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뇌의 가호뿐!
by 뇌의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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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봇의 번뇌: 소녀와 야수 -2-

 

 

“그래서 그리핀이 그 소녀랑 애무―어…… 이런 표현은 자칫 오해를 살 수 있으니까 바꾸도록 하지.― 다정하게 우애를 과시한 건가?”

우물거리며 이어지는 동료의 말에 노벰버는 고개를 저었다.

“꼭 그런 건 아니겠지. 서 박사님의 말뜻은 그게 아니었으니까. 또, 그리핀은 애완용이 아닌 실험용이라고. 그걸 잊지 말라니까.”

“아! 그렇지? 실험용.”

힐끔 형사의 반응을 살핀 모카카페는 이내 화제를 되돌렸다.

“어쨌든 그 소녀는 선을 넘어섰어. 주의 사항, 그러니까 애완용 로봇을 안아 주는 절차를 무시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얼굴을 비비고 로봇이 자기한테도―자기 몸에도― 얼굴을 비비게 했다고. 이건 정말 큰 문제인데, 소녀는 그게 위법이란 걸 몰랐을까? 아무리 어리다고 해도, 무척이나 민감한 사안인데.”

“어려서 그런 게 아냐. 너 애들하고 얼마나 어울려 봤어?”

“뭐, 종종!”

“넌 어울린 게 아니라 가지고 논 거지. 애들을 마치 장난감처럼 생각한 거야. 기계처럼, 아니, 서 박사님 표현을 빌리자면 무기질로 이루어진 기계처럼.”

“그거야, 직업 정신이니까. 아니, 아니! 정정할게. 직업병이라고 해 두지.”

“넌 그게 한계야. 애들은 ‘무기질’의 기계가 아니라고. 아니, 무기질로 이루어진 로봇도 사고방식이나 행동은 유기적으로 느껴져. 하물며 애들은 말할 것도 없지.”

“요지가 뭐야?”

설교를 늘어놓던 노벰버는 동료의 질문에 잠시 고개를 갸웃하다가 대답했다.

“애들을 너무 우습게보지 말라는 거지. 어려도 알 건 다 알아. 미디어에서도 그렇고, 학교에서도 세뇌가 될 정도로 가르쳐서 그런 건 누구나 다 알고 있어. 일고여덟 살 된 애들도 말야. 그런 애들도 성범죄에 대해선 훤하다고.”


성범죄.

그 자극적인 단어를 자각한 노벰버는 형사를 힐끔 돌아보고는 다시 동료를 향했다. 그러나 그 수다쟁이는 손가락으로 코끝만 긁고 있을 뿐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다. 몹시 민감한 화두였다.

입을 연 것은 노벰버 자신이었다.

“7년 전이었을 거야, 아마? 첫 번째 실형이 선고된 사건이 말야.”

그는 조언을 구하듯 형사를 쳐다보았다. 형사는 억양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맞습니다. 7년 2개월 전이죠.”

“그렇지! 내 기억이 틀림없어.”

노벰버는 신이 나서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 바람에 홀로그램에 나타나 있는 인공두뇌가 제멋대로 춤을 추었다. 노벰버는 급히 자세를 바로하고는, 말을 이었다.

“애완 로봇하고 도를 넘어선 행위를 할 경우 범죄로 간주되는데, 그런 행동을 했으니까. 그런…… 어…… 애무 말야. 음! 그러니까 결국 실형을 받은 거지.”

“사실 그런 일로 실형은 너무했지. 뭐, 진짜로 섹스를 한 것도 아니고.”

모카카페는 다시 형사의 눈치를 살폈지만 이제는 보다 여유가 있었다. 노벰버가 말을 받았다.

“어쩔 수 없지. 모든 법이 그렇잖아.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끔찍한 사건이 발생하면 괜히 애꿎은, 그래 애꿎은 사람들까지 피곤하게 되잖아. 법을 자꾸 강화해서 하찮은 것들까지 모조리 범죄 행위로 몰아가고 말이지. 안 그래요, 형사님?”

