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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의 건설 현장 - 2. 게으른 들풀거미 '주주'

2009년부터 들풀거미를 관찰했지만 아직 그 행동 양식에 대해 모르는 것이 더 많았다. 그저 취미로 하는 일인데 마냥 눌러앉아 특정 개체만 지켜볼 수도 없고. 또한 그나마도 관찰하던 개체가 이사를 가 버리면 끝이다.

결국 한 마리를 잡아다 집에서 기르기로 했다. 거사(크학학!) 날짜는 6월 27일. 되도록 크고 무늬가 뚜렷한 놈으로 잡았다. 암컷을 잡으려고 했지만 주로 눈에 띌 만큼 자란 개체들은 온통 수컷이었다. 기껏 발견한 암컷 큰 개체들은 잡으려다 실패했다. 어쩔 수 없이 수컷이라도 잡았다.

그러나 다음날, 마음에 드는 암컷을 발견해서 한바탕 난리를 치른 뒤에 녀석을 잡았다. 녀석을 무사히 집까지 호송한 뒤에 수컷은 다시 공원 수풀에 방생했다.

암컷을 선호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이다. 수컷보다는 암컷이 크기 때문이다. 재작년에 내게 ‘수직 건축’ 유형이 아닌 다른 거미에게 관심을 갖도록 만든 것은 눈길을 확 끌어당길 만큼 커다란 개체였다. 그런 큰 개체를 다시 보고 싶었다.

암컷을 선호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너무 섹스를 밝히지 않고(크학학!) 얌전히 있기 때문이다. 그에 앞서 사슴풍뎅이를 관찰하면서 암컷은 방어적이고 수컷이 짝짓기에 탐닉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관련 게시물 <사슴풍뎅이 - 여름날의 빛과 그림자> 참조) 사실상 생물 종을 불문하고 수컷들이 적극적이고 능동적이지 않은가.

예부터 고양이에 대해서는 이런 말이 있었다. “수컷은 발정기가 되면 집을 나간다.” 실제로 그런 일은 여러 차례 경험했다. 내가 유아기일 때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집에서는 늘 고양이를 길렀는데 수컷들은 가출하는 일이 많았다. 물론 닥치는 대로 정자를 흩뿌리기 위함이다. 그런데 벌레들도 다르지 않아서 당연히 수컷들이 적극적이다. 텔레비전 동물 다큐에서 암컷에게 접근하기 위해 애를 쓰는 사마귀나 거미 이야기를 한 번쯤은 접한 적이 있을 것이다. 왜 하필 사마귀나 거미인가 하면, 이들은 대단한 포식자들이기 때문이다. 필요하다면 암컷이 수컷까지 잡아먹기 때문에 관심을 끄는 것이다.

수컷들은 짝짓기를 위해서는 죽음까지 무릅쓴다. 따라서 집에서 기를 경우 탈출하려고 애를 쓸 것이다. 짝짓기를 하지 못하면 어떤 스트레스가 쌓일는지도 알 수 없다. 이 또한 수컷을 기피하는 이유이다. (거미의 짝짓기에 대해서는 다음에 잠깐 다룰 것이다.)

작년의 경험에 의하면 들풀거미들이 제법 크게 자란 7월 중순경, 며칠 사이에 모든 개체들이 다 사라졌다. 그리고 가을이 되자 다시 조그만 놈들이 여기저기 둥지를 틀었다. 그때는 이유를 몰랐지만 세대교체가 이루어진 셈이다. 재작년에 보았던 녀석만큼 큰 덩치로 자란 개체는 없었다. 어쩌면 폭염과 무더위 등 환경적인 요인도 작용했는지 모르겠다. 먹이가 잘 걸리지 않아서 그랬을 수도 있다. 그래서 이제는 내가 직접 기르면서 충분히 먹이를 공급해 주어 다시 그 거대한 개체를 만들어 보고 싶었다. 그러나 수컷은 한계가 있다. 또한 수컷임을 쉽게 알아볼 수 있을 정도라면 이미 다 자란 놈이니 거기서 끝이다.

거미의 암수 구분에는 관심을 갖지 않았는데, 6월에 물장군과 함께 깔때기거미를 사냥하면서 궁금증이 생겼다. 배가 땡땡한 놈들은 암컷 같고, 전체 크기에 비해 배가 작은 것들은 수컷인 것 같다고 의견을 모았다. 그런데 그것이 사실일까?

물론 배가 충분히 불렀느냐의 차이도 있겠지만, 같은 환경에서 자란 개체들에게 있어서는 별 차이가 있을 수 없다. 따라서 배가 큰 놈을 암컷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궁금증이 생겨서 인터넷을 뒤져 확인한 결과, 주둥이 양옆에 달린 더듬이다리로 구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더듬이다리 끝부분이 글러브를 낀 것처럼 뭉툭한 것이 (다 자란) 수컷이다. 또한 주로 암컷들이 배가 크다는 내용도 있었다.

그날 잡은 암컷 개체에게는 ‘주주’라는 애칭을 붙여 주었다. 굳이 벌레에게까지 애칭을 붙이지는 않지만 아이들에게 설명할 때 구분을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다 나중에는 보다 많은 개체를 기르게 되면서 기록을 위해 애칭이 필요해졌다.

