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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봤다! - ‘제왕’ 제임스 카메론의 귀환


 

- 스토리뇌인 -


먼 미래, 뇌인류가 뇌양계 밖의 머나먼 우주로 진출하는 시대.

뇌인간들은 뇌사자자리(Noeo)의 알파 별 뇌굴루스(Noegulus) 주위를 공전하는 판뇌라(Pannoera) 행성에 주목한다. 판뇌라는 뇌지구와 매우 흡사한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다. 공기 성분은 물론 생명체의 기본적인 대사 체계도 거의 같다. 이미 뇌지구는 뇌인구 과잉으로 외계 행성으로의 진출이 절대적으로 요구되었는데, 판뇌라야말로 가장 적합한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곳에는 수많은 뇌생명체가 살고 있고 또한 뇌인간과 흡사하게 생긴 직립보행의 지능적인 생명체까지 이미 나타나 있었다. 이 모든 것은 심우주 탐색 프로그램에 의해 밝혀진 것으로, 이 프로그램은 공간축소, 말하자면 초공간 투시 기술에 의한 것이었다. 뇌인류는 이 기술을 이용한 초공간항법도 이미 개발해 두고 있었다. 다만 아직까지는 전송 용량의 한계로 단기간에 대량의 장비와 뇌인원을 전송할 수는 없었다. 신세계 행성으로의 진출은 아직 요원했다.

거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그 하나는 뇌인도적인 문제이다. 이미 지적인 뇌생명체가 살고 있는 행성을 침범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또 하나는 그보다 더욱 현실적인 문제로, 일단 탐사 또는 개척 형식으로 그곳에 진출한다고 해도 만약 판뇌라 뇌인들이 배타적이고 지극히 공격적이라면 소수의 탐사 뇌인원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일시에 수많은 뇌인원과 전투장비가 도착하지 않는 이상, 판뇌라 뇌인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는다면 전멸할 것이 불을 보듯 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프로젝트 팀은 새로운 방법을 개발한다. 그것은 그 즈음 막 개발된 뇌억 이식 시스템(Brain-memory Transplant System; BTS)을 판뇌라 뇌인에게 적용시키는 것이었다. 이 시스템 역시 공간축소 기술에서 비롯된 것으로, 한 뇌인간의 뇌세포 속에 든 모든 기억을 다른 뇌인간에게 이식하는 것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식이라기보다는 복사로서, 즉 뇌적/정신적 복제물이 생기는 것이다. 이는 쌍둥이와는 정반대의 개념이다. 쌍둥이는 똑같은 수정란에서 출발하지만 그 자아는 각각 별개이다. 그것은 복제인간도 마찬가지다. 그에 비해 뇌억 이식 시스템은 전혀 다른 두 뇌인간이 동일한 자아를 가지게 하는 것이다. 다만 뇌억 이식을 한 이후 두 개체에게 쌓이는 경험은 각각 다르게 될 터이므로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 다른 자아가 된다.

프로젝트 팀은 이 방법을 통해 판뇌라 뇌인에게 특정한 뇌지구인의 자아를 이식하고, 그곳에서 활동하면서 얻은 정보를 뇌지구로 전송하게 하는 계획을 수립했다. 일종의 뇌스파이인 셈이다.


그렇게 해서 뇌해군 특수부대인 뇌이비실(Noeivy Seal) 출신에 천체뇌생물학과 뇌심리학 학위를 가지고 있는 뇌메론 박사의 자아가 어느 판뇌라 뇌인의 뇌에 전송, 이식된다. 뇌억 이식을 받은 판뇌라 뇌인은 처음에는 두 자아의 충돌 때문에 혼란을 겪지만, 곧 뇌메론의 자아가 판뇌라 뇌인의 뇌기억을 지우고 육체를 점령하여 스파이 탐사 활동을 시작한다. 이 뇌억 잠식은 컴퓨터의 하드디스크에 새로운 파일을 깔아 덮어씌우는 원리와도 같다.

한편, 뇌지구에서는 ‘진짜’ 뇌메론 박사가 영상과 소리로 전해 오는 그 정탐 보고를 수신, 분석하는 임무를 맡는다. 근본적인 뇌의식이 동일한 까닭에 보고 듣는 모든 정보를 가장 정확하게 이해, 분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판뇌라 뇌인에 이식된 뇌스파이 뇌메론의 최종적인 목적은 따로 있었다. 겉으로만 보고는 판뇌라 뇌인의 뇌정신 세계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따라서 복제 뇌메론은 다른 판뇌라 뇌인을 죽이고 뇌를 해부하여 그 구조를 면밀하게 분석해야 한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순조로운 듯했다. 그러나 몇 시간이 지나자 뇌메론 박사는 점점 혼란에 빠지기 시작한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미리 대기하고 있던 뇌정신의학자는 아마도 서로 다른 두 개체에 들어 있는 동일한 자의식이 정보 교류를 하면서 충돌, 혹은 갈등을 일으켰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한다. 프로젝트 팀은 일단 뇌메론 박사를 뇌병원으로 보내 쉬도록 하고, 판뇌라로부터의 정보는 임시 뇌요원이 담당한다.

