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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의 건설 현장 - 1. 괘론

[사진] 들풀거미의 빌라
(‘콕’ 찍으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괘론(掛論)

 


거미집, 하면 거의 누구나 맨 먼저 허공에 방사상으로 집을 짓는 왕거미 유형을 떠올릴 것이다. 나도 재작년까지는 그랬‘었’다.

다만 허공에 집을 짓는다 해도 방사상이 아니라 불규칙적이고 지저분한 무허가 판자집(크학학!) 형태의 집을 짓는 종들도 많다. 출신 성분이 미천한 건가? 맞다. 애초 유전자가 그러니까. 그렇다고 해서 자연 생태계에서 출신 성분을 따질 일은 무엇인가.

따질 일이다.

왜냐하면 높은 곳에 번듯한 형태로 광활하게 집을 짓는 종들은 모두 덩치가 크다. 그에 비해 구석진 곳에 지저분하게 짓는 종들은 훨씬 작다. 애초부터 이들은 경쟁 상대가 되지 않는다.

특히 거미들이 인간과 유착하면서, 기술문명의 발전에 따른 영향도 매우 크게 받았다. 바로 전깃불의 등장이다. 알다시피 불빛에는 많은 벌레들이 모여든다. 곤충이 대표적인데, 날개가 달려서 비행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불빛을 구석지고 낮은 곳에 켜 두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 당연히 널리 비출 수 있도록 높은 곳에 설치한다. 전깃불의 등장 이전에도 횃불이나 가스등 등이 사용되었지만 그 범위는 매우 좁은 편이었다. 그러나 전깃불은 도시 밖까지 가로등의 범위를 넓혔다.

전깃불이 발명되고 사용된 지도 백 년이 넘었다. 그 사이 거미의 유전자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모르겠다. 진화의 역사에 있어서는 무척 짧은 기간이지만, 신체 구조가 비교적 덜 복잡하고 변이가 많은 동물들은 그 사이에도 변이를 일으키기도 한다. 어쩌면 ‘인위적 선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거미에게도 ‘아파트’라 불릴 만한 주거 형태가 있다. 수풀이 무성한 시골길의 높은 전신주에 설치된 가로등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왜 전신주인가 하면, 보통의 가로등은 기둥이 아주 매끈해서 거미가 집을 짓기에 부적합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통은 꼭대기의 ‘고개를 숙인’ 부분에 집을 짓는다. 그런데 전신주는 사람이 오를 수 있도록 많은 돌출물이 나 있어 거미가 집을 짓기에 편리하다. 그런 곳에 집을 짓는 거미는 거의 왕거미이다.

깊은 밤에 수풀 사이로 난 시골길에서 전신주에 설치된 가로등을 지켜본 적이 있다. 그 광경은 압권이었다. 수많은 왕거미들이 집을 지어 놓고 있었다. 그런데 거기에도 계급 구조가 존재한다.

맨 위쪽, 불빛과 가장 가까운 곳에는 가장 큰 거미줄에 가장 큰 개체가 자리하고 있다. 아래쪽으로 갈수록 개체들의 크기는 작아진다. 벌레는 불빛에 달려들기 때문에, 불빛에 가까울수록 명당자리다. 그러니 어느 거미나 그 자리를 탐낼 것이고, 힘의 논리에 의해 강한 놈이 좋은 자리를 차지한다. 그래서 불빛에서 멀수록 약한 놈이 살게 된다. 인간 사회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


거미들은 매일 밤마다 집을 새로 짓는다고 ‘흔히’ 알려져 있다. 물론 종에 따른 차이는 있겠지만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왕거미는 그런 편이다. 서울 같은 대도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산으로 둘러싸인 지방 소도시에서는 무당거미가 오히려 대세이다.

시골이라면, 혹은 낙후된 시절이었다면, 집 주변에서는 단연 왕거미가 대세였다. 무당거미는 수풀에 가야 볼 수 있었다. 그런데 도시화가 진행되면서―꼭 그게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오히려 무당거미가 훨씬 많아졌다. 집집마다 처마 밑에는 무당거미들이 자리 잡고 있다. 집 주변의 나무나 텃밭에도 온통 무당거미다. 지역적 차이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렇다. 옛날에는 왕거미 아니면 체구가 훨씬 작은 종들뿐이었다.