형사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잠시 후 묵묵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노벰버는 기가 살아났다.

“봐! 형사님도 동의하잖아.”

“그 얘긴 내가 먼저 꺼냈다고. 법이 너무, 너무 월권을 하는 거 같다고. 사생활 침해라고, 이건.”

“그래도 어쩔 수 없습니다.”

민 형사가 끼어들었다.

“강력 사건이 발생하면, 재발 가능성을 완전히 뿌리 뽑아야 하니까요. 12년 전 그 사건 말입니다.”

“그건 형사님 말씀이 맞아요.”

모카카페는 재빨리 주장을 바꾸었다. 이어 형사를 대변하듯 떠벌렸다.

“그 로봇이 주인을 죽인 건, 질투 때문이었다고. 늘 자기랑 섹스를 하던 주인한테 여자가 생겼으니까. 로봇이 아닌 인간 여자 말야. 그러니 애완 로봇 입장에서는,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지. 아! 당연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질투에 눈이 멀면 무슨 짓이든 하잖아? 어차피 애완 로봇은 사람과 똑같으니까, 똑같이 생각하고 행동하니까 말야.”

“그건…… 잘못된 생각이지. 로봇은 살인을 할 수 없다는 거 몰라?”

“물론 알지. 그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어?”

두 연구원의 눈길이 약속이나 한 듯 형사를 향했다. 형사의 표정은 얼마쯤 어두워져 있었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형사는 이내 정색을 하며 말을 꺼냈다.

“어차피 두 분은 로봇 연구원이니까 사실대로 밝히도록 하죠. 그 로봇이 주인을 ‘직접’ 죽인 건 아닙니다.”

“직접 죽인 게 아니라면, 다른 수를 썼다는 겁니까?”

모카카페의 질문에 형사는 고개를 저었다.

“그게 불가능하다는 건 더 잘 아실 텐데요? 전문가니까.”

“그럼, 어떻게 된 일인가요?”

“당시 기사에는 그저 로봇이 살인을 했다고만 돼 있었습니다. 경찰에서 그 이상의 것은 밝히지 않았기 때문이죠. 물론 미디어 자체에서도 심의를 하니까 사실대로 밝혀도 되겠지만, 문제는 거기서 벗어난 쓰레기들도 있다는 겁니다. 말초적인 신경만 자극하는, 저질 인터넷 신문 따위 말입니다.”

“그럼, 실제 사건은 어떤 거였나요?”

“복상사입니다.”

“네? 복상사요?”

두 연구원은 동시에 비명처럼 외쳤다.

형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설명했다.

“사실상 강제 성폭행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자가 남자를 성폭행하는 일은 거의 드물지만, 로봇이라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가능하죠. 육체적으로는 인간보다 강하니까요.”

“그래서…….”

노벰버가 중얼거렸고 형사는 계속했다.

“아마도 처음에는, 주인도 성행위를 받아들였을 겁니다. 늘 하던 일이었으니까요. 그러니까 발기가 됐겠죠. 그런데 어느 순간…… 아마도 로봇이, ‘미쳤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겁니다. 어쩌면 사랑을 고백했을지도 모르죠. 인간형 로봇은 어차피 사람을 그대로 흉내 내니까요.”

“저, 근데, 그 두뇌의…… 인공두뇌의 기억을 재생해 봤을 텐데요? 근데 형사님도 거기까진 모르시는 건가요?”

“우리 부서가 담당하는 분야, 범위가 아니라 그 이상은 모릅니다. 기억 재생 결과까지 알려 주진 않으니까요.”

“네. 그렇군요. 그래서 어떻게 됐나요?”

“로봇은 미친 듯이 매달렸을 것이고, 남자는 성행위를 그만두고 싶었을 겁니다. 그러다 결국은 주변에 있는 둔기를 집어 로봇의 머리를 후려친 거죠.”

“저, 그게…… 그 정도로 미치면 그 이전에 기능이 멈출 텐데요?”