그런데 그날 밤, 뇌병원에 입원해 있던 뇌메론 박사가 사라지고 만다.

아무도 몰랐지만, 뇌메론 박사는 뇌지구 탐사에 나선 것이다. 일단 거리부터 시작해서 온갖 곳을 돌아다니며 뇌지구의 시스템과 문화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말하자면 그 역시 또 하나의, 아니 상반된 뇌스파이였던 것이다.

이런 일이 발생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판뇌라 뇌인은 뇌본능적으로 외부로부터의 모든 자극과 영향에 똑같이 대응한다. 그것이 그들이 상대적으로 나약한 육체로 온갖 사납고 강력한 뇌동물들이 우글거리는 험난한 판뇌라 행성에서 뇌진화하며 지배자의 자리에 설 수 있게 한 비결이었다. 즉 뇌랑이(Noeiger)와 마주치면 뇌랑이와 똑같은 성질과 전투력을 갖게 되고, 뇌끼리(Noelephant)에게는 뇌끼리처럼 대한다. 그럴 경우 뇌동물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다. 외형이 전혀 다른 뇌동물, 즉 판뇌라 뇌인이 자신과 똑같은 행동방식으로 대응하므로 혼란을 일으켜 도주하게 된다.

그런 이유로 뇌지구인의 자아가 이식되는 순간, 그 판뇌라 뇌인의 자아는 뇌본능적으로 반응하여 거꾸로 뇌지구에 있는 뇌메론 박사의 뇌에 들어간 것이다. 한순간 혼란을 빚기는 했지만 ‘가짜’ 뇌메론 박사인 판뇌라 뇌인은 곧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인지하고 조금도 서슴지 않고 뇌지구 정탐 활동에 나선 것이다.

자, 과연 서로 육체와 뇌정신이 뒤바뀐 두 행성의 뇌인간의 앞날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팁으로 한 가지를 밝힌다면, 그것은 판뇌라 행성에 침투해 있는 복제(사실은 자아에 있어서는 진짜) 뇌메론이 판뇌라 뇌인의 뇌 구조를 처음 보게 되는 순간이다. 뇌영화의 핵심 부분을 미리 얘기한다는 것은 흥미를 반감시킬 수 있는 일이지만 어쨌든 그 뇌용은 이렇다.

뇌메론은 숲 속에 혼자 있는 판뇌라 뇌인을 발견하고 태연하게 다가간다. 상대가 방심을 하는 사이 날카로운 무기로 그 뇌를 두 동강 내려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공격하는 순간, 상대방은 재빨리 피하며 오히려 뇌메론의 뇌뚜껑을 날려 버린다. 나동그라진 뇌메론은 의식을 잃기 전의 한순간, 샘물에 비친 자신의 뇌 구조를 보게 된다. 과연 그 뇌 구조는 어떤 것일까?



- 뇌평가 -


뇌임신 카메뇐 감독은 두 뇌인간의 육신과 자아가 뒤바뀐다는 비교적 흔하고 고전적인 소재를 이렇듯 우주 차원으로 확대하여 매우 흥미진진한 뇌영화를 만들었다. 그것은 늘 어디선가 본 듯하면서도 참신한 시도를 통해 뇌영화를 개척해 온 그의 지난날 행보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이 뇌영화가 매우 기대되는 것은, 그저 고전적인 듯하면서도 참신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카메뇐 감독은 늘 그래 왔듯이 여기에 온갖 흥미요소를 덤으로 추가했다. 스파이, 개척, 모험, 액션, 스릴, 잔혹한 하드고어, 그리고 과학과 우주라는 소재에 그와 상반되는 듯한 판타지적 요소까지 절묘하게 융합한 것이다. 말하자면 거의 모든 장르의 뇌영화가 이 한 편에 녹아들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스토리뇌인에서 말했지만 이 뇌영화는 핵심 부분을 미리 밝혀도 호기심이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더 배가된다. 그 잔혹한 장면에서 밝혀지는, 판뇌라 뇌인의 뇌 구조가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해 뇌관객은 절대적인 궁금증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늘 의외의 반전을 보여 준 카메뇐 감독 뇌영화들의 공통된 특징이다.

카메뇐 감독은 포스터에서도 보이는 ‘수식어’에서도 알 수 있듯이 뇌가 매우 크다. ‘타이탄 뇌’, 오죽 뇌가 크면 그런 수식이 따라다닐까? 그처럼 거대한 뇌를 가졌으니 늘 압도적인 흥행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른바 ‘괴뇌’인 셈이다.

어쨌든 이 작품은, 최고의 흥행 제조기이면서 뇌영화 개척자인 카메뇐 감독이 10년이 넘는 긴 휴식을 끝내고 만든 만큼 금년 들어, 아니 근년 전체를 통틀어 가장 기대되는 영화이다.