어쩌면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거미의 천적이 사라진 것이 그 이유인지 모르겠다. 처마 밑에 둥지를 틀던 제비가 사라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보호색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요즘은 많이 달라졌지만 옛날에는 초가집과 기와집이 사라지고 전쟁의 폐허 속에 어설픈 시멘트 가옥들이 많이 생겨났다. 그때는 처마 밑에는 왕거미가, 벽에는 게거미 비슷한 회색의 거미들이 주류였다. 그 회색의 거미들은 몸이 납작하고, 벽에 바짝 붙어 다녔다. 그런 종은 ‘우글거린다’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많았다. 그런데 요즘은 눈을 씻고 보려 해도 볼 수가 없다.

무당거미가 왕거미보다 득세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인구(개체) 밀도의 차이 때문일 것이다. 왕거미들은 (큰 개체의 경우) 서로 가까이 집을 짓는 것을 보기 힘든데 무당거미들 집은 매우 복잡하게 얽히고 한정된 공간에 많은 성체가 자리하고 있는 광경을 흔히 볼 수 있다. 어쨌든 이들은 집을 참 자주 짓는다.

동네 공원에서 날마다 지켜보아도, 아직 한참 작은 새끼들도 집을 자주 짓는다. 저녁 무렵이면 집을 짓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아직 밝은 시간대에는 전날 있던 집들이 다 사라지고 거미들도 보이지 않는데, 어두워지기 시작하면 슬슬 공사가 시작된다.

몇 년 전에는 무당거미 성체가 나뭇가지에 집을 짓는 모습을 여러 날 동안 지켜본 적 있다. 그 녀석은 새벽에 집을 지었다. 즉 나도 그 시간에 깨어 있었다는 뜻이다. (크학학!) 그런데 녀석은 다리가 다섯 개뿐이었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세 개를 잃었다. 그 상태에서 집을 짓는 모습이 왠지 안쓰러워 보였다. 과연 거미에게도 후천적 적응이란 게 있을까? 있다면 어디까지일까?

거미들은 어른이 가르쳐 주지 않아도 제가 알아서 집을 짓는다. 그것은 물론 유전적인 것이다. 여덟 개의 다리를 현란하게 움직이는 법도 선천적인 것이다. 그런데 그 중 셋이 사라졌다면? ‘뇌’가 크게 발달하고 뇌가 행동에 큰 영향을 미치고 후천적 학습이 중시되는 동물이라면 다른 방법으로 극복하고 적응할 것이다. 예로 사람의 경우, 총을 쏠 때는 검지를 사용한다. 그래서 과거 시대에는 군대에 가기 싫어서 오른손 검지를 고의적으로 절단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요즘 같으면 미친 짓이라고 할 것이다. 무릎 연골을 제거하는 병역기피 사례도 아니고, 그 중요한 검지를 자르다니. 그러나 시대상을 생각해 보면 이해도 간다. 요즘도 군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고, 그래서 고의적인 사고도 종종 터진다. 하물며 구타와 압제와 배고픔으로 대변되던 옛날에는 말할 바가 아니다. 오죽하면 검지를 잘라서라도 군대에 가지 않으려고 했을까. 그런데 90년대 후반쯤인가? 검지가 없는 사람도 복무를 해야 하는 쪽으로 병역법이 개정된다는 말을 들은 것 같기도 하다. 내가 병역법에 깊은 관심을 가진 것은 아니므로 확실한 것은 알 수 없다.

어쨌든 인간, 또는 기타 고등동물은 후천적 훈련에 의해 ‘방법’을 바꾸기도 한다. 그렇다면 거미는 어떨까? 다리가 다섯 개밖에 없는 거미는 집을 지을 때 혼란을 일으키지 않을까? 당시 그 무당거미를 종종 지켜보면서 했던 생각이었다.

그나저나 날마다 집을 새로 짓는다면, 그 자재는 어떻게 감당할까? 집을 새로 짓는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자재(먹이)가 공급된다면 몰라도, 불황이 매우 심한 업소라면?

그 방법은 재활용이다. 거미는 자기 집을 먹어치우고 다시 짓는다고 알려져 있다. 거미가 자신의 줄을 먹는다는 사실은 나도 2000년대 전반에 눈으로 확인한 바 있다.

