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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유전자 - 제5장. 부록: 거미 - 이종격투기
 

 부록: 거미 - 이종격투기의 세계


제5장을 쓰기 위해 다시 책을 읽기 시작할 즈음, 시원한 가을바람을 쐬기 위해 밖으로 나가서 독서를 했다고 했다. 그렇게 돌아다니다 보니 지난 한여름부터 밤에 운동을 하러 다니던 놀이터 겸 사회체육 시설에 들렀다.

그 며칠 전인 9월 3일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없는 거미 하나를 발견했다. 그놈은 우습게도 날마다 같은 자리에 세워져 있는 인근 병원의 승합차형 영구차 뒤쪽 좁은 범퍼 위에 집을 지어놓고 있었다. 밤중에 운동을 하다가 그놈을 처음 발견했는데 덩치가 매우 컸다. 그리고 그 가까운 키 작은 회양목 조경에서 유사한 거미집들을 많이 발견했다. 녀석들은 먹이 포획 방식이나 외형에서 매우 비슷했지만 색채가 달랐다.

일단 체구의 차이가 많이 나서 혹시 장성하면 색에 변화가 오는가 생각했지만 거미에서 그런 차이는 본 적이 없다. 왕거미나 무당거미나 모두, 새끼와 어미의 체색은 같다. 그런데 그 덩치 큰 놈은 비교적 밝은(연한 황토색?) 바탕에 등 쪽에 짙은 세로 줄이 두 줄로 나 있고, 다른 놈들은 모두 칙칙한 흙(먼지) 색깔이다. 녀석들은 집을 수평면에 얼기설기 조밀한 형태로 짓고, 한쪽 구석에는 동굴 같은 둥지를 만들어 거기 숨어서 기다린다.

※ 나중에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이들은 늑대거미과에 속하는 듯하다. 늑대거미 중에는 그물을 치는 종도 있다고 한다. 이런 거미집은 예전에도 종종 보았지만 유심히 살피지는 못했다. 아무래도 가장 눈에 잘 뜨이는 것은 수직면에 방사상으로 집을 짓는 것들이니까. 영구차 뒤에서 발견한 놈처럼 줄무늬가 있는 종의 사진이 가장 대표적이었는데, 다만 배 부분이 훨씬 날씬한 편이었다.

마침 공격성에 대한 내용을 읽던 중이라 놈들은 내 흥미를 끌었다. 동종끼리의 싸움은 아니지만, 먹이와의 이종격투기를 살펴보기로 했다. 물론 원활한 실험을 위해서는 먹이가 되는 벌레를 잡아다 주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거미의 사냥(포획) 방법은 크게 셋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수직으로 방사상의 집을 짓는 유형이다. 거미계의 대표 격인 왕거미나 호랑거미 등이 그렇다. 둘째는 집을 짓지 않고 돌아다니면서 직접 사냥하는 유형이다. 늑대거미나 깡총거미, 그밖에는 몸이 빈약하고 다리가 가늘고 무척 긴 거미 등이 있다. 다리가 긴 놈들은 종종 집 안에 들어와 기어 다닌다. 그리고 세 번째는 그 중간이라 볼 수 있는, 집을 짓되 일단 사냥감이 들어오면 육박전을 치러야 하는 유형인데, 앞에 말한 거미들이 그것들이다. (나중에 확인한 결과 늑대거미의 일종이다.) 또한 이 세 번째 유형이 공격성 관찰을 하기에 가장 적합하다. 비록 제5장에서 주로 다룬 동종끼리의 경쟁, 공격성은 아니지만, 그 특성은 살펴볼 만하다. 더욱이 이것은 운동이나 독서, 산책을 위해 나갔다가 쉽게 접할 수 있으니까.

떠돌이 사냥꾼 거미들은 일단 관찰하기가 어렵다. 상자에 넣고 기르며 먹이를 넣어 줘야 하는데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어릴 때 개미를 길러 보기도 하고 어쩌다 시골 방에서 처음 만난 아주 조그만 의갈류(아주 작고 전갈처럼 두 개의 집게다리를 가졌다. 꼬리는 없다. 이 부류는 꼬깔루스에서 다룬 적 있으니 궁금한 분은 참고하시길.), 그밖에 몇 년 전에는 산에서 매우 특이하게 생긴, 허공에 줄을 치는 거미를 잡아 길러 보려 시도하기도 했지만 모두 금세 죽었다. 의갈류는 도망쳐 버렸다. 탈출 전문 마술사 후디니도 아닌데 폐쇄된 조그만 통에서 달아났다. 그래서 되도록 함부로 생명체를 키우지 않는다.

한편, 어차피 ‘덮쳐서’ 잡는 사냥꾼 거미들은 행동 방식이나 전술에 다소 차이는 있을지라도 일단 공격을 한다는 특성이 있다. 그러나 어쨌든 먹이를 찾아다니며 공격을 해야 한다. 왕거미로 대표되는 수직 방사상 집을 짓는 유형은 공격성에 대해 관찰할 거리가 되지 못한다. 일단 그 줄이 매우 끈끈해서 거기 걸린 벌레는 움직이지 못하고, 놈들은 꽁지에서 실을 뽑아 여덟 개의 다리를 현란하게 휘둘러 쉽게 먹이를 감아 제압하기 때문이다. 가장 안전한 포획 방식인 까닭에 매번 별 차이가 없다.



그러나 둥지를 만들어 매복하는 거미는 다르다. 일단 집을 자주 짓지도 않고 먹이를 찾으러 돌아다니지도 않는, 가장 게으른 놈들이다. 건축가 혹은 부지런히 논밭을 가꾸는 농경민(?) 유형도 아니고 유목민 유형도 아니다. 그저 한 번 밭을 만들어 놓고는 그 밭에서 절로 싹이 트면 먹어치우는 식이다. 다만 어느 정도의 육박전은 감수해야 한다. 놈들의 사냥은 자기 영역(그물) 위에서만 행해진다. 관찰 결과 먹이가 조금이라도 영역을 벗어나면 포기한다.

며칠에 걸쳐 놈들의 몇몇 개체를 관찰해서 재미 삼아 올린다. 잘 다듬어진 놀이터라서 다양한 벌레가 없었지만 되도록 여러 분류군의 곤충을 찾아서 실험해 보았다.