*


시뇌마천국 밖에서…

뇌의 생각


1. 제임스 카메론


제임스 카메론은 이전에 이 [시뇌마천국] 카테고뇌에서 다루었던 영화 <터미뇌이터>로 단숨에 유명해진 감독이다. 뇌는 그 영화에 푹 빠졌고, 이후 카메론 감독의 팬이 되었다.

터미뇌이터 개봉 2년 후, 또 한 편의 영화가 한국에 상륙한다. 그것은 역시 SF영화사에 발자취를 남긴 <에일뇌언>의 속편이었다. 카메론 감독은 이 저예산의 영화에 꽤나 그럴 듯한 특수효과와 몇 가지 차량(포괄적 의미의)까지 등장시켜 크게 히트시켰다. 사람이 ‘입고’ 중량물을 운반하는 파워로더, 우주정거장, 항성간 우주선 노스트로모호, 우주해병대 상륙정, 장갑차 등이 그것이다. 이 영화는 전편(에일뇌언 1)과는 전혀 다르게 액션물이 되었지만 앞에 말한 우주선 장면 등 때문에 제법 장대한 느낌을 풍긴다. 노스트로모호가 우주를 항진하는 장면은 저예산 영화라고 볼 수 없을 만큼 웅장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 기다란 형태의 우주정거장은 어쩌면 <스타워즈> 에피소드5 <제국의 역습>의 영향인지 모르겠다. 뇌억에 의하면 꽤나 흡사한 형태였다. 한국에서의 개봉은 <에일뇌언 2>가 더 빨랐다. <스타워즈>는 한국에서 흥행 실패하여 두 번째 작품(에피소드5)이 제작 당시에 개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텔뇌비전 외화와 비디오 출시로 소개되었다가, 90년대 후반에야 비로소 극장에서 개봉되었다. 조지 루커스 감독이 새로운 3부작, 즉 에피소드 1~3을 제작하기에 앞서 그 동안 개발한 CG를 에피소드 4~6에 덧씌워 처음부터 다시 개봉했던 것이다. 이때에는 이미 한국에도 스타워즈 마니아들이 생겨나 3편 모두 잇단 극장 개봉이 가능했고, 관객들은 환호했다. 20년의 세월이 주된 관객층의 취향을 바꾸어 놓은 것이다.

※ 확실치는 않지만, <스타워즈>와 <에일뇌언 2>의 우주정거장은 같은 것일 수도 있다. 워낙 저예산 영화이다 보니 그대로 갖다 썼을 수도 있다. 이 두 시리즈는 모두 ‘20세기폭스’사에 속해 있으니까. 장난꾸러기 스필버그는 그의 영화 <이티>와 그가 제작을 맡은 <그렘린>에서 친구인 루커스의 <스타워즈>에 나오는 캐릭터들을 등장시키기도 했다.


당시 기사에 의하면, <터미뇌이터> 1편의 제작비는 750만 달러였고, <에일뇌언 2>는 1800만 달러에 불과했다. 참고로 그 몇 년 뒤에 개봉된 <사랑과 영혼>의 제작비가 그 두 배였으니 카메론이 얼마나 저예산으로 꽤 괜찮은 영화를 만들었는지를 알 수 있다.

이후 그는 <어비스>, <터미뇌이터 2>까지 계속 SF를 제작했다. 그런 까닭에 이 블뇌그 방명뇍(?)에 이름이 올라 있는 SF영화 감독 6명에는 그도 들어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터미뇌이터> 1편의 영향이 가장 컸다. <에일뇌언> 1편의 감독은 역시 방명뇍에 이름이 들어 있는 리들리 스코트이다.

이후 그는 뭔가 거창한 차기 작품을 준비하면서 ‘휴식 삼아’ 영화 한 편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아놀드 터미네이터 주연의 코미디 액션 <트루 라이즈>이다. 이 영화는 SF에서 벗어나 있지만 이런저런 첨단/가상적인 설정에 핵폭탄까지 과감히 터뜨린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SF 분위기를 풍긴다. 그런데 그 다음 작품, <타이타뇍>에서 전혀 엉뚱한 시도를 한다. 거액의 제작비를 들였던 <터미뇌이터 2>보다도 훨씬 많은 돈을 들여 SF가 아닌, 웬 감상적인 고전풍 영화를 만든 것이다. 흥행은 대박이 나다 못해 세상을 발칵 뒤집었지만, 나는 오히려 다소 실망했다. 중간에 ‘휴식 삼아’ 만들었다는 <트루 라이즈>를 빼면 6년 만에 완성한 야심찬 대작이 아예 색깔이 달라진 것이다.

물론 카메론뿐 아니다. 특정 장르, 특정 색깔의 영화 때문에 좋아하던 감독이 엉뚱한 쪽으로 새면 실망할 수밖에 없다. ‘6인의 에스퍼(SFer; 혹은 사이파이어 SciFier)’ 중 하나인 스필버그 역시 그랬다. <쉰들러 리스트>로 그는 SF나 동화 풍 영화 외에서, 즉 ‘인간 소재’의 영화에서 처음으로 흥행에 성공하고 상을 줄줄이 거두어 들였다. 그러나 나는 그때부터 스필버그를 아주 싫어하게 되었다. 냉정한 과학적 사고에서 벗어나, 극단적인 이분법(유대인:독일인=천사:악마)과 너무 유치한 신파극을 보여 주었던 것이다.