주주라는 이름은 한자의 ‘거미 주(蛛)’자에서 비롯된 것이다. 몸길이는 얼추 1.5센티미터 정도였다. 전날 잡은 수컷은 공원에 방생했다.


주주의 입주 1일째


일단 임시로 그동안 종종 곤충 사육에 쓰던 플라스틱 반찬통에 넣고 환경이 낯설지 않도록 잎이 빼곡한 철쭉나무 가지를 하나 넣어 주었다. 파리 두 마리도 넣어 주었다.

※ 반찬통을 쓰게 된 이유는 내가 처음 사육을 한 곤충이 개미귀신이기 때문이다. 개미귀신은 그저 모래 속에 숨어 있기 때문에 달아날 일이 없고, 따라서 주변에서 구하기 쉬운 용기에 대충 넣은 것이다. 금년에는 사슴풍뎅이를 기르면서 처음으로 곤충 사육통을 구입했다.

다음날 보니 거미는 바닥에 있고 파리들은 나뭇가지 위쪽에 있다. 풀줄기로 파리들을 건드려서 움직이게 했다. 얼마 후에 보니 거미는 파리 한 마리를 물고 있다. 먹고 난 파리 찌꺼기는 얼마쯤 떨어진 곳에 갖다 버린다.

나중에 커다란 쉬파리를 넣어 주자 기겁을 한다. 아직 집을 짓지 않은 상태라서 겁이 많다.

쉬파리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파리 중 가장 덩치도 크고 역동적이다. 집파리가 가장 얌전한 편이고, 금파리도 개체에 따라서는 꽤나 설친다. 쉬파리는 날갯짓이 매우 강하고 사람에게 잡히면 요란한 소리를 낸다. 날아가지 않도록 한쪽 날개를 떼고 넣어 주지만, 급작스럽게 움직일 때면 시끄러운 소리를 낸다. 가슴 뒤쪽 부분이 회색 바탕에 검은 세로 줄무늬가 있는 것이 쉬파리이다.

어쩔 수 없이 쉬파리는 빼 버렸다. 나중에 다른 파리를 몰이해서 가까이 보내자 공격을 하지만 적극적이지 못하다. 바닥에 약간의 거미줄을 쳐 놓았지만 아주 미흡한 상태다. 나중에 다시 파리가 접근하자 공격했지만 또 놓쳤다. 그러다가 겨우 잡았다. 몇 분쯤 물고 있던 파리를 내려놓더니, 옆의 벽(통)에 꽁무니를 문댄다. 줄을 치는 것이다. 얼마쯤 지나자 주주는 파리를 먹기 시작했다.

사실상 그 약간의 거미줄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따라서 나는 나름대로 추정했다. 심리적 안정을 위한 것이라고. 거미와 심리라, 그 조그마한 뇌를 가진 벌레에게 심리까지 적용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거미는 워낙 예민하고 섬세한 벌레라서 그렇게 추정한 것이다. 어쩌면 꼭 심리라기보다는 습성이라고 하는 편이 나을지 모르겠다. 적어도 조금이라도 거미줄이 있어야 불안하지 않은 것이다. 또한 다른 모든 예민한 벌레들도 주변 정황을 살피면서 행동하는 것으로 볼 때 심리라는 표현이 꼭 틀렸다고 볼 수는 없다.

들풀거미는 (특히 아직 덜 자랐을 때) 먹이를 터널 형태의 방으로 물고 들어가 그 안에서 먹는다. 그때는 꼭 엉덩이(배)를 바깥으로 내밀고 있는데, 먹이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행위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러니 아직 방을 만들기 전이라면 몹시 불안할 것이다. 그런데 그물조차 치기 전이라면 전혀 안전하지 못하다. 그래서 일단 기초 작업으로 주변에 거미줄을 발라 영역을 표시하는 듯하다. 동종이 아닌 다른 벌레에 대해서라면 영역 표시라기보다는 경고의 의미가 될 것이다. “여기 내가 있다. 가까이 오지 마라.”

다음날, 아직 주주는 적응이 되지 않는 듯하다. 여전히 바닥에 있으면서 집도 짓지 않고, 파리가 가까이 오면 몹시 경계한다. 사실상 ‘쨉’도 되지 않는 상대임에도. 대형 파리보다 훨씬 작은 들풀거미도 체중의 열세(서너 배 차이)를 무시하고 마구 달려들어 적극적인 종합격투기 경기를 펼치는데 주주는 파리보다 훨씬 크면서도 겁을 먹는다. 역시 안정된 공간이 필요하다.

이후 며칠을 그렇게 보냈다. 집은 짓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키면서 가까이 오는 파리만 사냥한다. 먹고 난 찌꺼기는 몇 센티미터 거리에 갖다 버린다. 배가 부르면 보금자리에 두었다가 나중에 먹는다.



주주의 입주 7일째


주주는 일주일이 지났어도 제대로 집을 짓지 않았다. 그저 엉성한 형태만 갖추었을 뿐이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원래 들풀거미는 저렇게 게으른 건가? 집이 점점 낡아서 곳곳에 구멍이 나고 엉망이 되어도 보수하지 않는 광경은 숱하게 보았다. 건설 작업을 지지리도 싫어하는 것처럼 보였다. 보수조차 하지 않을 정도라면 아예 새로 짓는 것은 더욱 싫을 것이다.