여기서 A는 맨 처음에 승합차 뒤쪽 범퍼에서 발견한 커다란 놈으로, 몸통의 크기만도 손가락 마지막 마디 정도 된다.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이런 유형의 거미 중에서는 매우 큰 편이며, 나도 그런 종은 처음 보았다. B는 그 차 바로 옆의 키 작은 회양목 위에서 발견되었다. 나머지는 그 주변 곳곳에서 본 놈들이다.

흔히 허공에 집을 짓는 거미들은 그 줄에 먹이가 닿으면 진동을 감지하여 알아차린다고 되어 있다. 그런 까닭에 사람이 줄을 건드리면 달아난다. 크기를 구분하는 것이다.

그러나 둥지처럼 집을 짓는 놈들은 진동보다는 시각에 의존하는 듯하다. 수평면의 거미줄에 떨어진 벌레가 움직여도 거의 반응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시야 범위에 들어오면 공격한다.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지형(?)의 영향을 받기 마련이어서, ‘어쩌다’ 숨어 있는 둥지가 약간 높은 곳에 자리해 자기 영역을 모두 굽어볼 수 있는 놈은 먹이가 떨어지면 바로 반응한다. 그렇지 못하고 건축(!) 형태에서 ‘침실’이 약간 굽어진 뒤쪽에 있는 놈은 정면의 좁은 시계에 들어오는 먹이가 아니면 보지 못한다. (그 이유는 나중에 알았다. 기본적으로 육박전 스타일인 늑대거미과에 속하니까.)

처음에 A를 발견한 것은 9월 3일 밤쯤이고 낮에 다른 놈들의 존재를 안 것은 6일이다. 몇 번 먹이를 잡아줬지만 기록을 시작한 것은 8일부터이다.

A는 영구차 뒤쪽의 좁은 범퍼 위에 줄을 깔고, 둥지는 관을 넣는 문 틈새(폭 약 1센티미터) 안쪽에 지었다. 따라서 시계가 매우 좁다. 어느 정도는 진동에도 의존하는 듯하다. 다른 놈들도 그런 듯하지만 확실히는 알 수 없다.

*1. 이런 먹이 인지 시스템은 여기서 다루고자 하는 주제, 공격성과는 별개이므로 상세한 자료를 찾아보지는 않았다.

*2. 여기서 ‘공격’이란 재빨리 한 번 물었다 놓는 것을 의미한다. 먹이가 움직이면 틈을 봐서 신중하게, 계속 공격한다.

*3. 먹이가 너무 팔팔하면 곧 달아날 수 있는 까닭에 약간 타격을 준 뒤에 거미줄에 올려놓는다. 파리는 한쪽 날개만 떼어 올려놓는다. 아무래도 발 빠른 개미나 날아다니는 벌레 아니면 구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 일지 09.08.

- B vs 개미 :

개미가 집 위를 마구 돌아다녀도 모르다가 시야에 들어오자 공격한다. 그러나 한 번 물고는 재빨리 뒤로 빠진다. 몇 번 반복한다. (이러다 놓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먹이가 어느 정도 기절하면 그 주변을 빙빙 돌기도 한다. 사실상 생생한 개미로는 실험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다가 놓치니까. 그래서 약간 비틀거리게 만들어서 주지만, 그 ‘불구자’ 개미를 상대로도 그토록 힘겹게 싸운다. 처음에 거기에 놓인 먹이들은 거미가 튀어나올 때까지 얌전히 있기도 하지만, 일단 공격을 받으면 후닥닥 움직여 뚫린 구멍으로 떨어질 때도 많다. 그럴 경우 거미는 사라진 먹이를 찾으러 이리저리 돌아다니기도 한다. 단, 자기 영역 밖으로는 한 발짝도 벗어나지 않는다. 겨우 개미 하나를 완전히 죽였지만 이상하게 먹지 않고 집으로 돌아간다. 배가 불러서 ‘뒀다’ 먹으려는 것일까?

- B vs 파리 :

개미를 먹지 않기에 곧 파리 하나를 잡아 올려놓았는데, 발견 즉시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튀어나와 공격한다. 그리고 기절시키고 뭐고 할 것도 없이 바로 물고 들어간다. 덩치에서는 개미보다 파리가 더 위다. 따라서 약간 승강이를 벌이지만 견제의 성격보다는 힘 싸움이다.

* 두 가지 추정 가능한 사실 : 개미와 파리를 확실히 구분한다. 단, 그것이 시각적으로 파악한 이빨 등 외형적 특성 때문인지 아니면 그 종 자체에 익숙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둘째, 개미를 먹지 않은 것은 배가 불러서가 아니다.

* 뒤따르는 의문 : 먹지도 않을 개미를 ‘위험을 무릅쓰고’ 공격해 쓰러뜨린 이유는 무엇일까? 1. 침입자라서? 2. 경쟁자 제거? 3. 설마 다른 종류의 거미와 개미를 구분 못하는 것은 아니겠지? 벌레들 세계에도 의태 등 다양한 속임수가 존재하므로 (적어도 내가) 확실히는 알 수 없다. 다만 적어도 ‘맛으로’(입으로 물었으니까) 확인하기는 했을 것이다.


○ 일지 09.09.

B는 전날 죽인 개미를 여전히 먹지 않았다. 그 자리에 그대로 놓여 있다. 왕거미 등 허공에 줄을 치는 거미라면 날마다 집을 새로 지어서 ‘시체’가 사라지지만 이 게으른 놈들은 며칠이고 그대로 남아 있다.

- B vs 파리 :

역시 바로 물고 들어가 먹는다. 먹이를 먹을 때 모습을 보니 항상 엉덩이를 바깥쪽으로 하고 있다. (아마도 경쟁자가 와서 빼앗으려 할까 싶어 그런 듯하다.) 그 모습이 매우 섹시하다. (크학학!) 개미는 그대로 있는데 파리는 먹었다. 역시 개미는 안 먹는 것일까?

- A vs 개미 :

먹이를 발견하자 곧 튀어나와 공격한다. 워낙 덩치가 커서 먹이는 비교적 쉽게 기력을 잃는다. 두어 차례 물고는, 그 위에 버티고 서서 기다린다. 먹이가 완전히 기절하자 바로 물고 들어간다. (B는 개미를 먹지 않았는데, 서로 다른 종의 차이일까? 아니면 체구를 유지하기 위해 많이 먹어야 하기 때문일까?)