나는 집에 들어온 거미를 조심스레 잡아서 밖으로 내보내 준다고 <거미의 다이어트> 편에서 말한 바 있다. 그런데 말이 ‘잡는’ 것이지, 거미의 몸을 잡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손바닥으로 떠받들고 이동하는데, 진동에 민감한 거미는 바로 탈출한다. 아래쪽으로 뛰어내린다. 물론 그럴 때는 스파이더맨을 흉내 내어(?) 꽁무니에서 줄을 늘어뜨린다. 그럴 경우 줄을 잡고 끌어올려야 한다. 마치 깊은 우물에서 두레박을 끌어올리는 것처럼.

그러나 진정으로 거미를 위한다면 그것은 결코 좋은 방법이 아니다. 거미는 계속 줄을 늘어뜨리며 내려간다. 사람은 열심히 줄을 끌어당기고, 거미는 꽁무니에서 계속 줄을 풀어내고…… 마치 게임과도 같다. 이러다가는 거미의 소중한 건설 자재를 소진할 우려도 있다. 따라서 그럴 때는 그냥 놔두고 바닥에서 다시 잡아야 한다.

때로는 거미가 도로 줄을 타고 올라오기도 한다. 그런 경험은 종종 있었지만 크게 눈여겨보지 않았다. 그런데 인터넷 여러 포털사이트들의 지식 커뮤니티 경쟁이 극에 달했던 시기에, 나도 거기에 재미를 붙여 열심히 답을 올렸는데 어느 날 거미 관련 질문을 만났다. ‘거미는 정말로 자기 줄을 먹는가?’

즉시 확인 작업에 들어갔다. 마침 눈에 보이는 거미를 들어 올리자 녀석은 수직 강하에 들어갔다. 거기서 계속 줄을 끌어올리면 거미는 더욱 달아나려 애쓸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두자 다시 타고 오른다. 유심히 지켜보았다. 역시나, 줄을 먹는다. 굳이 그런 식으로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왜 그때까지 몰랐을까?

만약 거미가 자기 줄을 먹지 않고 올라간다면 아래쪽으로 길게 ‘로프’가 늘어질 것이다. 그러나 거미가 타고 오르는 줄은 아래쪽에 남는 것이 없다. 이미 그것만으로도 증명이 되는 것이다.

사실을 확인한 나는 자신 있게 답을 달았다.

모든 거미 개체가 날마다 새로 집을 짓는 것은 아니다. 뜻밖의 일이지만, 이 동네공원의 거미들은 성체일수록 게을러서 낡은 집이 오래 갈 때가 많다. 그에 비해 조그만 새끼 거미들은 훨씬 부지런하다. 배도 워낙 작아서 건축 자재가 부족할 것 같은데도 거의 날마다 새로 짓는다. 절반 이상 자란 게으른 왕거미의 경우 줄이 다 사라져 마지막 수평의 줄 한 가닥만 남았어도 거기 매달려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도대체 웬 게으름이냐? 그 한 가닥의 줄에 벌레가 걸릴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차라리 로또 일등 당첨을 바랄 일이지.

금년에는 거미들을 좀 더 유심히 관찰하다 보니 새로운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더부살이 또는 이른바 ‘곁다리’이다. 거미들도 남의 집에 도둑질을 가러 하는 것을 가끔 보기는 했지만 이번 여름에는 보다 특이한 광경도 볼 수 있었다.

반쯤 자란 왕거미가 두 나무 사이에 집을 지었다. 그런데 한쪽에 작은 무당거미가 붙어 있다. 그 상황에 대해서는 나도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도둑놈 같기는 한데, 마냥 그러고 있다. 즉 ‘현물’을 훔치러 온 게 아니라 눌러앉은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남의 영업장 한쪽 코너를 점거한 셈이다. 나중에 보니 그 무당거미는 보이지 않았는데, 집 주인에게 쫓겨난 듯하다.

최근(7월 29일)에는 더욱 재미있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꽤 많이 자란 왕거미가 공원 보안등 바로 옆의 나무들 사이에 크게 사업장을 만들어 놓았다. 왕거미는 그 복판에 있다. 그런데 사업장 범위 바깥쪽을 보니 지지 줄 둘 사이에 작은 거미줄이 있었다. 나로서는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더욱이 그 주인은 조그만 무당거미였다. 그런 우스운 광경이 마치 남의 집 한 구석에 세를 든 것처럼 보였다.

그 주변에는 자연스럽게 우거진 수풀이 없다. 회양목이라서 일단 위쪽을 평평하게 다듬어 놓으면 기복이 거의 없다. 그런 곳에서는 수직 건축 거미는 집을 지을 수 없다. 빠르게 자라는 철쭉 등은 이미 많은 기복을 형성해 호랑거미나 무당거미가 집을 지어 놓고 있다. 그러나 무당거미는 보다 높은 곳을 선호해서 그런 관목보다는 교목이나 인간이 설치한 기물에 집을 짓는다.