라이언 일병을 구하는 영화도 결말을 보면 쉰들러식 싸구려 신파극을 보인다. 도대체 그런 영화들이 어떻게 감동적일 수 있는 거지? 한국의 보통 감독들보다 훨씬 감정 묘사가 떨어지는데. 어쨌든 스필버그는 21세기 들어 다시 본래의 장르로 돌아와 SF의 부흥에 앞장선 까닭에 그 뒤로는 그에 대한 혐오의 감정을 지웠다.


※ 여기서 잠깐!

사실 남 얘기가 아니다. 내 후배 하나는 내가 SF 이외의 장르를 쓰면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라”고 자꾸 잔소리(크학학!)를 하는데, 나 역시 영화감독들에 대해 똑같은 생각을 하니까. 꼭 SF가 아닐지라도, 특정 장르, 감독 자신의 색깔 때문에 좋아하던 이들이 그 색이 흐려지거나 옆길로 새면 실망한다. 그러니 서로 처음 알게 된 이후 당시 혼자 재미로 썼던 내 작품들을 읽으면서 크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그 친구도 그럴 만하다. 스티븐 제이 굴드의 <풀하우스>를 선물한 그 후배이다. 정말 이런 문제는 남 얘기가 아니다.

이런 일도 있었다. 90년대 중반에 처음 PC통신에 가입하여 공포/SF 게시판에서 그 동안 혼자 갈고 닦은 솜씨로 SF를 여러 편 선보였다. 다양한 소재의 단편을 쓰고 장편도 연재했다. 그러다가 몇 달 뒤 공포소설에 흥미를 가지고 폭발적으로 많은 단편을 써서 그곳 게시판의 대표 작가가 되었다. 그러자 어느 독자가 이렇게 한탄하는 글을 올렸다.

“온통 귀신 얘기만 들끓는 게시판에서 유일하게 제대로 된 SF를 쓰던 작가마저 공포소설 쪽으로 돌아섰다.”

꼭 SF가 아닐지라도 이런 식의 지탄을 몇 번 받았었다. 이 블뇌그를 구석구석 살펴본 이라면 내 특성이 ‘다양성’이라는 것을 알 것이다. 내 관심사는 매우 잡다하며, 흥미를 가지면 일단 뛰어들어 시도를 한다. 그런데 어느 한 분야에 몰입하면 한동안은 그쪽으로 전력을 다하다 보니 아무래도 타인의 이목을 끌 수밖에 없고, 특히 소설의 독자들은 그 작가의 색깔에 매료되는 까닭에 다른 ‘짓’을 하면 실망한다. (여기서 ‘짓’이라 함은 퍼포먼스, 이런저런 잡다한 글의 글투까지 포함한다.)

결국 내가 하고 싶은 시도를 마음대로 하려면 나는 ‘숨어야’ 한다. 죄를 지은 것도 없는데. 그런 까닭에 온라인 공간에서도 곳곳에서 다른 모습으로 활동하는 수밖에 없다. 이것이 뇌의 고뇌(苦腦)인데, 영화감독들 중에도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이 많을 것이다. (예전에 개인 홈페이지를 운영할 때에는 동료 하나가 이런 말도 했다. “아마 이곳 방문객들은 이 홈페이지를 각각 취향이 다른 여러 사람이 운영하는 것으로 생각할 듯하다. 도저히 한 사람이 만들었다고는 생각하지 못할 듯하다.”)

당시 PC통신에서 나는 그 지탄의 글에 대해 이렇게 답변했다.

“한국은 여전히 SF의 입지가 빈약하다. 이 게시판은 SF와 공포 장르의 공용 공간이지만 거의 공포물이 강세다. 나는 공포소설을 쓴다 해도 거기에는 종종 SF적 요소도 숨어 있다. 내 계획은 이렇다. 공포소설로 관심을 모으고, 이후 SF적 성향의 공포소설을 쓰고, 이어 공포 요소가 들어간 SF를 쓰고, 최종적으로는 제대로 된 SF를 쓴다.”

사실상 ‘공포’는 서구문학에서 독자적인 장르가 아니라고 한다. 그것은 보다 고수준인 지성도 아니고 그보다 하위의 감정도 아닌, 보다 원초적인 본능이다. 따라서 모든 장르에 적용할 수 있다. 공포의 감정은 모든 동물에게 있고 워낙 근본적인 것인 만큼 누구나 관심을 가진다. 공포는 동물이 살아남기 위한 하나의 반응이며 경보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동물들이 고통을 느끼는 쪽으로 진화한 이유와도 같다. 고통은 한순간의 물리적 경보이며, 공포는 보다 총체적인 비물질적 경보이다.