- A vs 파리 :

워낙 체구가 좋아서 단번에 물고 들어간다. 개미를 먹은 얼마 뒤이므로, 그 덩치에 어울리게 식욕이 왕성하다. 두 번째 파리까지, 모두 세 마리를 그다지 길지 않은 시간 내에 모두 먹었다.

- A vs 귀뚜라미 :

귀뚜라미는 낮에는 나오지 않으므로 밤에만 실험한다. (아마도 남들이 이상한 뇌로 볼지도 모른다. 크학학!) 처음에 말했듯이 이 거미들은 줄이 그리 끈끈하지 않아서 그 위로 벌레들이 잘 돌아다닌다. 다만 워낙 조밀해서 발이 조금씩 빠질 뿐. 그렇다면 보다 체구가 좋은 귀뚜라미는, 점프까지 가능하니까 대번에 달아날까?

의외로 귀뚜라미가 더 움직이지 못했다. 그 이유를 알았다. 체중이 무거운 만큼 더 잘 빠지고, 또한 귀뚜라미 다리에 난 수많은 가시가 조밀한 줄에 엉킨다. (개미나 파리 등 작은 벌레는 다리의 가시가 그 정도 크기는 아니다.) 먹이를 발견한 거미는 바로 튀어나오지만 이미 영토(거미줄) 위를 벗어날 상태이다. 거미는 먹이 뒷다리를 잡아 반대편으로 당긴다. 둥지가 있는 틈새 앞을 지나쳐 반대편으로 끌고 가서, 다시 방향을 틀어 둥지로 들어간다. 이때 귀뚜라미의 발이 조밀한 줄에 걸리는 등 까다롭다. 때로는 쉬어 가면서, 상황을 봐서 조금씩 둥지 안으로 끌고 들어간다.

귀뚜라미는 개미보다 훨씬 크고(체중은 10배쯤?) 또한 육식성이라 위험한 적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역시 개미만큼 위협적이지는 않은지 제압이고 뭐고 없이 그냥 집으로 끌고 들어간다. (제5장에서는 동종끼리의 경쟁 관련하여 귀뚜라미 싸움도 잠시 다루고 있다. 밤에 운동을 하러 가다 보니 내내 귀뚜라미 울음소리를 들었는데 마침 제5장에도 등장한다.)

- A vs 왕귀뚜라미 :

왕귀뚜라미는 인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곤충은 아니다. 중학교 때 생물도감(과학부도)에서 그 이름을 처음 알았는데, 당시에 들판을 뒤지다가 몇 번 보았지만 그 뒤로 처음 본 것이다. 이 개체는 덩치가 매우 커서 길이 3센티미터 정도에 폭도 1.5센티미터쯤 된다. 굵직한 성인 남자 손가락 한 마디보다 큰 셈이다. 그 크기부터 보통 귀뚜라미와 구분이 되지만 생김새도 약간 다르다. 일단 보통 귀뚜라미가 갈색인 데 비해 이놈은 검은색에 가깝다. 또한 보통 귀뚜라미가 전체적으로 비교적 럭비공 형태인 데 비해 이놈은 머리를 빼면 온통 각이 져 있다.

이놈 역시 거미줄에 올려놓자 그 체구에 어울리지 않게 쉽게 달아나지 못한다. 엉금엉금 긴다. 다만 힘이 센 까닭에 보통 귀뚜라미보다는 잘 돌아다닌다.

그러나 거미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 틈새 안쪽에 둥지가 있는 까닭에 보이지도 않는다. 아직 식사 중인 걸까? 이미 식사가 끝났다면 배가 불러서? 개미 1마리 더하기 파리 2마리보다 귀뚜라미 한 마리가 더 양이 많으니까. 그것도 아니라면, 겁이 나서?

심지어 왕귀뚜라미가 틈새 안으로 머리를 집어넣어도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단적인 실험이라서 거미가 반응하지 않은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체구로 볼 때 왕귀뚜라미는 이 거미보다 더 크다. 이빨을 제외한 힘 싸움에서도 이기기는 힘들다. 다만 거미는 귀뚜라미 뒷다리를 물고 들어가니까 좀 복잡한데, 어쨌든 이유는 밝히지 못했다. 왕귀뚜라미는 흔한 벌레가 아니라서 나중에 다시 실험할 수도 없었다.

- B vs 귀뚜라미 :

역시 귀뚜라미는 발이 걸렸다. 거미는 발견 즉시 튀어나와 공격했지만 순간 먹이는 발버둥치고, 약한 거미줄이 꺼져 밑으로 떨어져서 아쉽게도 무승부.

이후 며칠에 걸쳐 다시 실험했지만 매번 귀뚜라미는 밑으로 꺼져 버렸다. 때로는 파리도 공격 받는 순간 발버둥을 치면 밑으로 떨어질 정도로 줄이 약해서 귀뚜라미 실험은 더 이상 불가.

다만 A의 행동에서 추정할 때, 이 훨씬 작은 거미들도 개미보다는 귀뚜라미를 덜 경계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먹이의 체구가 더 커서 힘겨운 싸움이 될 듯하다.


○ 일지 09.10.

개미를 먹지 않는 B 때문에 동종의 다른 개체들도 실험하기 시작했다.

- B vs 개미 :

이틀 전에 죽인 개미가 그대로 있다. 새로운 개미를 주니 전투 끝에 물어 죽였지만 이번에도 먹지 않았다. 점점 궁금해진다.

- C vs 개미 :

먹이를 던져 주자 바로 튀어나와 달려들었다. 그리고 죽이지도 않고 그냥 다리를 끌고 둥지로 돌아갔다. 용감성이 도를 넘는다. 놈보다 훨씬 큰 A도 개미를 그렇게 쉽게 다루지 않는데. 어쨌든 이 종이 개미를 먹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확인. 그렇다면, 이들도 개체에 따른 차이가 있는 것인가? 점점 복잡해진다.

- D 또는 E vs 개미 :

둘 다 C와 비슷했다. 다만 C처럼 과감하지는 않고 어느 정도 신중하게 싸운다.

