다는 것은 철저히 숨겨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제거 대상 1순위가 될 테니까. 그러나 어차피 같은 타운연맹 내에서의 암살이란 비밀리에 행하는 것이므로 누가 그런 짓을 시키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회의석상에서의 공격성에 의해 주로 강경파(혹은 허풍파일 수도 있다.) 인물 중에서 자신의 공격성향이 확실히 나타나고, 그들은 우선적인 제거 대상이 될 것이다. 강경파는 그들 타운연맹의 대적자(서울시)뿐 아니라 연맹 내부의 회의에서도 늘 그러한 공격성을 보이기 때문이다.

작품 속에서는 잠깐 보여주는 그 타운연맹 회의에서도 가장 거친 쏜버드그룹의 한 사내를 보여준다. 그리고 작품 후반부에서 그는 다시 거론된다.

주인공은 어쩌다 ‘원칙을 고수하는’ 킬러에게 질문을 했다가 살인 의뢰를 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자문을 하는 순간 이미 거래는 시작되기 때문이다. 원칙 제2조, ‘한 번 시작한 거래는 되돌릴 수 없다.’

결국 누구를 죽여야 하나 고심하느라 리스트를 작성하는데, 그 중에는 쏜버드그룹의 사내도 포함된다. 그는 잠깐 보았을 뿐 주인공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러나 곁가지를 통해 연결된다. 주인공은 상류층 여대생과 친해지게 되는데, 체제를 붕괴시키려는 쏜버드그룹은 그 여자에게 위협적이기 때문이다. 결국 강경파는 어떤 경로로든 수많은 적을 만들 수밖에 없다. 그런 까닭에 역사적으로도, 그의 뜻이 옳든 그르든(이것은 관점에 따라 달라지지만) 암살되는 일이 많은 것이다.

공격적인(혹은 그렇게 보이는) 이들은 경쟁자들로부터 공격의 표적이 될 수밖에 없다.



 아인슈타인의 뒤통수


제5장은 정말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 이 글을 한창 써 나갈 때는 잠자리에 누우면 온갖 생각이 나서 정리를 하고 구성했었다. 그런데 너무 복잡다단한 까닭에 정작 글을 쓸 때면 까먹는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작품을 완성하고 계속 손을 보던 도중 밤이 되어 텔레비전을 틀었는데 아인슈타인과 중력장 얘기가 나와서 대뜸 떠올랐다.

이 단원의 제목은 <빌어먹을 천사>의 거의 막판에 나오는 소제목이기도 하다. 결국 이 작품은 나 자신의 예상 혹은 의도와는 달리 어떻게든 그 글을 쓰게 된 근원인 <이기적 유전자>와 연결된다. 그 중 핵심적인 대목을 여기 올리면서 제5장을 맺는다.


어느새 핀세일은 제법 술에 취해 있었다. 그는 상처의 고통을 잊기 위해 계속 위스키를 들이키고 있었다.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흘리며 그는 늘어진 목소리로 이죽거렸다.

“어쨌건 아인슈타인의 우주론이 틀리진 않은 것 같군.”

노메트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하자 그는 설명했다.

“아인슈타인의 이론에 의하면, 이 우주는 거대한 중력으로 인해 비틀려 있다고 하지. 우리 눈에는 지구가 평면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공 모양을 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지. 옛날 사람들은 세상의 어딘가 끝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둥글기 때문에 끝이 없는 셈이지. 아인슈타인 말에 의하면, 우주도 마찬가지라는 거야. 우주는 끝이 없고, 거대한 중력에 의해서 뒤틀려 있다는 거지. 4차원의 초구체가 되는 거라고.”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손에 심한 부상을 입고, 출혈을 한 상태에서, 계속 위스키를 마신 까닭에 헛소리를 주절거리는 것 같았다. 그러나 핀세일이 내놓은 결론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었다.

“아인슈타인은 우스운 예를 들었어. 그 유대인 늙은이도 알고 보면 델라 웃기는 영감탱이야. 잘 들어 봐. 만약 멈추지 않는 총알이 있다면, 지구상에서 수평으로 총을 쏘면 그것은 한 바퀴 돌아와 자기 뒤통수를 맞힐 거야. 우주의 초구체 역시 마찬가지라는 거지. 우주 공간을 향해 총을 쏘면, 언젠가는 돌아와서 자기 뒤통수를 꿰뚫을 거라고. 그 영감탱이 말이 딱 맞았어. 오늘 그 미군 새끼가 그랬고, 이젠 내 차례가 된 것도 같은데, 안 그래?”

노메트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자 핀세일은 짧게 덧붙였다.

“그리고 다음은, 유어 차례가 되겠지.”


※ 과학과 교류하는 뇌라면 거의 누구나 아는 얘기지만, 아인슈타인이 예로 든 것은 총이 아닌 망원경이었다. 다만 물리학의 대명사처럼 되어 버린 그와 그의 이론을 들먹인 프로페셔널 킬러 핀세일의 개성에 맞춘 것이다. 그 (의도적인?) 오류는 에필로그에서 ‘해설자’가 밝힌다.



길고도 길었던 제5장은 여기서 끝을 맺지만, 처음에 써 두었던 글은 아직 많이 남아 있다. 그것들은 계속 책을 읽어 나가면서 나중에 관련된 내용이 나오면 사용하게 될지도 모른다.

또한 5장 독중감이 여기서 끝났다고는 했지만 ‘부록’(크학학!)이 남아 있다. 이미 첫 회에서 말했지만 지난 9월 초에 제5장을 읽으면서 틈틈이 어느 놀이터에서 거미의 생태를, 보다 정확하게는 공격성을 관찰한 바 있다. 그리 중요한 것도 아니고 또한 아주 상세한 것도 아니지만 동종의 각 개체들이 거미줄에 올라온 먹이(벌레)들을 어떻게 공격하는지, 개체 간의 차이는 있는지 등등을, 심심풀이로 살펴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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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뇌의가호 | 2009/10/27 16:20 | 독중감 讀中感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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