이번에는 모카카페가 물었다. 그에 대답한 것은 노벰버였다.

“그게 꼭 그렇진 않지. 남자를 죽도록 사랑한다고 미친 건 아니니까.”

“그게 어째서 미친 게 아냐? 질투를 하고 광적인 집착을 보이는데? 로봇 따위가 말이지.”

“그러니까 소프트웨어의 세계가 복잡한 거야. 너처럼 무조건 하드웨어적으로, 물질적으로, 결과만 놓고 생각하면 안 돼. 어차피 로봇들도 인간처럼 사고가 복잡하니까. 어떤 여자가, 아니, 좀 더 알기 쉽게 너 자신이, 어떤 여자에게 미쳐서 죽어라 쫓아다니면, 그게 미친 거냐? 정신이 돌아 버린 거냐고.”

“그건 아니지. 그건 별개의 문제지.”

“바로 그런 거야. 로봇도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거야.”

동료를 이해시킨 노벰버는 다시 형사를 향했다.

“저, 계속하시죠?”

형사는 짧게 끄덕이고는 설명을 계속했다.

“남자는…… 섹스를 하던 상태에서 자신을 놓아 주지 않는 로봇을 공격한 겁니다. 그러자 로봇은 방어 본능이 작동된 거죠. 자신을 지켜야 한다. 로봇공학 제3원칙, 아시죠? 그런데 그때 방어 개념이란 무의미한 겁니다. 상대가 인간이니까요. 제1원칙. 자기가 살려면 상대를 제압해야 하는데, 1원칙 때문에 그럴 수가 없죠. 물론 상대를 놓아주고 달아나면 될 겁니다. 그런데 그러지 않았죠. 그 부분이 좀 모호한데…… 전 그쪽 전문가도 아니고…… 노벰버 연구원은 어떻게 생각하죠?”

“글쎄요. 죽음을 초월해서라도 남자를 붙잡고 싶다? 그건 뇌봇에서나 가능할 얘기 같은데……. 로봇은 그러지 않거든요.”

“맞아. 그렇게 설계됐으니까.”

모카카페가 동의했다. 동료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자 그는 짧게 덧붙였다.

“절대로 불가능해.”

노벰버는 말했다.

“물론 예외가 있을 수는 있겠죠. 예를 들자면…… 롬에 이상이 생겼다거나……. 그런데 꼭 그렇지 않다고 해도, 저도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만약…… 만약 그 로봇에 뇌봇과 비슷한 기능이, 후천적 학습이 본능을 초월하는 상황이 발생했다면, 그럴 수는 있겠죠. 거의 불가능한 일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로봇의 정신 영역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아! 알겠다. ‘하드웨어적’으로 볼 때, 기존의 로봇도 인간의 뇌와 흡사한 부분은 있어. 망각 기능까지 가진 건 아니지만, 특정 기능을 수행하는 부분이 딱히 할 일이 없으면 다른 기능의 영역에 편입되지. 물론 지극히 단편적이지만, 그런 점에서는 인간의 뇌와 비슷하니까. 물론 그게 원인이라는 건 아냐. 그럴 ‘수도’ 있다는 얘기지. 하지만 역시 그보다는 롬이 망가졌을 가능성이 더 클 거야.”

동료에게 고개를 끄덕거린 노벰버는 이내 형사를 향했다.

“그 정도 정보도 없었나요? 롬이 망가졌는지, 아니면 다른 어떤 이유가 있었던 건지, 그런 단편적인 정보 말이죠.”

“없었습니다.”

노벰버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인 뒤 생각에 잠겼다. 그 상태에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결국 로봇은 주인에게 반격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마냥 죽을 때까지 맞을 수도 없고, 정답은 주인을 놓아 줘야 하는 건데, 그건 싫고…… 그래서 결국은 기능 정지를 일으킨 거야. 내부적인 모순 때문에 말야.”

“그래서 복상사로? 질이 수축된 상태로 멈춰서?”

“맞습니다. 그겁니다.”