그런 까닭에 나는 공원에서도 잘못된(위험한, 또는 벌레가 거의 없는) 곳에 터를 잡은 거미들을 안전한 곳으로 옮겨 줄 때, 신중하게 판단해야 했다. 왕거미 따위라면 그냥 바로 옮겨 줘도 된다. 워낙 부지런하니 곧 집을 지을 테니까. 그러나 들풀거미라면 아주 열악하지 않은 이상은 그냥 내버려둔다. 때로는 집이 다 망가지고 ‘내실’만 남았음에도 마냥 게으름을 피우는 개체도 보았다. 그런 녀석은 쫓아내 버린다. 즉 다른 데로 옮겨 준다. 그래야 새로 집을 짓고 먹이를 잡을 수 있을 테니까.

아무튼 그런 특성을 자주 지켜본 까닭에 들풀거미는 천성적으로 게으르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주주가 일주일이 되도록 그물을 치지 않아도 그러려니 했다. 어쩌면 환경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는 사실을 6월 중순쯤 알게 되었다. 그러기에 통 속에서 기를 시도를 하게 된 것이다.

들풀거미는 이름 그대로 ‘들풀’에 어울리는 형태의 집을 짓는다. 그러나 풀줄기보다는 나무가 튼튼하고 낫다. 민가 주변에서는 키 작은 관목 조경이나, 키가 너무 크지 않으면서 가지와 잎이 빽빽한 침엽수에 주로 집을 짓는다. 잣나무, 노간주나무, 향나무 등이 거기에 해당한다.

그러나 적당한 장소를 찾지 못하면 다른 지형지물을 이용하기도 한다. 둥근 구멍 세 개가 뚫린 ‘빨간벽돌’이 쌓인 곳에 지은 개체도 종종 있었다. 그럴 때는 굳이 내실을 따로 만들 필요도 없이 벽돌 구멍이 은신처가 된다. 구멍이 위를 향하고 있을 경우에는 벽돌 면에 그물을 치기도 하는데, 그럴 경우 진동을 감지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물이 고체 면에 바짝 붙어 있으니까. 재작년에 처음 내 흥미를 끌었던 초대형 들풀거미는 차량 범퍼 위에 그물을 쳤는데 그나마 층이 두꺼워서 진동이 얼마쯤 전해졌을 것이다.

그렇다면 반찬통에서도 충분히 집을 지을 수 있는데 주주는 그러지 않았다. 철쭉나무 가지를 넣어 줬어도 활용하지 않았다. 주주가 그런 이상 행동을 보이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7월 4일, 미국 독립기념일을 축하하는 의미에서(크학학!) 녀석은 허물을 벗었다. 허물을 벗은 까닭에 배 뒤쪽의 줄무늬가 다소 희미했다.

그날 녀석에게 새로운 공간을 마련해 주었다. 커다란 페트병을 이용한 것이다. 깔때기처럼 좁아지는 윗부분은 제거하고, 원통 형태만 남겼다. 거기에 철쭉 가지를 세워 주었다. 이런 원통 형태의 공간은 어느 블로그에서 보고 배웠다. 그 블로거는 빳빳한 비닐(?) 따위를 재료로 둥글게 말아서 만든 듯한데 나는 페트병을 쓴 것이다.

그런데 너무 좁다. 잎이 너무 빽빽해서 집을 짓기에 곤란하다. 아무래도 이 역시 임시방편이고, 좀 더 지름이 큰 통을 사용해야 할 것 같다.

주주는 맨 위에 자리를 잡았다. 너무 위치가 높아서 재미삼아 두 번 건드렸더니 몇 센티미터 아래로 내려가 나뭇잎 틈새에 숨었다.

8일째인 7월 5일, 녀석은 약간의 거미줄만 쳐 놓았다. 파리가 바로 옆으로 지나가도 공격하지 않는다.

과일주 따위를 만들 때 쓰는 소주 ‘담금주’ 빈병을 구해 새로운 공간을 마련하기로 했다. 역시 윗부분은 잘라내고, 철쭉나무 가지 두 개를 수직으로 넣었다. 각 가지에서는 가는 가지들이 여러 줄기 뻗어 있어 지지대로 쓰기에 적합하다.

그러나 나뭇가지를 둘씩이나 넣자니 잎이 너무 빽빽해서 하나는 밑동을 많이 쳐내 아래쪽에 자리하게 했다. 위쪽 가지는 적당하게 펼쳐져서 집을 짓기에 이상적이었다.

병의 지름은 약 13센티미터로, 바닥에는 모래를 깔아서 어느 정도 자연적인 분위기가 나게 했다.

그런데 주주는 자꾸만 탈출을 시도한다. 파리들도 자꾸 기어 나온다. 어쩔 수 없이 뚜껑을 덮어야 했다. 이건 내가 의도한 바가 아닌데.

뚜껑은 없는 편이 낫다. 왜냐하면 먹이를 주려고 뚜껑을 열면 그 진동에 놀라 거미가 숨어 버리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거미는 진동에 매우 민감하다.