나 역시 그렇기에 어린 시절에 괴담에 심취했고, 아슬아슬한 이야기도 좋아했고, 훗날 SF에도 오싹한 이야기를 접목시킨다. 같은 SF라도 나는 다시 몇 가지 하위 장르로 나누어 글을 쓴다. 그에 비해 유명한 서구의 작가들은 저마다 거의 모든 글 색깔이 비슷하다. 나는 특정 분야에서조차 보다 세부적인 다양성을 가진다는 차이가 있다.


카메론은 역시 흥행 제조기이다. 그것도 차원이 다른 제조기.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아마도 근본적으로는 그의 ‘열망’과 끝없는 시도가 그것을 가능케 했을 것이다. 거기에 덧붙여, 그가 단지 ‘감독’ 즉 연출자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다니던 대학을 집어치우고 트럭 운전을 하면서 돈을 모아 손수 모형을 만들어 단편영화를 찍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러한 도전정신과 출발점 때문에, 비록 영화인의 ‘정석 코스’를 밟은 <스타워즈>의 조지 루커스와 가방끈 측면에서는 다르지만 행보는 비슷했다. (루커스는 코폴라나 스필버그와 함께 영화 쪽의 명문 출신이다.) 루커스 역시 할리우드 꼬라지가 보기 싫어서 집어치우고 안티할리우드로서 그 바깥에서 개척을 했으니까. 따라서 특수효과 등 온갖 기술에도 직접 뛰어들었다는 점에서도 같다. 루커스는 컴퓨터그래픽의 대명사가 된 ‘ILM’을 만들었고, 카메론은 또 다른 컴퓨터그래픽 업체인 ‘디지털 도메인’을 만들었다.

예전에 정보 부재의 세상이었을 때, 나는 영화잡지 외에는 거의 모든 영화 관련 정보를 비디오로 출시된 영화의 오프닝 및 엔딩 크레디트를 통해 얻었다. 자막을 보면서 누가 어느 영화에 어떻게 관련되었는가를 분석하는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워낙 영화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직 한국 비디오 시장에 제대로 된 메이저 영화가 그리 많이 들어오지 않아서 온통 싸구려 비디오 타이틀로 도배되어 있던 시절에, 오히려 그 덕분에 보다 많은 자료를 얻을 수 있었다. 일반인들은 흥행대작에 매료되지만 그것을 통해 얻는 정보는 극히 적다. 이미 텔레비전이나 잡지 따위에서 얻을 것은 다 얻을 수 있으니까. 그 시절에는 비디오가게 구석에 처박혀 있는 싸구려야말로 오히려 보물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제목조차 기억나지 않는 어느 싸구려 SF영화를 보면서 오프닝 크레디트를 유심히 지켜보다 보니, 거기에 낯익은 이름이 있었다. 그 이름이 바로 제임스 카메론이다. 그 영화에서 그가 담당한 역할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프로덕션 디자이너이다. 미술 분야 일을 했으니 그때 이미 그는 터미뇌이터 등을 단지 연출만이 아닌 디자인까지 할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런 까닭에 대작(?) <에일뇌언 2>도 저예산으로 제작이 가능했을 것이고. 게다가 그 싸구려 <에일뇌언 2>에는 괴물이 떼로 몰려나오고 퀸 에일뇌언까지 등장한다. 전편보다 괴물 디자인 면에서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것이다.

또한 싸구려 비디오를 통해 발견한 것은 카메론 감독이 첫 번째로 연출한 영화였다. <피라니아 2>라는 작품인데, 그 전편도 비디오로 보았다. 그런데 그가 그 속편으로 감독에 데뷔한 것이다. 분석이 습관화 된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카메론은 속편과 인연이 깊구나.

그러나 어느 정도 위치가 되자 그는 종종 새로운 시도를 했다. 앞에서 ‘열망’이라는 말도 썼는데, 그는 캐나다 시골의 농장에서 자랐다고 한다. 그러기에 넓은 세상으로 나가기 위한 욕망이 생겨 더욱 개척의 길을 걷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성장기에 그는 지식층인 어머니가 아버지 때문에 시골 농장에 처박혀 재능을 썩히는 것을 안타까워했다는데, 어머니에 대한 그의 애정은 영화에서 종종 나타난다. 미래의 영웅 존 코너의 어머니 - 미래에서 온 전사보다 더 강한 여성 세라 코너, 그리고 1편에서는 그저 보통의 나약한 여성이었지만 2편에서는 여전사로 돌변한 <에일뇌언 2>의 리플리가 그렇다. 속편에서 리플리는 에일뇌언으로 뒤덮인 행성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여자아이를 발견하고는 모성애를 느낀다. 그렇게 해서 그 아이를 영원히 돌봐 주기로 한다.

※ 그런데 3편은 다른 감독이 맡았고 시작하자마자 그 아이를 죽여 버렸다. 카메론이 기껏 살려낸 생존자를 단번에 숨통을 끊은 것이다. 크학학!