- A vs 때때기 :

때때기는 방아깨비 비슷하지만 훨씬 작고(성체 길이 약 4센티미터 정도) 체구가 작은 만큼 더 잘 난다. 이놈이 줄에 걸리자 시각적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진동을 감지하고 거미가 나온다. 이때 먹이는 한쪽 귀퉁이에서 줄을 따라 위로 기어오르다가 멈춘 상태. 거미는 그저 한참 지켜보다가 그냥 들어간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먹이가 움직이지 않아서 모르는 것인지, 아니면 전혀 생소한 형태 또는 체색(녹색)이라 그런 것인지. 설마 두려워서 그런 건 아니겠지? 다시 먹이를 집 앞쪽에 내려주었는데 이번에는 바깥쪽 줄에 걸렸다. 거미가 다시 나와 쳐다보다가, 다시 들어간다. 역시 내키지 않는 것인지, 관심이 없는 것인지. 그러나 다른 거미들을 관찰하다 돌아가 보니 막 그 큰 먹이를 물고 둥지로 들어가고 있었다.

- F vs 개미 :

먹이(침입자?)와 일전을 치러 죽인 뒤에 그냥 둥지로 돌아간다. 확인해 보니 파리를 먹고 있다. 이미 식사 중이라 그런 것일까, 아니면 B처럼 개미는 먹지 않는 것일까? 좀 더 살펴보니 둥지 안쪽에 개미의 시체가 있었다. 그렇다면 먹지 않는 것은 아니다. ‘뒀다’ 먹으려는 것이다.

* 둥지 안쪽에 있는 개미의 시체는 벌레 관찰을 하면서 알게 된, 놀이터 근처에 사는 어여쁜(?) 초등학생 덕분에 알게 되었다. 시간을 쪼개어 이것저것 하다 보니 그 점을 놓쳤다. 그런데 곁에서 지켜보던 그 여자아이가 그것을 발견한 것이다. 이런 종류의 거미 중 ‘집안’에 시체를 들인(크학학! 실제로는 방치한, 혹은 미끼로 쓰는 듯한) 개체는 이때 처음 보았다. 그 기특한 여학생 덕분이다. (보다 긴 시일이 흐르고 보다 다양한 개체들을 보다 보니 체액을 빨아먹은 벌레 시체를 밖에 내다놓는 놈들과 소굴 안에 두는 놈들의 두 가지 유형이 있었다.)

* 처음에 거미 관찰을 옆에서 따라다니며 지켜보던 아이들이 있었는데, 녀석들은 실험에 계속 동참도 했지만 아직 일고여덟 살밖에 안 된 어린아이들이라 아무래도 관찰력이 부족했다. 처음에는 그저 “거미하고 호랑이하고 싸우면 누가 이겨요?”(크학학!) 하는 식의 질문만 끈질기게 하다가, 여러 날이 지나면서 비로소 거미(벌레들)에게 애정 어린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 일지 09.11.

거미 각 개체 vs 덩치 큰 쇠파리 :

이전까지 잡았던 쇠파리들은 비교적 작은 놈들이었다. 쌀알보다 조금 큰(뚱뚱한) 정도였다. 그런데 이날은 콩자반 크기에 가까운 놈들이 많아서 주로 그놈들을 잡아다 주었다.

일단 파리가 망에 떨어지면 재빨리 달려오지만 그 체구 때문에 약간 주춤하는 모습을 보이는 녀석들이 있다. 혹은 일단 달려들었다가 물러나서 잠시 지켜보기도 한다. 어쨌든 작은 파리를 상대할 때보다는 아주 약간 힘들지만 결국 곧 집으로 끌고 들어간다.

B vs 개미 :

두 번에 걸친 실험에서 B는 개미를 먹지 않는다고 확신했지만, 아무래도 미심쩍어서 한 번 더 시도해 보았다. 이미 그물 한복판에는 전에 죽은 개미 두 마리가 그대로 놓여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의외였다. 새로운 개미가 떨어지자 재빨리 달려들어 얼마쯤 싸워 죽인 뒤 바로 물고 집으로 들어갔다. 도대체 이 변화는 무엇일까? 다른 날보다 훨씬 배가 고팠나?

B vs 음산한 파리(?) :

처음에는 딱정벌레인 줄 알고 잡았는데 알고 보니 파리 비슷한 놈이었다. 다만 몸이 아주 가늘고 긴 형태이다. 길이는 1센티미터 정도밖에 안 된다. 검은 색에 가까운 짙은 녹색인데 언뜻 벌로 착각할 만하다. 더듬이도 벌처럼 생겼다.

손아귀에 잡을 때 딱정벌레인 줄 알고 힘 조절을 못한 탓인지 아니면 애초 그랬는지 빌빌거리고 날지 못하는데, 일단 그물 위에 떨어지자 거미가 달려 나온다. 그러나 덤비지는 못하고 망설이다가 집으로 후퇴. 잠시 후 먹이가 움직이자 다시 달려 나오지만, 먹이는 영역 언저리의 작은(높이 몇 센티미터) 가지를 기어오른다. 거미는 신중하게 한 번 달려들지만 먹이가 가지 꼭대기로 기어오르자 포기한다.

F vs 음산한 파리 :

B에게서 탈출한 먹이를 잡아서 F에게 주었다. 먹이는 진이 빠졌는지 죽은 척하는 것인지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다 약간 움직이자 곧 거미가 달려 나와 공격한다. 그러나 매우 신중하다. 개미를 상대할 때처럼 아주 조심스럽다. 개미 등 육식 곤충처럼 강력한 두 개의 이빨이 두드러지는 것도 아니고 움직임이 민첩한 것도 아닌데 주의한다. 아무래도 벌로 착각한 듯하다. 그렇다면 역시 거미는 어지간한 곤충 유형에 대한 정보를 다 가지고 있고, 이 곤충은 벌을 ‘의태’한 듯하다.

거의 움직이지도 않는 먹이를 조심스레 한 번씩 물어 죽인 거미는 그냥 둥지로 돌아간다. 알고 보니 다른 먹이를 먹고 있었다. 다음날 오후에 다시 가 보니 그 ‘음산한 파리’의 시체 역시 둥지 속에 놓여 있었다.


○ 일지 09.14.