모카카페의 질문에 형사가 대신 대답했다.

어느새 흥이 난 노벰버는 혼잣말을 이어갔다.

“결국 그 사건은 로봇이 사람을 살해한 사건으로 인식돼 버렸지. 그 이유는 질투 때문이라고 경찰에서 밝혔고. 그러다 보니까 애완 로봇 통제에 대한 여론이 점점 거세지고, 당국에서도 통제를 위해서는 그게 편하니까, 결국 아예 애완 로봇 관리법이 크게 개정돼 버린 거야.”

모카카페가 뒤를 이었다.

“그러다 보니까 로봇뿐 아니라 아예 모든 작동 식 섹스 기구 판매가 금지돼 버렸고. 그 바람에 나 같은 사람만 피해를 봤지.”

“정말? 그걸 이용했었어?”

“농담도 구별 못하냐?”

두 연구원은 쑥스럽게 웃었다. 그러다가 노벰버가 이내 정색을 하며 말했다.

“결국 그래서 애완 로봇에서 섹스 기능은 완전히 없애 버렸고, 내친 김에 아예 짙은 포옹도 금지됐고, 그저 가볍게 안아 주는 것도 주의해야 하고……. 아니, 아예 인간에 대한 애정 자체를 없애 버렸지. ‘주인의 말에 복종은 하되 애정은 없다.’ 정말 사건 하나 때문에 세상이 삭막하게 바뀌어 버렸다.”

“빌어먹을 일이지.”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요?”

형사의 말에 모카카페는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형사는 늘 그렇듯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설명했다.

“한 사람의 인명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모든 사람의 불편 정도는 감수되어야 합니다.”

“그게 과연 옳은 일인가요? 한 사람 때문에 수천만 명의 국민이 불편해도 되는 건가요?”

“만약 그 한 사람이, 당신이라면?”

무뚝뚝하게 튀어나오는 그 반문에 모카카페는 입을 다물었다.

대신 입을 연 것은 노벰버였다.

“글쎄요……. 저라면, 설사 제가 그 한 사람이, 즉 희생자가 될지언정, 그것 때문에 수천만 국민을 불편하게, 그것도 심하게 자유를 침해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당신 생각일 뿐이고.”

“물론 제 생각일 뿐입니다. 그러나 저는 감수할 겁니다. 저뿐 아니라, 저하고 똑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더 많을 걸요? 구더기 무서워서 장을 안 담그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잠시 사이를 두었던 노벰버는 힘주어 덧붙였다.

장을 담그지 못하는 이유는 구더기 때문이 아니라, 구더기를 교묘하게 이용하는 정책자들과, 또 거기에 선동되어 객관적인 판단 능력도 없이 외치는 여론 때문입니다.

모카카페가 슬쩍 형사의 눈치를 살피고는 이의를 제기했다.

“그건 아니지. 길거리에 나가서 사람들 붙잡아 놓고 물어 봐. 열에 아홉은 현재의 정책을 지지할 걸?”

“이미 말했잖아. 그건 군중심리이거나, 아니면 눈치 때문이라고. 다른 사건도 아니고, 가장 끔찍한 살인 범죄와, 가장 민감한 성범죄였기 때문에 너도나도 입을 다무는 거야. 애완 로봇과의 교감은 결코 추잡하지도 끔찍하지도 않은 건데도, 그것까지 연계해서 한 통속으로 몰아가는 거라고.”

“그럼 익명으로 설문조사를 하면 되잖아. 근데 전에 보니까, 그것도 거의 95퍼센트는 정책에 찬성하던데?”

“몇 번이나 말해야 알겠어? 끔찍하고 추잡한 사건. 그게 키워드야. 다른 사안이라면 카메라 앞에서는 입단속을 하겠지만 익명으로는, 그래 가면 뒤에 숨어서는 진심을 말하겠지. 그렇지만 이런 경우는 소용없어. 아무리 익명일지라도, 그런 주장을 한 사람은 결국 욕을 먹기 마련이야.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게 뭔지 알지? 뒤에서 욕먹는 거야. 이건 국토개발 사업이니 환경 문제니 정치 이데올로기니 하는 것과도 달라서, 자기편이 없어. 그냥 추악한 놈으로 낙인찍힐 뿐이라고. 그래서 무조건 정책에 찬성하는 척하는 거야. ‘척’ 하는 거라고.”