또한 극장 개봉에서는 삭제되었지만 <에일뇌언 2>의 도입부에는 그가 어머니에 얼마나 집착하는지에 대한 장면이 들어 있었다. 전편에서 에일뇌언으로부터 유일하게 살아남은 뒤 57년 동안 구명정을 타고 표류했던 여주인공, 그녀는 인공동면 때문에 여전히 젊음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구조대에 발견되어 우주정거장의 병실에서 요양하고 있을 때 딸이 찾아온다. 딸은 그 사이 57년이 늙어 있다.

만약 그 장면이 들어갔다면 그 영화는 보다 장대하고 보다 SF 분위기가 강한 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액션물로 만든 영화에 그런 장면은 흐름을 끊는 저해요소인 까닭에 제작사의 뜻에 따라 나중에 삭제되었다고 한다. 리플리가 에일뇌언 행성에서 혼자 살아남은 여자아이에게 모성애를 느끼고 집착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러나 그 복선인 장면이 삭제된 까닭에 관객들은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이후 만들어진 그의 영화들도, 꼭 어머니가 아닐지라도 강한 여성상이 늘 등장한다. <어비스>의 여주인공도 그렇고 심심풀이로 만든 <트루 라이즈>의 여주인공 역시 마찬가지다. <아바타>는 아직 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이번에 잠시 검색해 보니 사라 코너와 함께 80년대 최강의 여전사로 활약했던 리플리, 시고니 웨버가 출연한다.

<타이타뇍>으로 아예 영화 흥행수익을 넘어서 문화적 ‘코드’까지 만들어 거액을 벌어들인 카메론은 화성 탐사에 참여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런데 너무 늙었다. (크학학!) 1940년대 초에 태어났으니 당시에도 이미 회갑이 다 되어 있었다. 어쨌든 지대한 열망을 가지고 있고 또한 우주와 과학을 좋아한 그가 그 나이에 화성 탐사를 꿈꾼 것이다.

<타이타뇍>은 SF는 아니지만 그 긴 영화 전반에 걸쳐 바다를 배경으로 한 영화이다. 그보다 전에는 <어비스>가 있었다. <어비스>는 사실 <쥐라기공원>으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원작자 마이클 크라이튼의 소설 <스피어>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스피어>를 영화로 만들려고 했지만 당시 특수효과로는 불가능했다. 심해의 수많은 오징어 떼 등이 그것이다. 어쨌든 그 때문에 컴퓨터그래픽까지 직접 개발하고 있었고 <어비스>에서는 바닷물이 온갖 형태로 변하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특수효과를 보여 준다. <스피어>는 <타이타뇍>이 제작되던 시기에 다른 감독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러고 보면 카메론의 무대는 터미뇌이터 외에는 온통 바다 아니면 우주이다. 한편, 우주는 바다에 비교되기도 하지만.

<아바타>가 머나먼 외계의 행성을 배경으로 한 영화라는 사실을 이제야 처음 알게 되면서, 나는 화성 탐사를 꿈꾸던 그가 또 다른 방법으로 우주에 도전했다는 생각부터 떠올렸다. 자세한 내막은 나도 모르겠다. 왜냐고? 그건……

세상의 장삿속이 개인의 순수성을 깎아먹을 수 있으니까.


2. 아바타


이 영화는 텔레비전 광고를 통해 처음 그 존재를 알게 되었다. 그러나 지난해 봄부터 시작된 新생산시대와 또한 여름부터 시작한 근력운동 때문에 세상과 문화의 흐름은 거의 멀었다. 특히 11월부터는 열심히 하던 운동마저 집어치우고 디자인에 매달렸는데, 이것은 하나의 ‘새로운 시작’을 위한 것이다.

나는 <아바타>가 영화인지 뭔지조차 잘 몰랐다. 사이버 세상이 되면서 워낙 흔히 쓰이는 말이니까. 예고편을 보면 뮤직비디오나 게임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앞에 말한 후배가 놀러와 그 얘기를 한 것이다. 카메론이 새로운 영화를 만들었다고. 그럭저럭 볼 만하다고 했다. 그제야 그것이 영화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판타지인 줄 알았다. 따라서 카메론에게 한 번 더 실망했다. ‘또 다시 배반했다!’ 그렇게 생각했다.

※ 사실은 조지 루커스가 판타지 쪽이다. 그는 <스타워즈> 외에도 판타지 영화들을 몇 편 제작했다. 처음 스타워즈를 제작했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 영화는 SF가 아닌 판타지이다.” 사실상 루커스는 친구인 스필버그와 비슷한 점이 많아서 장난꾸러기 냄새를 풍긴다. 그가 제작을 맡은 다른 영화들을 보면 알 수 있는데, 순수한 어린이 취향이다. 20년 만에 모처럼 메가폰을 잡아 연출한 <스타워즈> 에피소드1은 온통 장난으로 도배되어 있어서 너무 경박할 정도였다. 처음 출발점이 달라서인지 카메론은 통속적인 미국적 문화와 어둠의 세력들을 애정을 담아 종종 보여 주는 반면 루커스의 세계는 영국식 판타지에 순수하고 모범적이다. 루커스가 <스타워즈>를 ‘판타지’라고 공언했듯이, 카메론은 <터미뇌이터>를 ‘테크누아르’라고 불렀다. 즉 첨단기술이 들어간 범죄영화라는 얘기다.