9일째, 겨우 반경 5센티미터 범위에만 그물을 쳤다. 전체 면적을 활용하라고 일부러 넓은 통으로 옮긴 건데 이게 뭐야? 파리 몇 마리의 찌꺼기가 여기저기 붙어 있고, 바닥에는 굶어죽은 파리들이 널려 있다. 이건 뭔가 잘못됐다. 거미가 잡아먹는 파리보다 바닥에서 굶어죽는 파리가 더 많다니.

[사진] 7월 9일(12일째)의 집 모양



주주의 입주 10일째

10일째, 파리를 넣어 주려고 뚜껑을 열자 주주는 황급히 아래쪽으로 피한다. 뚜껑에 거미줄을 연결한 것이다. 이런 된장! 거미에게 조금의 자극도 주지 않으려고 일부러 넓고 높은 통을 사용한 것인데 어째 잘못되었다. 좀 아래쪽에 그물을 칠 일이지.

11일째, 뚜껑에 연결한 거미줄이 더욱 진득해졌다. 따라서 뚜껑을 열 때마다 주주는 놀라서 아래로 달아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실’을 벽면 쪽에 만들어서 관찰하기가 용이하다는 점이다. 만약 복판에 만들었다면 나뭇잎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야생의 들풀거미는 일단 내실에 들어가면 관찰할 수가 없다. 나뭇잎 따위를 이용해서 가려 버리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꽁무니나 볼 수 있을까? 혹은 먹잇감이 걸리기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을 때라면 앞부분만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주주는 벽면에 수직 형태로 내실을 만들었다. 여기서 한 가지 유추할 수 있는 사실이 있었다. 들풀거미가 나뭇잎 따위를 이용해 밖에서 볼 수 없도록 집을 짓는 이유는 꼭 시각적 문제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는 촉각에 의존하는 듯하다. 즉 투명한 벽이라도 뭔가 막혀 있으면 안심하는 것이다. 누가 들여다보건 말건(크학학!) 침투는 할 수 없으니까. 그것이 거미의 사생활과 사람의 사생활의 차이이다. 거미는 침입자만 없으면, 약탈만 하지 않으면 누가 보건 말건 신경 쓰지 않는다. 전에 중학생 물장군이 기르던 깔때기거미도 얼마쯤 그런 편이었지만, 깔때기거미는 어두운 체색과 바위틈에 사는 습성으로 볼 때 당연히 밝은 곳을 싫어할 것이다. 따라서 꼭 어두운 덮개를 넣어 줄 필요가 있다.

이날 자를 대충 갖다 대고 재 보니 몸길이가 2센티미터쯤 된다. 처음 잡아올 때에 비해 크게 자란 것이다.

12일째, 더욱 집을 보강해 놓았다. 이제는 내실도 둥근 터널 형태가 쉽게 눈에 띌 정도로 틀이 잡혔다.

문제는 뚜껑과의 연결이다. 점점 뚜껑에도 빽빽하게 줄을 연결해서 갈수록 열기가 어려워진다. 이러다가 나중에는 먹이도 주지 못하겠다. (크학학!) 안전을 위해 단단하게 보강한 것이 벌레의 유입을 막는 꼴이 되었다.

어쨌든 어느 정도 주거가 안정되자 녀석은 훨씬 적극적으로 사냥을 시작했다. 파리를 쫓아 저만치 달려 나가기도 한다. 다만 파리가 그물 밖으로 달아나면 포기한다.

야생의 들풀거미는 평면상에서는 ‘영역’ 개념이 있지만 수직으로는 그런 개념이 없다. 일단 그물에 벌레가 걸리면 쫓아가는데, 벌레가 곳곳에 있는 나뭇가지를 타고 위로 오르면 쫓아 올라간다. 때로는 복잡한 추격 장면도 볼 수 있는데 나는 그것을 아이들에게 ‘술래잡기’라고 표현했다. 술래잡기를 하면 훨씬 볼거리가 많다. 그렇지 않으면 불과 1~2초 사이에 물고 들어가 버리니까.

그런데 통에서 기르는 주주는 나무줄기 맨 위쪽에 그물을 쳐 버려서 그런 ‘나무 타기’ 추격전을 볼 수가 없다. 그물에 걸린 파리는 위쪽으로 달아날 수 없으니 아래로 내려간다. 그러면 거미는 포기한다. 야생에서는 나무줄기 꼭대기에 그물을 쳤다가는 비바람에 쉽게 무너진다. 따라서 10센티미터 정도 아래에 그물을 치고 그 사이로 가지들이 솟아 있다. 마치 안개의 바다 위에 떠 있는 섬들처럼. 그런데 이 비좁은 통 안에서 주주는 맨 위에 그물을 쳤다. 그 이유를 두 가지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첫째, 비바람이 전혀 없고 안정적이라 탁 트인 위쪽을 택했다?

둘째, 공간이 좁아서 나뭇가지가 방해가 되지 않도록 맨 위를 택했다?

14일째가 되자 집은 점점 더 보강되었고, 이제는 내실도 보다 두텁게 발라서 밖에서 안이 잘 들여다보이지 않는다.