그런데 보안등 옆 커다란 나무 사이의 그 공간은 벌레들이 많이 모이는 듯하다. 왕거미가 통통하게 살이 찐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무당거미들이 끼어든 듯하다. 중형 무당거미 또 한 마리는 나무와 왕거미의 줄 사이를 연결하는 집을 짓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후 그 사실을 알아차린 왕거미는 줄을 거칠게 흔들어 무당거미를 쫓아냈다. 그런 광경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동영상 072921] 이것이 그 기생(셋방) 거미집의 모습이다.
어둡고 거리가 멀어서 희미하게 보인다.


그 다음날인 30일에는 더욱 기가 막힌 광경을 보았다. 이미 해가 넘어간 저녁 무렵, 그 왕거미의 집에 주인이 보이지 않았다. 대신 웬 엉뚱한 잔챙이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반쯤 자란 무당거미 네 마리와 배 부분의 지름이 5밀리미터 남짓한 새끼 왕거미였다. 그 시간대쯤 되었으면 주인이 한복판에 있어야 하는데, 혹시나 이사를 간 건가? 줄에 연결된 나뭇가지에 붙어 있는지 유심히 살펴봐도 보이지 않는다. 시험 삼아 그물에 벌레를 던져 봐도 주인은 튀어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이사를 간 것으로 단정했다.

그런데 좀 더 시간이 흐른 뒤에 우연히 그쪽으로 가 보니 주인이 한복판에 떡하니 버티고 있고 잔챙이들은 모두 사라졌다. 도대체가 어떻게 된 일인지. 집주인이 그물에서 벗어나 있을 때는 침입자들이 그곳을 점거해 설치고, 주인이 나타나면 달아난다? 또한 전날 보았던 ‘기생’ 그물 외에도 보다 작은 기생 그물 하나가 더 쳐져 있었다. 커다란 그물 일부가 손상되어 사라졌는데, 그 공간에 무당거미가 조그만 그물을 친 것이다. 이 공원의 보안등 불빛과 그 주변 나무들이 교묘하게 작용하여 정말 별 희한한 상황을 연출했다.

그러나 그 어떤 수직 건축 유형 거미도 들풀거미에 비하면 게으른 편이 아니다. 이미 2009년에 관찰 결과를 얘기했지만, 녀석들은 한 번 집을 지으면 다 망가질 때까지 내버려둔다. 그 게으름에 나는 혀를 내둘렀다. 왕거미 같은 수직 건축 거미들은 집을 자주 짓고, 배회성 거미들은 집은 짓지 않지만 부지런히 돌아다닌다. 그에 비해 들풀거미들은 게으름 그 자체이다. 너무 집이 낡아서 끈기도 없고, 다 망가져서 벌레가 걸릴 면적이 거의 사라져도 마냥 그대로 있다. 이 천하에 게으른 놈들.

그러나 그것이 정답은 아니라는 사실을 금년에 보다 집중적으로 관찰하면서 알 수 있었다.

예전에 내가 관찰했던 들풀거미들은 조금도 보수 공사를 하지 않다가 더 이상 벌레가 걸리지 않을 정도가 되면 이사를 갔다. 그때는 9월에서 10월에 걸치는 시기였다. 어쩌면 계절적 요인이었는지도 모른다. 더 이상 많은 벌레들이 날지 않는 시기에 필요 이상 자재를 소모하지 않기 위해서 보수를 하지 않은 듯하다. 참고로 들풀거미는 재활용을 하지 않는다.


[사진] 들풀거미의 아파트
(‘콕’ 찍으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건축 형태만 보아도 그렇지만, 꼼꼼하고 청결한 면에 있어서도 수직 건설 거미와 들풀거미는 비교할 수 없다. 왕거미 따위는 줄에 이물질이 걸려 있으면 꼼꼼하게 제거한다. 몇 주 전에는 중학생 물장군의 짓궂은 장난 때문에 확실하게 목격할 수 있었다. 절반도 자라지 않은 왕거미 하나가 열심히 집을 짓고 있는데 물장군이 거기에 풀잎을 던졌다. 풀잎은 거의 언저리 가까이 걸렸다. 거미는 곧 그쪽으로 다가간다. 그런데 그것이 먹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들풀거미라면 뭔가 줄에 걸리면 즉시 튀어 나가겠지만, 움직임이 없으면 관심을 버린다. 그런데 왕거미는 그것이 움직이지 않자 이물질이라는 사실을 직감한 듯한데도 일단 다가가더니 꼼꼼하게 떼어냈다. 마치 사람들이 기물에서 스카치테이프를 제거하듯, 이빨로 밀어 가면서 줄에서 떼어냈다. 그만큼 깔끔한 것을 중시한다.