나는 이런저런 글을 쓸 때 의도적으로 ‘21세기 초’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 그저 ‘2000년대 초’가 아닌 ‘21세기 초’이다. 그 이유는 20세기에는 ‘21세기’라는 말이 ‘미래’, ‘신세기’, ‘SF’의 상징으로 쓰였기 때문이다. 늘 그런 과거를 되돌아보며 되새기고, 한편으로는 장난스럽게 풍자하는 것이다.

‘과학의 세기’로 생각했던 21세기가 되자 오히려 SF는 많이 축소되었다. 그보다는 판타지가 모든 문화를 장악했다. SF영화는 별로 없는 반면 판타지영화는 끝없이 만들어진다. 많은 판타지영화들이 해리 포터처럼 시리즈로 만들기 위해 애쓴다. 이미 첨단과학 속에 살고 있고, 하루가 다르게 변모하는 기술의 발달 속에 정신적으로 지친 사람들이 동화와 같은 세상을 꿈꾸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나는 카메론이 그런 유행에 편승했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장르의 문제가 아니라, 아예 그 도전정신마저 버렸는가 싶어 더욱 실망했다.

그러나 지난 8개월에 걸쳐 계속 디자인 작업만 하고 또 이번에 그 ‘강좌’까지 하다가 뇌가 몹시 지친 상태에서, 문득 생각이 나서 모처럼 시뇌마천국 포스터를 만들기 위해 검색을 했을 때, 잠깐 줄거리를 읽어 보니 전혀 뜻밖이었다. 또한 그것은 하나의 거대한 파랑(쓰나미)였다. 왜냐하면, 근년의 SF로서는 파격적인 시도를 했기 때문이다.

SF의 황금기는 20세기 초중반이었다. 그러다가 점점 기술이 발달하고, 드디어 인류가 지구 밖으로 나가면서 보다 그 입지가 커지는가 싶더니, 급작스럽게 열기가 식기 시작했다. 태양계의 여러 행성과 위성을 탐사해 보니 ‘아무 것’도 없다. 화성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금성인도 없다.

또한 점점 정보통신이 발달하고 과학지식이 널리 보급되면서, 인류가 태양계 밖으로 나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게 되었다. 아무도 태우지 않은 ‘작고 가벼운’ 탐사선이 태양계 탈출 속도로 열심히 날아가도, 가장 가까운 알파 켄타우리까지 가는 데만도 까마득한 세월이 필요하다. 알파 켄타우리는 4광년 밖에 있다. 따라서 그 거리는 대략 다음과 같다.


300,000km( 초 당 빛의 속도) x 3600(시간) x 365 x 4 = ?

계산해 보니 약 1.6조 킬로미터가 된다.

우주선이 초속 100킬로미터로 달려도 16000000000초가 걸리는 거리이다. ‘직관력’을 사용해 계산을 보다 간단하게 해 보자. 30만을 100으로 나누면 얼마? 3천. 즉 4광년 떨어진 별까지는 1만 2천 년이 걸린다. 그러나 현재의 우주선은 저런 속도조차 내지 못한다. 거기다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은 인류의 꿈을 절망의 구렁텅이로 내던진다. 우주선 가속에 필요한 에너지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니 태양계 밖으로 나간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데, 생명이 살 수 있는 행성을 찾는다는 것은 더욱 까마득하다. 거기에 태양계 내에서조차 지구 밖의 다른 생명체를 찾지 못했다는 실망감이 더 큰 좌절을 불러왔다. 우주로의 진출이 짧은 기간의 폭발적인 열기를 불러일으켰고, 얼마 후에는 오히려 끝없는 절망감을 남겼다.

결국 먼 우주를 배경으로 한 SF는 거의 사라졌다. 1970년대 후반 <스타워즈> 시리즈 때문에 우주를 배경으로 한 SF는 폭발적으로 만들어졌다. 그 당시의 영화를 보면 우주가 그저 신기하고 머나먼 세상이 아니라 온갖 모험과 오락을 즐길 수 있는 곳으로 묘사되었다. 그 이전의 영화들에 비해 한 걸음 더 우주에 다가가고 익숙해진 것이다.

그러나 스타워즈의 열기가 지구를 뒤덮을 즈음 목성과 토성을 스치며 지나간 보이저 탐사선은 시각적으로는 신비로운 사진을 많이 보내 왔지만 태양계의 생명체 존재 확률을 ‘더욱’ 떨어뜨렸다. 탐사를 하면 할수록 절망은 더 커진다.