A는 비가 한바탕 퍼부은 날 오후부터 보이지 않았다. 집이 망가져 있어서 비바람 탓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이사를 갈 것까지는 없지 않은가. 먹이를 줘도 안 나온다. 그 이유를 이날 어느 정도 추정해 냈다. 그 승합차는 처음에는 구급차인 줄 알았는데 영구차인 듯하다. 거미가 사라지기 전에 이틀에 걸쳐 상복을 입은 사람들이 그 근처에 보였는데, 그 차로 관을 실어 간 듯하다. 관을 넣으려고 문을 열 때 그 덩치 큰 거미는 쉽게 눈에 띄었을 것이고, 죽거나 쫓겨나거나 했을 것이다.

놀이터 조경이라 다양한 벌레들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에 더 이상 공격성을 실험할 만한 대상이 될 색다른 먹이는 없었다. 그런데 이날 밤은 운이 좋았다. 지난주부터 밤 기온이 크게 떨어지면서 귀뚜라미도 흔치 않게 되었는데 이날은 비교적 많이 나타났다.

F vs 지네 :

길이가 2센티미터 남짓한 아주 작은 지네를 발견해서 그물에 올려놓았다. 그 작은 지네는 조밀한 그물에 걸리지도 않고 또한 발이 많은 덕인지 빠지지도 않고 매끄럽게 달아난다. 거미가 곧 달려 나왔지만 약간 거리를 두고 견제하면서 뒤를 쫓는다. 그러다가 놓쳐 버렸다.

먹이를 놓쳤을 때와 ‘사라졌을’ 때 거미의 반응은 다르다. 놓치면 바로 둥지로 철수하지만, 사라지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혹은 숨었는가 싶어) 주변을 돌아다니며 찾는다.

F vs 귀뚜라미 :

그 동안 귀뚜라미에게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의 실험은 늘 실패로 끝났다. 덩치 좋은 A의 집 외에는 귀뚜라미가 쉽게 그물에서 벗어나거나 혹은 거미가 덤빌 때 구멍이 뚫려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물에 먹이가 떨어지자 거미는 재빨리 달려 나왔지만 전투태세를 갖추는 사이 귀뚜라미는 달아나 버렸다. 결국 멀쩡한 귀뚜라미로는 실험이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병신을 만들어(크학학!) 실험할 수도 없고. (만약 거미가 잡아먹지 못할 경우, 멀쩡한 귀뚜라미를 ‘장애우’로 만들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두 번째로 떨어뜨린 놈은 용케도(?) 등으로 떨어져 거미줄에 들러붙어 버렸다. 그러나 그 자세에서는 전혀 움직이지 않았고, 따라서 거미는 반응하지 않는다. 결국 가는 풀줄기로 콕콕 찔러 봤지만 오히려 거미는 깊이 숨어 버린다. 줄에 와 닿는 충격의 정도를 감지한 것이다.

포기하고 운동이나 하다가 좋은 생각을 떠올렸다. 파리를 이용해 불러내는 것이다. 파리들은 어두운 곳에서는 거의 날지 않는다. 게다가 밤 기온이 떨어지면서 잘 움직이지도 못하고 풀잎에 붙어 있어 잡기도 쉽다. 문제는 파리를 떨어뜨렸을 때 귀뚜라미가 움직이지 않으면, 아니 움직인다 해도 거미는 일단 눈에 띈 파리를 공격할 것이다.

그런데 운이 좋았다. 파리는 귀뚜라미 배 위로 떨어졌고, 곧 거미가 달려와 공격하는 순간 튀듯이 그물 밖으로 달아났다. 대신 깜짝 놀란 귀뚜라미가 움직이자 곧 표적을 바꾼다.

누워 있는 먹이의 머리 방향에서 공격하는데 그것이 귀뚜라미에 대한 공격의 특징인지 아니면 자기 둥지 쪽이라 그런지는 알 수 없다. 확실한 것은 귀뚜라미에게는 신중하다는 것이다. 먹이가 뒤로 누워 움직이지 못하는 데도 조심스레 틈틈이 한 번씩 문다. 나중에는 머리 쪽을 피해 가슴 부분(다리)을 공격한다. 귀뚜라미가 거의 움직이지 못하자 전에 A가 그랬듯이 다시 자세를 바꾸어 뒷다리를 문다. 끌고 가려는 것인가? 아니면 움직일 수가 없어서 그냥 식사하는 것인가. 그 미세한 동작으로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이 둥지로 끌고 가려는 시도였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몇 번 뒷다리를 물었다 놓았다 하더니, 나중에는 배 쪽으로 가서 빨아먹기 시작한다. 그 크고 무거운 먹이가 등짝이 거미줄에 붙어 버린 까닭에 옮기지 못하는 것이다.


보다 다양한 벌레가 없어서 더 실험할 것은 없는 듯하다. 다만 날이 선선하기 전에는 그리마 새끼가 흔히 돌아다녔는데, 그리마는 손으로 잡기에 찝찝하고 또한 기다란 다리가 망가질 수도 있다. 몸이 너무 부드러워서 자칫하면 터진다. 따라서 그리마는 시도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와 유사하면서 훨씬 다리가 짧고 단단한 지네에 대한 반응을 보았으니 그 정도면 되었다.

거미에 대해 상세히 연구한 서적 따위를 읽어 본 것이 아니라서 확실한 것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물에 걸린 벌레의 형태로 전투 방식을 택하는 듯하다. 파리에 대해서는 볼 것도 없이 달려드는데 그것이 파리라는 동물 자체를 확실히 인지하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다른 벌레에 대한 인지 정도를 알자는 것이 아니라 공격성, 공격 방식인데 적어도 위협적인 형태를 가지고 있거나 혹은 위협적인 벌레(벌 따위)와 유사하면 신중하게 대한다.


○ 추가 일지 09.18.

H vs 집게벌레 :

집게벌레의 꽁무니에 달린 집게는 매우 효율적이다. 위쪽에서 공격하는 적에게도 반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도 마찬가지여서 곧 손을 집힐 각오를 해야 한다. 이것은 개미의 이빨보다 효율적이고 더 강하다. 아무래도 턱의 힘만으로 무는 것보다 근육이 더 크기 때문인 듯하다.

먹이를 던져주자 거미는 재빨리 튀어나와 약간 견제를 하면서 공격했다. 그런데 곧 기겁을 하며 둥지로 돌아간다. 집게벌레 꽁무니의 집게에는 거미의 다리 하나가 남아 있었다. 왼쪽 앞다리를 잘린 것이다.