들풀거미도 주택(영업장?) 보강 공사를 한다는 사실은 금년 늦봄에 알게 되었다. 어느 날 보니 낡고 지저분해져 있던 건물 몇 개가 깨끗하게 단장되어 있었다. 다만 낡은 건물을 철거하지 않고 그냥 덧대거나 덮어서 보강하는 식이다. 녀석들도 보강 공사를 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나는 참으로 대견하게 생각했다. 내 생각만큼 게으름뱅이는 아니었기에.

또한 들풀거미는 종종 이사를 간다는 것이 그때까지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이었다. 그런데 지난봄에 보았던 몇몇 개체는 몇 주가 지나도록 그 자리에 있었다. 워낙 기특해서 더욱 부지런히 먹이를 공급해 주었다.

이사를 가지 않는 거미가 기특한 이유는, 그만큼 내가 특정 개체를 확실하게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거미에게 발신기(크학학!)를 달아 놓은 것도 아니기에, 일단 이사를 가면 그 개체를 찾을 길이 없다. 어느 놈이 어느 놈인지 알 수가 없다.

이사를 가지 않은 개체는 고정적으로 먹이를 받아먹어서 그런지 확연하게 덩치가 컸다. 그런데 가장 아꼈던 놈이 결국 뒤통수를 때렸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 버린 것이다. 불과 그 전날만 해도 보강 공사를 해서 집도 번듯했다. 그런데 왜 사라져 버린 걸까? 그 답은 다음에 따로 다룰 것이다.

2009년부터 들풀거미의 이사 또는 영업장 이전은 내게 있어 큰 의문점이었다. 장사가 되지 않아서 그런 것도 아니고, 꾸준히 내가 먹이를 공급하는데 왜 다른 데로 가 버리는 걸까? 그때는 녀석들이 건물 보강 공사를 하지 않는다고 단정한 까닭에 그게 이유인 줄 알았다. 그런데 금년에 보니 보강 공사를 한다. 그럼에도 종종 떠나 버리는 놈들이 있다.


[사진] 들풀거미의 고층 아파트
(‘콕’ 찍으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들풀거미를 기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개체를 꾸준히 관찰하고 싶어서. 그보다 앞서 작년 가을과 금년 봄에는 깔때기거미를 길렀는데, 그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바위틈새에 살아서 아예 관찰이 불가능하다. 내시경을 사용할 여건도 아니니까. 먹이를 주어도 그저 재빨리 튀어나와 물고는 바로 사라져 버린다. 사진 촬영을 하려면 순발력이 대단해야 한다. 구멍에서 먹이가 걸린 곳까지의 거리가 몇 센티미터 거리라면, 1초면 물고 들어간다. 급히 셔터를 누르면 촬영은 되지만 어느 순간에 찍히는지 알 수가 없다. 먹이에게 달려드는 순간을 포착한다는 것은 전문 장비를 동원하지 않는 이상 쉽지 않은 일이다. 하물며 이동전화내장사진기는 셔터를 누른 뒤의 작동 시간이 늦어서 순간 포착이란 불가능하다.

둘째, 깔때기거미는 평소 쉽게 찾아갈 수 없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일반적으로는 산 속 바위틈이나 쓰러진 나무 밑 같은 데 살지만, 사람들과 어울려 살기도 한다. 그러나 일반 가옥 주변에, 혹은 주택가에 수석이 깔려 있거나 통나무가 굴러다닐 일은 없다. 그러니 그런 장소를 찾아가야 하는데, 어느 초등학교가 그곳이다. 그 초등학교는 뒤에 산을 끼고 있는 데다 수석 조경이 잘 되어 있어서 깔때기거미가 많은 것이다. 그러나 날마다 그곳을 찾아갈 수도 없고, 또한 날이 어둡기 전에 찾아야 하니 문제이다. 어두워지면 관찰이 어렵다. 낮에도 그 어두운 구멍을 들여다볼 수 없는데 해가 지면 더욱 그렇다.