결국 20세기 후반부터 21세기 들어 만들어진 SF 히트작을 보면 거의 지구에서만 논다. 기껏해야 지구 주변으로 나가 혜성 따위와 싸우는 정도이다. 첨단 기술을 보여 주는 미래 세상을 다루고는 있지만 현실과 그다지 멀지도 않다. 즉 보다 장대한 세상의 이야기보다는 눈앞의 이야기만 다루게 된 것이다. 꿈을 잃은 것이다. 혹은 그저 100년이 넘은 소설이나 재탕으로 영화화 한다. 이미 사람들의 뇌에 익숙해진 작품은 비록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어도 ‘향수’ 때문에 찾게 되니까. 21세기 들어 만들어진 유명한 SF 중에는 오히려 과학과 거리가 멀던 시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것들이 제법 많았다.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다. 이제는 다른 세상의 사람이 된 <쥐라기공원>의 원작자 크라이튼은 그 인기 비결이 ‘첨단기술’에 있었다. 즉 그 시기에 막 개발되거나 머잖아 구현될 기술들을 주로 다루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사람들의 흥미를 끈다. 나도 그의 소설들이 마구 쏟아져 들어오던 90년대 초에 꽤나 흥미 있게 읽었다. 그런데 (적어도 SF 팬으로서는) 그다지 남는 것이 없다. 비록 현실과는 거리가 멀고 아직은 요원하지만, 보다 과학 자체를 주제로 다룬 다른 작가들의 작품들이 영원히 남는다. (크라이튼은 스릴러 작가이지, 엄밀한 의미에서 SF 작가는 아니다.)

이렇듯 과학은 꽤 발달했는데 오히려 SF는 외세(?)에 쫓겨 머나먼 우주에서 철수하고 끝내는 지구라는 좁은 공간으로 몸을 숨겼다. 지난 백 년 사이 인류는 하늘을 날고 우주로 나가 그 무대를 넓혔지만, 또한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전 세계가 1일 생활권이 되었지만, 오히려 SF는, 꿈은, 미래에 대한 비전은, 아주 비좁은 공간으로 기어들어간 것이다.

그런 시기에 카메론은 전혀 엉뚱한(?) 시도를 한 것이다. 다시 머나먼 우주로 나갔다. 대신 방법을 바꾸었다. 그저 돈벌이에 대한 욕구인지, 아니면 그의 우주에 대한 열망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알기로 그는 돈보다 도전을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그 마음이 변하지 않았다면 새로운 방법으로 도전을 한 것으로 풀이하고 싶다.

※ 지난 2005년에 나는 앞에 말한 주제의 단편소설을 쓴 적 있다. 인류가 탐사를 하고 개척을 하고 점점 그 터전을 넓혀 나갈 때에는 그때마다 모험소설과 SF가 번창하고 발전했다. 그러나 우주시대에 들어서자, 그 막막한 진공의 공간에서 더 이상 갈 길을 잃어버렸다. 그렇게 해서 SF의 열기는 점점 식어 갔다. SF의 침체는 단지 창작의 한 장르의 침체가 아니라, 인류, 아니 늘 개척을 하며 끝없이 앞으로 나아갔던 모든 생명체 전체의 본질과 관련된 문제이기도 하다. 내가 쓴 작품의 제목은 <마지막 SF 작가>였다.


<아바타>는 이미 개봉된 지 제법 되었고, 흥행에서도 크게 성공했다. 온갖 광고들이 아바타의 인기에 편승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지난 10년 동안 텔레비전을 별로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지난여름부터는 비교적 많이 보는 편이다.), <매트릭스> 이후 영화가 광고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이 이 작품이 아닌가 싶다.

심지어 아이들도 그렇다. 며칠 전에 날씨가 많이 풀린 날 모처럼 놀이터에서 지난 가을에 친했던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을 만났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별명 삼아 판타지의 캐릭터(몬스터)를 들먹였는데, 아직 어려서인지 가장 잘 알려진 몬스터 이름조차 몰랐다. 그러다가 아이들은 ‘아바타’를 부르짖기 시작했다.

어쨌든 흥행을 위한 요소들을 기가 막히게 잘 접목시켰다. 머나먼 우주의 행성, 그리고 온라인 세상이 된 이후 누구에게나 익숙한, 그 자체가 인터넷사이트의 돈벌이 용도가 되기도 하는 아바타라는 개념, 거기에 지난 10년 이상 영화계의 가장 큰 흥행 장르인 판타지 분위기가 한 영화에 모였다.

아직 직접 영화를 보지 않아서 자세한 것은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이 영화의 줄거리 요약을 읽는 순간 맨 처음 떠올린 생각이 바로 그것이었다. 기막힌 흥행 요소들의 접목. 역시 카메론이다. 귀환을 축하해야겠다.

이 글도 그래서 쓰게 되었다.  

‘제왕의 귀환’을 축하하면서.

 


☞ 글에서 거듭 밝혔지만 나는 아직 영화도 보지 않았고 관련 기사도 찾아보지 않았으므로 <아바타>의 제작 동기와 카메론의 관여 정도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하고, 따라서 카메론의 의도에 대해서는 모두 추정일 뿐이다.


by 뇌의가호 | 2010/02/06 18:30 | 시뇌마천국 Cinoema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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