얼마쯤 둥지에 처박혀 있던 거미는 집게벌레가 달아나자 5밀리미터쯤 거리를 유지하면서 찔끔찔끔 쫓아간다. 이미 한 번 문 까닭에 독이 퍼져 죽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집게벌레의 동작도 점점 둔해져 가지만 거미는 함부로 덤비지 못한다. 이미 앞다리 하나를 잃었으니 신중할 수밖에 없다. 결국 집게벌레는 달아나 버렸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집게벌레는 달아나면서 틈틈이 꽁지를 위로 올려 허공을 집어 댄다. 처음에는 이렇게 생각했다. 집게벌레가 그런 행동을 보이는 것은 보통 공격을 당했을 때인데, 그렇지 않음에도 계속 그런 것은 거미의 독 때문에 계속 반응하는 것일 것이라고.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시계가 넓어 뒤쪽을 볼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직접 공격을 받지 않음에도 그런 행동은 계속되었고 무사히 달아났다.

○ 추가일지 09.24.

J(?) vs 쇠파리

오랜만의 실험.

거의 황폐화된 놀이터 생태계에 새로운 거미집이 나타났다. 해 질 무렵에 갔다가 발견했다. 지난번 B와 F의 중간 지점이다. B가 잠적(?)한 것으로 볼 때 녀석일 가능성이 높다.

파리를 주었는데 꽤나 신중하게 상대한다. B가 아닌가? 그 어떤 거미도 파리 정도는 그냥 물고 들어갔는데. 몇 번 공격하다가 물고 집으로 들어가던 중 입구 가까이의 그물에 파리의 다리가 살짝 걸렸다. 몇 번 당기던 거미는 당황한 듯 재빨리 집으로 숨는다. 그러다가 파리가 움직이자 다시 튀어나와 물고 들어간다.

이놈은 둥지 경사가 너무 심해 어찌어찌 하다 보니 자세가 안에서 밖을 향하게 되었다. 잠시 그 상태로 식사하다가, 이내 파리를 타넘어 그 섹시한 엉덩이를 밖으로 돌리고 식사한다.

(다음날인 25일에도 쇠파리로 실험했는데 이때는 밤이라 그런지 몰라도 좀 더 적극적인 공격성을 보였지만 역시 둥지 입구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 추가 일지 09.15.

놀이터 생태계가 초토화되어 버렸다. 잡초들을 모두 제거한 것이다. 그 바람에 귀뚜라미는 거의 사라지고 다른 벌레도 많이 줄었다. 이미 독중감 제5장도 완성하고 웬만큼 관찰은 끝난 뒤였지만 계속 살필 수 없는 것이 아쉬웠다. 한편으로는 거미왕국의 주택들이 많이 망가졌다. 그나마 늑대거미들은 잘 다듬어진 회양목에 집을 지어 집이 철거되는 봉변을 당하지는 않았다.


○ 추가 일지 09.17. 거미들에게 조의를 ▶◀

모든 거미가 죽었다.

오후 늦게 내가 놀이터를 찾아가자 꼬마들이 달려오며 외쳤다. 거미가 죽었다고. 어떤 거미인가 했더니 언저리의 배수로 옆에 줄을 쳤던 커다란 호랑거미였다. 전날 손가락 끝마디만큼 큰 노린재를 잡아먹던 녀석이었다. 그 큰 먹이를 거침없이 휘휘 감아 버리는 광경에 꼬마들은 감탄사를 연발했었다.

그런데 그 녀석이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것이다. 만져 보니 미세한 반응을 보이지만 거의 죽은 상태였다. 물리적인 공격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전날 잡은 노린재는 여전히 거미줄에 남아 있다. 아무래도 살충제를 뿌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며칠 전에는 잡초를 제거했기에 더욱 그런 의혹이 짙어졌다. 어떤 꼬마는 무덤을 만들어 주자고 말했다.

알고 보니 모든 거미들이 사라졌다. 나무나 운동기구에서 늘어진 한 가닥 거미줄에 축 처진 채 매달려 있는 개체도 여럿 발견되었다. 약을 뿌린 것이 확실했다. 그다지 길지 않은 거미왕국의 영광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직접 기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날마다 먹이를 잡아다 먹이며 돌보았는데.


○ 추가 일지 10.31.

제5장 독중감 및 거미 관찰에 대한 기록을 모두 끝낸 것이 9월 중순이었는데, 장기간에 걸쳐 질질 늘어지며(크학학!) 독중감을 연재하다 보니 그 사이 가끔씩 변화가 있었다. 9월 말부터는 물가 고운모래에서 잡은 개미귀신(명주잠자리 애벌레)들에게 흥미를 붙이고 한 달 이상 기르면서 거기 매달리느라 거미는 그리 신경 쓰지 않았다. 더욱이 9월 17일의 대멸종(?) 혹은 대학살 이후 거미는 거의 없었다. 놀이터 언저리에 위치해서 겨우 살아남은 개체, 혹은 나중에 나타난 개체가 약간 존재할 뿐이었다. 그나마도 기온이 점점 떨어지고 먹잇감들도 줄어들면서 거의 다 사라졌다.

그런데 이제 가을도 잔뜩 기울어 거의 겨울로 접어드는 시절에 뒤늦게 회양목에 둥지를 튼 단 하나의 개체를 발견했다. 그래서 모처럼 추가한다.

Q vs 벌레들 :

이 새로 나타난 녀석은 제법 덩치가 큰 편이다. 집을 지은 위치는 길가에 가까운데, 전에 B와 F 등등의 중간 지점이다. 그런데 체색은 칙칙한 다른 녀석들과 달라서 보다 연했다. 등의 줄무늬가 희미하기는 하지만 A에 가까운 색이다. 어쩌면 그 자손인지도 모르겠다.