[사진] 깔때기거미의 집들
바위틈을 선호하지만 그밖에도 나무의 구멍이나 인간이 설치한 기물 등
조건만 맞으면 온갖 곳에 집을 짓는다.
(‘콕’ 찍으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아래 사진은 개미가 그물에 걸리자 기어 나오는 깔때기거미의 모습.


작년 가을에 있던 일이다. 휴일 낮에 학교에 찾아가서 거미를 관찰하다 보면 거기서 놀던 아이들이 관심을 보이고는 거미를 보여 달라고 한다. 그러나 보여 달라고 해서 보여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깔때기거미는 밖으로 유인해 내기가 쉽지 않다. 들풀거미와 달리 그물이 바위 밑동에 설치되어 있어 벌레를 던져도 떨어져 버리는 경우가 많다. 또한 진동이 있다고 들풀거미처럼 바로 튀어나오는 것도 아니다. 그런 식으로 깔때기거미를 유인해 내려면 정말 많은 시간과 인내심을 필요로 한다.

결국 아이들에게 보여 주기 위해 한 마리를 잡아 길렀다. 그렇게 해서 2주 정도가 지났다. 그런데 어느 날은 학교에 가져갔더니 이전부터 절친했던 아이 하羅가 슬쩍 방생해 버렸다. 내가 너무 거미에게만 관심을 주니까 질투한 것이다. (크학학!)

금년 초여름에는 곤충 사육에 푹 빠진 중학생 물장군 때문에 다시 깔때기거미를 잡으러 갔고, 내친 김에 나도 한 마리를 기르게 되었다. 그런데 바로 그날, 공원에서 한 꼬마에게 그것을 보여 주자 자기에게 달라고 졸라서 넘겨주었다. 그 꼬마는 2년 전에 처음 알던 때부터 나를 따라 거미에 대한 관심을 붙였고, 이후로도 계속 관찰하고 있다. 그런데 새로운 종인 깔때기거미를 보자 무척이나 갖고 싶어했다. 그래서 넘겨준 것이다.

깔때기거미를 기를 때는 환경 조성이 아주 간단하다. 아무런 통이나 준비한 뒤에 거기에 종이나 나뭇잎 따위로 숨을 곳만 마련해 주면 된다. 애초 사는 환경 자체가 단조로우니까. 또한 그물을 친다고는 하지만 바닥에 사는 만큼 전투력이 강하다. 따라서 잡힌 지 몇 분 지나지 않아서도 벌레를 넣어 주면 곧 잡아먹을 정도이다.

그런데 들풀거미는 키 작은 나뭇가지 사이에 집을 지으니 그러한 환경을 조성해 준다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엄두를 내지 못하고 그냥 자연 상태에서 관찰한 것이다. 그런데 몇 주 동안 애지중지 돌보던 놈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 버렸으니 실망할 수밖에.



*1. 다음 회에는 게으른 들풀거미 ‘주주’의
‘내 집 마련’과 건설, 그리고 정착 과정을 다룹니다.

*2. 삽입된 사진 및 동영상은 모두 이동전화내장사진기로 촬영한 것입니다. (기종은 쓰리스타의 ‘여하호출’)


by 뇌의가호 | 2011/07/31 16:20 | 뇌벌레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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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마즈net at 2011/08/02 16:24
거미사육이군요 ㄷㄷㄷ;;밥주는게 힘들텐데;;거미가 은근히 도 도망을 잘가는지라
Commented by 뇌의가호 at 2011/08/03 14:31
맞습네다.
이미 탈출한 거미가 몇 마리나 되는데 워낙 꼭꼭 숨어서 찾기도 힘들디요.
다만 그런 거미는 주로 집을 짓지 않는 배회성입네다.

정주성인 들풀거미는 탈출을 하지 않습네다.
처음 자리를 잡기 전이 문제이디요.
일단 집을 지으면 거기가 자신의 삶터라서리 달아날 생각을 하지 않디요.
심지어 먹이를 쫓다 보니 뚜껑 위에까지 올라온 적이 있는데, 다시 내려가더만요.

탈출하는 거미 야기는 다음에 다뤄 볼 예정입네다.
또한 탈출하지 않는 들풀거미의 동영상도 속속 올라갈 겁네다.
Commented by net진보 at 2011/08/03 14:39
넵 ㅠㅡ 거미들의 생태계란 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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