15일째, 이제는 앞마당도 잘 만들어 놓았다. 그러나 그물에 걸린 파리는 거미가 튀어나오면 기겁을 하면서 달아나고, 곳곳의 틈새를 이용해 아래쪽으로 내뺀다. 아무래도 허점이 있다. 위로 오를 가지가 없으니 파리들은 자꾸 밑으로 달아나는 것이다. (대부분의 곤충들은 본능적으로 위로 올라간다.) 파리를 넣어 주면 주주에게 잡힐 확률보다 바닥으로 내려갈 확률이 몇 배나 높다. 정말 자원 낭비, 식량 낭비이다. 뭔가 해결책이 필요하다.

이제는 뚜껑에 거미줄이 잔뜩 들러붙어서 열기도 어렵다. 따라서 내실 반대쪽 구석만 살짝 열고 파리를 투입해야 하는데, 그만큼 달아날 확률도 높아졌다.

16일째, 밤늦게 뚜껑을 확 잡아 뜯었다. 주주는 기겁을 하면서 깊숙이 숨었다.

여기서 들풀거미의 습성 하나를 알아 둘 필요가 있다. 나는 아이들에게 종종 이렇게 말해서 거미에게 보다 친근감을 가지도록 만든다.

“거미는 사람과 많은 점에서 닮았다.”

매우 예민하고, 눈치 많이 보고, 겁도 많다. 더욱이 집도 짓는다. 특히 들풀거미의 집 구조는 사람의 주택과 비슷한 면이 있다. 앞문이 있고, 침략자가 나타나면 내실 깊숙이 숨고, 아예 침략자가 내실로 들이닥치면 뒷문으로 달아난다.

우리 집에 전입을 온 뒤로 침입자나 악천후가 전혀 없는 매우 안정된 환경에서 지내던 주주는 이날 뚜껑을 잡아 뜯자 크게 놀랐다. 다른 때라면 그저 방에 콕 처박히는데 이번에는 더욱 깊숙이 내려갔다. 여차하면 뒷문으로 내빼려는 것이다.

17일째, 주주는 앞마당에 나와 있다. 보강 공사를 하는 것이다.

먹이를 주기 위해 뚜껑을 열자 엉뚱한 방향으로 숨는다. 전날까지 지내던 내실의 정반대 쪽이다. 아무래도 내실 쪽이 가장 튼튼하게 만들어져 있는데, 그것은 거꾸로 말하면 지지 기반을 잡아 뜯을 경우 그만큼 타격도 크다는 의미가 된다. 지난밤의 일 때문에 내실을 옮긴 듯하다.

[사진] 거미와 파리의 불편한 동거
7월 14일(17일째)의 모습으로,
전날 내가 뚜껑을 잡아 뜯는 바람에 내실에 타격을 입자 이렇게 밖에 나와 식사를 하고 있다.
그러다 뚜껑을 열면 전날까지 쓰던 내실 반대편 벽면 쪽으로 숨는다.
(아래 사진. 오른쪽 저편에 허옇게 보이는 것이 내실이다.)




주주의 입주 18일째

18일째, 이제는 그물을 꽤 넓게 쳐 놨지만 주주가 덮칠 때마다 파리는 가장자리로 피해 아래쪽으로 떨어진다. 바닥에는 파리가 우글거린다.

잠자리 한 마리를 넣었는데 그 날갯짓 소리에 기겁을 하면서 숨는다. 잠자리가 가볍게 날개를 치면 나와서 노려보다가, 다시 숨는다. 그러기를 반복한다. 이건 영 겁쟁이이다. 저 정도 덩치로 잠자리를 무서워한다? 어째 개체를 잘못 고른 듯하다. (그 사실은 나중에 증명된다.) 아니면 그 사이 아주 안정되게 먹이를 공급 받다 보니 야성이 사라지고 게을러진 것인지.

주주는 지난봄부터 내가 돌보던(!) 개체들로부터 다소 먼 곳에서 잡았다. 같은 공원이지만 울창한 수풀 뒤쪽의 외진 곳이었다. 따라서 그때까지 한 번도 개체의 특성을 지켜본 적이 없다. 그냥 마음에 드는 놈을 찾아 돌아다니다가 덩치가 눈에 띄기에 잡은 것인데, 가장 겁이 많은 개체인 듯하다.

어쨌든 ‘영업장’의 위치가 잘못되어 손님을 너무 많이 놓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래서 주거 환경을 개선해 주기로 했다.

일단 통 안에 든 것을 모두 끄집어내고, 잎을 모두 떼어낸 철쭉 가지를 거꾸로 세워 아메리카 원주민 텐트 골조처럼 만들었다. 바닥에는 다시 모래를 깔아 주었는데 그동안 파리 찌꺼기 등 때문에 지저분해져서 물로 깨끗이 씻었다. 모래 위에 골조를 세우되, 한쪽 구석에 놓았다. 그래야 앞마당이 훤해지니까. 골조 아래쪽에는 이파리들이 달린 작은 철쭉 가지 하나를 뉘어 놓았다. 나는 주주가 그 안에 내실을 만들 것을 기대했다.

위쪽에는 뚜껑 대신 잘라낸 병 윗부분을 거꾸로 덮는다. 그러면 깔때기처럼 되어, 벌레가 들어가기는 쉽고, 탈출할 수는 없다. (적어도 벌레의 지능으로는.) 이런 형태로 된 ‘깔때기뚜껑’의 또 하나의 장점은, 열고 닫을 때 충격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가볍게 열 수 있고, 닫을 때도 원형의 경사면이 미끄러져 들어가므로 매끄럽다.