제법 덩치가 큰 파리(집파리보다 조금 크다.)를 잡아 거미줄에 떨어뜨리자 번개처럼 달려와 낚아채서는 둥지로 끌고 갔다. 그리고 그 섹시한 엉덩이를 밖으로 향한 채 식사한다. 만약 파리가 달아날 경우(날개는 떼었지만) 그 복잡한 회양목 밭에서 다시 잡기가 힘든 까닭에 여분으로 한 마리를 더 잡아 왔는데, 혹시나 싶어 그놈도 떨어뜨려 보았다. 과연 식사를 중단하고 영업(크학학!)을 하러 나올 것인가, 아니면 먹기에 바빠서 비즈니스고 뭐고 집어치울 것인가, 그것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런데 거미는 즉시 달려 나왔다. 다만 파리가 튀어 달아나 버렸다. 식사 중의 비즈니스를 거듭 확인하고자 또 다른 파리를 잡아와 떨어뜨리자 역시 식사를 중단하고 뒤돌아선다. 그러나 이번에는 바로 튀어나오지 않고 그저 지켜본다. 파리가 움직이지 않아서 그런지도 모른다. 그렇게 신중한 대치(혹은 관망) 상태는 한동안 계속되었다.

지겨워서 운동기구로 가서 얼마쯤 운동을 한 뒤 돌아가 보니, 거미는 두 번째 파리의 1.5센티미터 정도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내가 도착한 잠시 후 녀석은 마치 복싱선수처럼 오른쪽, 이어 왼쪽으로 사이드스텝을 밟고는 바로 파리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집으로 끌고 들어가 식사한다. 첫 번째 파리는 일단 제쳐두고 새로 잡은 놈부터 먹는다.

얼마쯤 뒤에 꽤 친숙해진 꼬마 계집아이가 왔기에 새로 등장한 거미 얘기를 해 주었다. 이 아이는 여섯 살밖에 안 되었는데 못 만지는 벌레가 없다. 아무래도 요즘 아이들은 벌레를 질색해서 잠자리도 못 만지는 개체(크학학!)가 많은데 이 아이는 뭐든 다 만진다. 심지어 말라죽은 지렁이를 주워 들고 다닌다. 그리마나 비거주성(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사냥하는) 늑대거미도 그냥 맨손으로 잡는다. 이 정도면 ‘다리가 세 쌍 이상인 동물’과는 절대 친하지 않다는 보편적인 여자들은 물론 어지간한 남자들보다 더 벌레와 친숙하다. 심지어 ‘덜 죽은’ 지렁이 한 마리를 발견하자 한참 동안 가지고 논다. 그네도 태워 주고 운동기구에 올려놓고 운동도 시키고(?) 등등. (크학학! 거의 상식을 초월한 행동. 어쩌면 인형 대신 벌레를 가지고 노는 듯하다. 인형보다 벌레를 더 좋아한다.)

새로 등장한 거미의 존재를 알자 즉시 개미를 잡아다 올려놓는다. 두 번의 비즈니스를 마치고 느긋하게 식사 중임에도 거미는 다시 달려 나온다. 그리고 일반적인 개미 공격 방식을 취한다. 한 번 물고 뒤로 물러나 완전히 죽을 때까지 지켜보는 방식이다. 그리고 완전히 죽자 물고 들어간다.

※ 개미를 공격한다는 것이 아주 골치 아픈 이유는, 그 유연한(?) 신체구조 때문이다. 개미는 곤충 중에서는 흔치 않게 (분류학적으로 비교적 가까운 벌처럼) 몸을 완전히 웅크릴 수 있다. 따라서 신체 어느 부위를 공격당해도 반격이 가능하다. 어린 시절에는 흔히 관찰했었지만 이번에 개미귀신 사육 문제로 모처럼 되새겼다. 어쩌다 서로 다른 집에서 잡은 개미를 잡아 개미귀신 통에 넣을 경우, 서로 싸움이 일어난다. 이때 어느 놈이 승자인지도 알 수 없을 정도로 서로 문 채 엉켜 있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된 것이다. 그런 까닭에 (9월 초의 거미 관찰 초기에) 덩치가 아주 컸던 늑대거미 A가 귀뚜라미처럼 몸집이 크고 이빨이 강력한 먹이조차도 뒷다리를 질질 끌고 다니는 것과 달리, 상대가 개미일 때는 일단 한 번 문 뒤에 독이 퍼져 죽을 때까지 그 자리에서 기다렸던 듯하다.



 덤: 왕거미류의 공격성


이미 처음에 말했듯이 허공에 방사상 줄을 치는 거미는 현란한 발놀림으로 먹이를 칭칭 감아서 제압하는 까닭에 이번에는 별 관심을 갖지 않았다.

전에 ‘리모컨 작동식 거미’(크학학!)에 대한 글을 올린 적 있는데 녀석은 열흘쯤 전에 떠나갔다. 날이 선선해지면서 벌레가 많이 날아들지 않자 보다 넓은 땅으로 청운의 꿈을 품고 떠난 듯하다.

놀이터 풀숲에는 제법 자란 호랑거미 한 마리가 집을 짓고 있었는데 잠자리나 성인 새끼손가락 길이쯤 되는 섬서구메뚜기 따위를 줄에 걸어 주어도 제법 쉽게 잡아먹었다. 다만 이렇게 큰 벌레와 일전을 치르면 집이 다 망가지는데 어차피 그만한 소득을 올렸으니 충분한 보상이 된다. 또한 집은 다음날 새벽에 다시 짓는다.

그밖에, 무당거미는 눈에 잘 띄는 나뭇가지 사이에 집을 짓는 까닭에 새 따위에게 공격을 당해서 그런지 종종 다리가 부족한 개체를 볼 수 있다. 몇 년 전에도 그런 녀석이 ‘불구의 몸으로’ 어둠 속에서 집을 짓는 모습을 보고는 기특했는데, 이번에도 똑같은 모습을 보았다. 다리 세 개가 부족하면 효율성은 8분의 5가 아니라 그 절반도 못 되는 듯하다. 아무래도 후천적 훈련에 의해서가 아니라 본능적으로 다리를 움직여 작업을 하는 까닭에 몇 개만 부족해도 그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이런 거미들은 이번 관찰에서는 제외했지만 어쩌다 예외가 있었다. 몸통의 길이가 1센티미터가 못 되는 어린 무당거미가 작은 소나무 위의 눈에 띄는 장소에 있어 종종 살폈는데, 너무 못 먹어서 배가 솔잎 굵기밖에 안 된다. 반대로 며칠 전에 어느 (인위적 환경에 의하여) 벌레가 우글거리는 곳에서 본 무당거미들은 흔히 볼 수 있는 무당거미와 달리 배가 너무 뚱뚱해서 터질 지경으로 보였다. 평균적인 무당거미의 배는 사람 새끼손가락 끝마디와 형태가 비슷하다. 그런데 그 뚱뚱한 놈들은 엄지 끝마디처럼 생겼다. 체구도 흔히 보는 놈들보다 훨씬 컸다.