“5퍼센트를 빼면 말입니다.”

열띠게 설명하던 노벰버는 형사의 목소리에 흠칫 놀랐다. 그러나 이내 긴장을 풀며 대답했다.

“네. 5퍼센트요.”

“그 중에는 당신도 끼어 있고요.”

“네! 저도 끼어 있습니다.”

노벰버는 당당하게 대답했다.

형사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말문이 막힌 것은 아니었다. 심기가 불편한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숙고하는 표정으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었다.

 

 

그리핀은 마치 한 마리의 사자처럼 잔디밭에 옆으로 누워 있었다. 소녀는 그 목덜미에 상체를 얹은 채 앉아 있었다. 길게 뻗은 한쪽 손이 뇌봇의 배를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기계 짐승이 숨을 쉴 때마다 배는 천천히 오르내렸다. 마치 ‘살아 있는’ 동물처럼.

그러한 평화로운 광경을 먼발치에서 지켜보는 눈길이 있었다. 굵다란 나무 뒤에 숨어서, 나무 그늘에 몸을 감춘 채로.

 

 

“특이한 일이야.”

짧게 내뱉은 모카카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동료와 눈이 마주치자 그는 쓴 입맛을 다시고는 뒤를 이었다.

“사실상 요즘은 청소년, 특히 아동들에게 훨씬 더 애완 로봇과의 접촉을 주의시키고 있는데 말이지.”

“아예 금하는 경우도 많아. 가정에서, 심지어는 학교에서까지. 애완 로봇과 물리적 접촉을 하는 학생은 일단 교과 성적에 반영이 된다고 하니까.”

노벰버도 씁쓸한 목소리를 냈다. 모카카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도덕, 특별활동, 때로는 국어 과목도…….”

“심지어 과학 과목까지 불이익을 주는 학교도 있다고 하니까.”

“과학 과목까지?”

“응!”

“말세로군! 젠장!”

모카카페는 혀를 찼다. 이어 버릇처럼 손가락 끝으로 안경을 밀어 올렸다.

노벰버는 다시 화면을 향하며 말했다.

“그러니 네 말처럼, 웬만한 아이들은 저 정도로 애완 로봇과 친하게 놀지는 않지. 로봇이 아니라 뇌봇이지만, 어쨌든. 물론 동물 로봇은 인간형 로봇과 달라서 애초 성기능 같은 게 없었지만, 세상이란 게 그렇지. 의심도 더럽게 많으니까. 아니, 의심을 자꾸 만들어 내지. 자꾸 부추기고, 확대 재생산 하는 거야. 인간형 로봇뿐 아니라 동물형 로봇까지 금기시하고 있으니까.”

“그만큼 우리 밥그릇도…….”

짓궂은 웃음으로 내뱉던 모카카페는 형사의 눈치를 보고는 재빨리 두 손을 내저었다.

“아! 농담입니다. 농담인 거 아시죠?”

형사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노벰버는 계속했다.

“저 소녀는 아마도 특별한 뭔가가 있었겠지.”

“어릴 때 습관을 못 버린 건가?”

동료의 말에 노벰버는 고개를 저었다.

“열한 살밖에 안 된 소녀야. 관련법이 생긴 건 11년 전이었고, 그때는 태어나지도 않았어. 그러니까 어릴 적 습관은 아니지.”

“그럼 계속 방치했다는 얘긴데…….”

“방치라…… 어째 표현이 안 좋은데? 마치 범법 행위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지.”

“사실상 범법 행위인 건 맞지.”

“그건 그렇지. 현행법으로는.”

“아마도 서 박사님 이웃이라 그럴 겁니다. 일종의, ‘특혜’인 셈이죠.”