주주와 파리들을 넣어 주었다. 그런데 주주는 엉뚱하게도 텐트 뼈대 옆쪽에 자리를 잡았다. 한 번 자리를 잡으면 그곳이 영원한 터가 되는데, 내가 원한 위치는 그곳이 아니다.

나중에는 뼈대의 꼭대기까지 타고 올라와 깔때기뚜껑 바로 밑에 붙어 있다. 쉽게 설명하자면, 여러 갈래의 가는 가지를 가진 굵은 가지를 길게 거꾸로 뒤집어 텐트 뼈대처럼 만든 것이다. 그런데 그 굵은 가지를 타고 올라왔다. 어느 블로거가 거미에게 운동을 하라고(?) 나무젓가락으로 경사로를 만들어 준 것을 보고는 착상한 것인데, 주주는 자꾸 높이 올라가려고만 한다.

뚜껑을 열고 억지로 밀어 내리려고 하는데 오히려 탈출하려고 한다. 그 바람에 애를 먹었다. 뚜껑을 약간 들고 풀줄기를 넣어 밀어 대자 결국 아래쪽으로 달아났다.

얼마 후 녀석은 나뭇잎 사이에 머리를 처박고 있다. 그 모습이 마치 좌절해서 엉엉 우는 것처럼 보인다. (크학학!) 밑도 끝도 없이 인간의 행동에 비교한 것은 아니다. 전에는 그런 행동을 보인 적이 없어서 그렇다. 어쩌면 쉬고 싶은데 집이 없어서 그런 식으로 자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설마 탈진해서 그러는 건 아니겠지? 걱정이 된다. 며칠 전에 닷거미 아난시가 죽음에 이른 까닭에 괜스레 불안해진다.

19일째, 주주는 또 뚜껑 바로 아래 벽면에 붙어 있다. 심지어 거기에 엉성하게 간이 내실을 만들어 놓았다. 그동안 그 위치(높이)에 머물렀던 습관 탓인지, 아니면 타고난 습성이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다. 아니면 젖은 모래 때문일까? ‘구조 변경’을 할 때 씻어서 넣어 준 모래가, 계속 비가 내리고 날씨가 축축해서 하나도 마르지 않았다.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 걸까?

그래서 모래를 모두 꺼내고 통을 물로 깨끗이 씻은 뒤에 화장지를 깔아 주었다. 그리고 다시 전날 그대로 구조를 만들어 주었다. 텐트 뼈대를 세우고, 그 아래쪽에 잎이 붙은 가지 하나를 깔아 준다.

그런데 주주는 또 뼈대를 기어올라 위로 오르려 한다. 그래서 ‘피뢰침’, 즉 위로 솟은 굵은 가지 부분을 잘라 버렸다. 주주는 뼈대 위로 올라갔다가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는 바닥으로 내려갔다.

얼마 뒤에는 엉덩이춤을 추기 시작했다. 주변 이곳저곳에 ‘찜’을 한다. 영역 표시 또는 경고문인 셈이다. 실제로 주주는 매우 방어적이었다. 파리가 어지간한 거리까지 다가와도 공격하지 않는다. 거미집이 없는 거미는 불안정 그 자체인 셈이다. 그나마 파리가 바로 앞까지 오자 잡아먹었다. 어떤 때는 그러한 행위가 포식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위협적 요소를 제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아난시도 그랬었다. 덮친 김에 본능적으로 먹어치우는 듯하다. 이미 배가 잔뜩 부름에도.

얼마 후 주주는 공사를 시작했다. 얼기설기 대충 집 모양을 만들었다. 머리 위쪽에 그물을 쳤다. 그런데 그물에 파리를 떨어뜨려 봐도 주주는 전혀 반응이 없다. 바닥에 있어서 진동이 전해지지 않는 것이다. 몹시 불안한 듯 구석에 어정쩡한 자세로 기대어 있다.

밤이 되자 주주는 또 위로 올라가려고 한다. 이미 바닥에 기초를 닦았음에도 영 마음에 차지 않는 듯하다. 텐트 뼈대 위로 올라가서 발버둥을 친다. 오른쪽 다리로 매달리고, 왼쪽 다리로 매달리고, 그러면서 더 올라가지 못해 애를 쓴다. 저러다 탈진할까 겁이 난다. 다행히 얼마 후 바닥으로 내려간 녀석은 안정을 찾았다.

뼈대 안으로 들어가 거기 깔린 이파리에 집을 짓는다. 그러나 결국은 처음의 자리로 되돌아갔다.

파리 한 마리를 잡았다. 그런데 한 시간이 지나도록 물고 있다. 배가 불러서 먹지 못하는 듯하다. 다만 파리가 접근하자 침입자로 간주하여 반사적으로 잡았을 것이다. 결국 파리를 바닥에 내려놓고 그 위에서 빙빙 돈다. 아마도 뒀다 먹으려고 거미줄로 감는 듯하다. 보통은 조그만 개체들이 자기보다 훨씬 큰(체중 몇 배 정도) 사냥감을 포획할 때 그 주변을 빙빙 도는데(이른바 ‘죽음의 강강술래’) 큰 개체도 그럴 때가 있다. 다만 큰 개체는 주변을 돌 필요는 없고 쓰러진 먹이 위에서 자신을 축으로 회전할 뿐이다.