어른 거미들은 워낙 실력이 좋아서 전투 자체는 관찰할 것이 없다. 그냥 휘감아 버리면 되니까. 그러나 어쩌다 시도해 보니, 새끼들은 아주 달랐다.


○ 일지 09.12? 무당거미 새끼

새끼 무당거미가 껍질을 벗었는데 도통 먹이가 안 걸린다. 하루살이가 우글거리는 인근 풀밭이나 밤에 불이 켜지는 보안등 밑에 집을 지어야 하는데 영 장소를 잘못 택했다.

결국 내가 개미 한 마리를 잡아 줄에 걸어주었다. 조금 뚱뚱한 파리 등은 그물이 무게를 견디지 못해 뚫어진다. 다리가 발달한 개미는 이런 그물에 걸기 좋다.

그러나 처음에 다가가던 거미는 잠시 지켜보다가 제자리로 돌아간다. 엄두가 나지 않는 듯하다. 그렇다고 현란한 무술을 할 수준도 아니다. 어쩌면 먹지 못해서 실을 뽑아내지 못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전에 엠블에서 연재하던 [이소부화] 시리즈의 <부자 거미 빈자 거미> 이야기를 연상케 한다.)

결국 더 작은 불개미를 잡아서 걸어 주었지만 역시 달려들지 못한다. 때로는 벌레가 부딪치면 지레 겁을 먹고 줄에서 떨어지기도 한다. 아마 녀석이 공격할 수 있는 대상은 기껏해야 하루살이 정도인 듯하다.


○ 일지 09.14. 왕거미 새끼

몸통 크기가 5밀리미터도 안 되는 작은 놈이다. 앞의 겁 많은 무당거미 새끼와 비슷한 연배(크학학!)인 듯하다. 줄이 워낙 가늘어서 조그만 불개미로 실험을 해 보았다. 그런데 놈은 훨씬 용감했다! 그러나…….

용감한 자는 위험에도 쉽게 처한다. 불개미에게 바로 달려든 새끼 왕거미. 잠깐 싸우다 상대의 반격에 후퇴하던 중, 다리를 물려 버렸다. 질질 끌고 위쪽 지지대로 달아나다가 겨우 떨쳐 버렸다. 그리고 빌빌거린다. 개미산(개미의 침)에는 마취 성분이 있다고 하는데 그 때문인 듯하다.

얼마쯤 뒤에 다시 개미를 공격하려 들지만, 몸을 가누지 못한다. 오히려 자신이 떨어질 지경이 되어 꽁무니에서 줄을 뽑아 겨우 매달린다. 그러는 사이 불개미는 줄에서 떨어져 버렸다.



 꼴찌에게 갈채를


(9월) 14일 밤에 운동을 하다가 틈틈이 거미들에게 먹이를 주었다. ‘늑대거미 B vs 귀뚜라미’의 전투도 이때 행해졌다.

그러다가 골목길 전신주에 붙은 보안등에 주목했다. 그곳은 왕거미의 아파트였다. 대부분이 아주 작은 놈들이다. 좀 더 높은, 불빛 가까이에는 반쯤 자란 놈도 있다. 왕거미는 그 크기에 따라 사는 층이 정해진다. 중력에 반하는 계층구조로, 높은 곳에 큰 놈이 산다. 불빛에 가까운 높은 자리일수록 크고 힘센 놈이 차지하지만 큰 놈은 그만큼 많이 먹어야 하니 당연한 순리이기도 하다.

그 사실을 처음 안 것은 10년쯤 전에 어느 외진 시골길에서였다. (전봇대) 가로등 하나가 켜져 있는데 주변에 수풀이 많아 온갖 벌레들이 날아다녔다. 당연히 왕거미들이 몰려들어 집을 짓는다. 일반적인 가로등이라면 미끄러워서 맨 위쪽에 등불이 머리를 내민 곳이 아니면 집을 지을 수가 없다. 그러나 전봇대에는 곳곳에 집을 지을 수 있는데, 그런 전봇대가 쌍으로 있어 더욱 집을 지을 데가 많아서 입주한 가구가 수십에 달했다. 물론 1가구 1인(아니, 1충! 1주(蛛)! 크학학!) 주거 형태이다. 그런데 위쪽으로 갈수록 ‘알’이 굵어지고(다시 크학학!) 밑으로 내려가면 잘아진다. 이 인가 가까운 골목길의 희미한 보안등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고 자잘한 거미들이 꽤 많지만 쉽게 눈에 뜨이지는 않는다.

풀잎에 붙어 있는 파리를 잡아서 살짝 던져 보면 제대로 걸리지 않는다. 잠깐 걸렸다가 떨어지고는 한다. 그런데 맨 아래쪽, 땅에 걸쳐서 집을 지은 아주 작은 주택에 파리가 걸렸다. 더 이상 떨어질 곳도 없어서 파리는 그냥 거기서 허우적거린다. 결국 가장 힘이 없어서 맨 아래에 집을 지은 조그만 놈이 횡재했다.

때로는 꼴찌에게도 돌아가는 것이 있다.

아니, 보다 나은 놈보다 더 유리할 때도 있다.

꼭 사람이 먹이를 던져주지 않아도, 만약 위쪽에 걸렸던 벌레가 발버둥을 치다가 밑으로 떨어질 경우 가장 힘없는 1층 주민의 먹이가 될 것이다. 역시 세상의 생물들은 어떤 형태, 어떤 방식으로든 살아간다. 백수의 왕이라 불리는 사자가 잡아먹은 가젤이 흘린 피가 땅속에 스며들면, 그 속에 사는 미생물들에게는 아주 좋은 만찬거리가 되지 않는가.

꼴찌에게 갈채를! 짝짝짝!



정리: 2009.09.14. - 15.

최종 수정: 11.03.


by 뇌의가호 | 2009/11/03 16:24 | 독중감 讀中感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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