[사진] 주주는 식사 중!
7월 16일의 모습인데, 기껏 마련해 준 텐트 골조에는 관심이 없고 그 옆에 자리를 잡았다.
(경고: 주주의 밥에 눈독 들이지 마시오! 크학학!)

다음 동영상들은 기초 공사를 하는 모습으로,
위쪽의 071602는 평범하지만 아래쪽 071604는 왠지 우스꽝스러운데,
몸을 뒤집어서 ‘풀칠’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20일째인 7월 17일, 드디어 어느 정도 내실의 구조를 갖추었다. 아직은 벽이 얇아서 쉽게 눈에 띄지 않는데, 녀석이 식사하는 자세를 보고는 알아차렸다. 보통 들풀거미들이 내실에서 식사를 할 때는 배를 밖으로 향한다. 그런데 이 녀석은 머리가 위를 향한 채 식사를 하고 있다. 즉 내실을 수직 형태로 짓겠다는 것이다. 처음 이 담금주 통에 넣었을 때 그랬던 것처럼. 그것이 녀석 개체의 습성인지, 아니면 환경에 적응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네모난 통에 넣었어도 수직으로 내실을 지었을까? 둥근 통이다 보니 그렇게 한 건 아닐까? 후자의 가능성도 있다. 내실은 구석의 안전한 곳에 만들어야 하는데, 둥근 통에서는 수평으로는 직선의 구조물을 만들 수 없다. 따라서 수직으로 만들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게 아니라면 공간이 좁아서 ‘건평’을 줄이기 위해 그랬을 수도 있다.

[사진] 7월 17일(20일째), 드디어 주주가 확실히 자리를 잡았다.
너무 희미해서 사진 상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어렴풋하게 내실을 만들었다.
병이 굴곡진 까닭에 주주의 자세도 제대로 알아볼 수 없지만
엉덩이를 깔고 위를 향한 채 식사하고 있는 모습이다.
아래 사진은 위쪽에서 촬영한 모습.




주주의 입주 21일째


21일째, 보다 구조물이 확실해졌다. 내실과 ‘앞마당’의 구분이 뚜렷해졌다. 수직으로 된 내실의 높이는 약 8센티미터이고, 그 위쪽 주변에 수평으로 얼마쯤 그물을 쳤다. 그 범위는 전체 면적(통 단면)의 1/3 정도에 불과하다. 오른쪽은 텐트 뼈대 꼭대기에서 끝난다.

그 뒤로 주주가 얼마나 게으른지, 혹은 겁이 많은지 알 수 있었다. 이미 먹이는 3주째 안정적으로 꼬박꼬박 공급받았다. 배가 고플 일이 없다. 그래서 그런지 어지간해서는 내실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적극적인 사냥을 하지 않고, 먹이를 바로 내실 앞에 떨어뜨려야 반응한다. 오히려 개선을 하기 전보다 더 나빠졌다. 적어도 그 이전에는 마당에 걸린 먹이를 쫓아 나왔다. 지금은 아예 방문 앞에 밥상을 갖다 바치기를 바란다. (크학학!) “밥상은 주인이 차려 줬고, 저는 그냥 맛있게 먹기만 했습니다.”

그래도 개선 전보다 낫기는 하다. 그때는 뚜껑 가까운 높이에 집을 지어서 먹이를 주려고 뚜껑을 열 때마다 주주가 놀라서 숨었으니까. 어쨌든 너무 게을러진 것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심지어는 이런 일도 있었다. 정확하게 내실에 커다란 쉬파리를 투입했다. 그러자 주주는 기겁을 하면서 몸을 움츠린다. 파리는 재빨리 아래쪽의 틈새를 통해 달아났다. 풀줄기로 파리를 몰아서 내실에 떨어뜨렸다. 파리는 주주 바로 위에 떨어졌다. 그러자 주주는 기겁을 해서 꼼짝달싹 하지 못했다. 너 거미 맞냐?

많은 종류의 정주성 거미들은 위협이 닥치면 몸을 움츠리고 죽은 척을 한다. 허공에 커다란 그물을 치는 왕거미나, 수풀에 수평면의 그물을 치는 들풀거미나, 바위틈새에 깔때기 모양으로 집을 짓는 깔때기거미나 모두 마찬가지다. 일단 커다란 동물이 건드리면 잔뜩 몸을 움츠린다.

그런데 지금 주주는 파리가 집에 들어가도 그러고 있다. 맙소사!

그 뒤로 일주일 이상이 지났지만 변한 것은 하나도 없다. 최소한의 그물만을 쳐놓고, 가끔씩 내실과 앞마당을 아주 약간씩 보강한다. 어쩌다 새벽에 불을 켜보면 녀석이 돌아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나 튼실하게, 깨끗하게 새로이 공사를 한 흔적은 없다.

어쩌다 집을 벗어나 바닥을 기어 다니는 모습도 봤는데 왜 그런지 모르겠다. 먹이를 찾는 건가? 저렇게 배가 땡땡한데? 그밖에는 내실에서 나온다 해도 그 좁은 앞마당만 조금 돌아다니는 정도이다. 다른 쪽에는 벌레가 걸려도 전혀 관심이 없고, 앞마당에 걸려도 약간 반응하거나 또는 역시 신경도 쓰지 않는다. 심지어 내실 벽 바깥쪽에 파리가 걸려 버둥거려도 나가서 잡아먹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러한 이상한 태도 때문에 처음에는 아난시처럼 임신을 했나, 아니면 허물을 벗을 때가 되었나 하고 신경을 썼지만, 그런 변화는 없었다. 그저 게으르고 그저 겁쟁이일 뿐이다. 벌레는 꼭 내실 바로 앞까지 갖다 바쳐야만 먹는다. 천하에서 가장 게으른 거미가 되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주주는 평소 사람들이 전혀 다니지 않는 외진 구석에서 잡았다. 되도록 큰 개체를 잡으려 했지만 대부분 수컷이었고, 암컷은 몇 놈을 잡다가 실패했다. 들풀거미는 단번에 제대로 잡지 못하면 놓치기 쉽다. 수풀 깊숙이 숨어 버리기 때문이다. 내실에 뒷문이 있어 그쪽으로 달아나므로 그 점을 염두에 두고 미리 차단까지 했다. 그러나 그러다 보면 앞쪽을 제대로 차단하지 못한다. 복잡한 수풀 속으로 숨으면 잡기가 어렵다.

그런데 외진 곳에 살던 주주는 사람 키만큼 높은 관목 가지에 둥지를 틀고 있었다. 훨씬 잡기가 쉬운 여건이었다. 일단 그 긴 관목 가지를 밖으로 바짝 당겨 버리면 깊숙이 숨을 데가 없으니까. 그렇게 해서 공원에서 나를 따라다니는 중학생 물장군과 초등학생 꼬마 ‘작은거미’를 동원해 비닐봉지까지 펼쳐 놓고 나뭇가지를 털었다. 그렇게 난리를 떨면서 잡은 녀석인데, 이토록 게으르고 겁이 많을 줄이야.

이후 주주는 거의 공사를 하지 않아서 거미줄에는 수십 마리의 파리 시체가 걸려 있다.

7월 28일이면 주주는 입주 한 달이 된다. 이제 하숙비를 낼(크학학!) 때도 됐는데, 저래 가지고 될까? 물론 하숙비란 돈이 아니라 정신적 즐거움이다. 그런데 녀석은 구조 개선을 해 준 이후로도 열흘이 넘도록 마냥 저러고만 있다.

[사진] 7월 27일(30일째)에 촬영한 모습

열흘 전의 사진과 비교해 봐도 내실 주변의 거미줄을 제외하면 변화가 없다.
다만 파리 시체가 수북하게 널려 있다는 것뿐.
아래 평면도에서 주변에 연노랑 빛깔로 보이는 것들은 거미의 똥인데,
주주가 가끔씩 바닥에 내려가 돌아다닌 이유는 저것들이 잘 설명해 준다.
중앙의 잎 근처에는 이틀 전에 투입한 중형 바퀴가 돌아다니고 있다.


*


그로부터 다시 5일이 지났어도 주주의 집은 큰 변화가 없다. 그나마 약간의 변화는 있었다. 그물을 전 면적에 걸쳐 쳐 놓은 것이다. 그러나 워낙 얄팍하게 ‘대충’ 쳐 놓아서 큰 효과는 없을 듯하고, 희미해서 언뜻 보면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따라서 사진은 생략!

또한 요즘 내가 덜 신경을 쓰고 꼬박꼬박 밥상을 코앞에 갖다 바치지 않자, 얼마쯤 허기를 느꼈는지 약간은 적극적으로 바뀌었다. 적어도 내실 바로 앞에 벌레가 걸려서 버둥거리면 나와서 잡아먹는다. 그러나 전혀 능동적이지 못하다. 천천히 기어 나와서, 얼마쯤 쳐다보다가, 천천히 덮친다. 나 참, 기가 막혀서.



작성: 7월 23일-26일

최종 수정: 8월 1일

* 동영상에 붙인 일련번호는 특별한 의미는 없고, 게시물을 편집하기 쉽도록 한 것입니다. 모든 사진과 동영상은 이동전화내장사진기로 촬영했습니다. (기종은 쓰리스타의 ‘여하호출’)

by 뇌의가호 | 2011/08/01 17:06 | 뇌벌레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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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마즈net at 2011/08/02 16:25
먹이 채집 을 저렇게 생포해서;;;해결하눈군여;;아...저런 병에서도 기를수잇다니
Commented by 뇌의가호 at 2011/08/03 14:33
아! 제가 깜빡 올리지 않은 사진이 있습네다.
정말 중요한 것인데, 잘라낸 병목을 뒤집어 만든 '깔때기뚜껑'이 아주 편리합네다.
보다 선명하고 구도가 좋은 사진을 고르다 보니 깔때기뚜껑을 씌운
전체 사진을 올리지 않았구만요.

기런데 배회성 거미에 대해서는 깔때기뚜껑도 완벽한 건 아닙네다.
그 야기도 다음에 다룰 겁네다.
Commented by qqq at 2012/07/29 12:24
이름이주주랰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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