민 형사가 끼어들어 한마디 했다.

“특혜요?”

모카카페의 질문에 대답한 것은 노벰버였다.

“아무래도 워낙 저명한 인물이니까, 이웃 주민들은 박사님이 개발하는 로봇들과 자주 접촉했겠지. 당국에서도 거기까지 관여하지는 못했으니까.”

“일종의 실험 대상?”

“그 표현도 영……. 실험 대상은 로봇이지. 이웃 주민들은 소비자 구실을 하는 거고. 일종의 베타테스터라고 볼 수 있겠지.”

“어쨌든 뭐, 그게 그거잖아. 결국 그 바람에 소녀는 죽음을…… 죽음에 이르렀고.”

“그걸 소녀 탓으로 돌리지 마. 서 박사님 탓으로 돌리지도 말고.”

“누가 뭐래?”

“그놈이 문제였던 거지. 쓰레기 같은 기자 새끼. 사실상 진짜 기자도 아니지만.”

 

 

다가오는 발소리에 소녀는 눈을 들어 쳐다보았다. 인간보다 청각이 훨씬 예민한 뇌봇 그리핀은 이미 알아차리고 있었지만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시선이 그쪽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에 굳이 고개를 들거나 돌릴 필요도 없었다.

사내는 긴장을 풀지 않은 채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다가갔다. 그리핀은 여전히 평온한 태도였지만 사내는 몹시 조심했다. 왜냐하면 그 짐승은 기존의 로봇이 아닌, 뇌봇이었으니까. 아직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인조 기계.

소녀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다가오는 남자를 지켜보았다. 그러나 놀라거나 경계한 눈빛은 아니었다. 여전히 몸은 그리핀 위에 파묻고 있었고, 평온했다. 그저 호기심이 어린 표정이었다.

사내는 열 걸음쯤 앞에 멈춰 서서 말을 건넸다.

“안녕, 꼬마 아가씨?”

“안녕하세요?”

답례하는 소녀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났다.

사내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그리핀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 동물…… 아니 로봇, 네 거니?”

“아뇨. 서 박사님이 새로 개발하시는 거예요. 로봇이 아니라 뇌봇이에요.”

“뇌봇? 로봇과 차이가 뭐지?”

“그냥, 인공두뇌가 인간의 뇌에 좀 더 가까워서 그렇게 이름 붙인 거래요.”

“오호! 그렇구나?”

사내는 손에 들고 있던 팜탑을 조심스레 눈앞으로 가져갔다. 이미 녹음 기능은 작동되고 있었다. 그는 손가락 끝으로 액정 화면에 글씨를 휘갈겨 썼다.

살짝 손끝으로 건드리자 이내 글자는 지워지고 대신 정자로 된 단어가 나타났다.

뇌봇

소녀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근데 또 다른 의미도 있대요.”

“또 다른 의미? 그게 뭔데?”

“‘뇌’라는 말이, 독일어와도 관련이 있대요. ‘노이에!’ 그거래요. 새롭다는 뜻이라나요? 거기다 ‘봇’을 붙인 거죠.”

“오, 그래? 노이에와 봇의 합성어라……. 노이에, 노이에, 노예. 그리고 로봇의 봇! 어차피 로봇도 노예란 뜻인데, 거기다 독일어 노이에를……, 줄여서 노예가 되고, 결국은 같은 뜻이 중복되는 셈이구나?”

소녀는 어리둥절해서 그저 크게 뜬 눈으로 쳐다볼 뿐이었다.

사내의 얼굴에는 희미하게 회심의 미소가 떠올랐지만 소녀는 눈치 채지 못했다. 그러나 뇌봇, 그리핀은 반응을 보였다. 그 평안하던 표정이 사라지고, 눈을 크게 떴다. 살짝 고개를 틀어 사내를 올려다보았다.

사내는 여전히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다음 질문을 했다.

“항상 이러고 노니?”

“그리핀이 밖으로 나올 때만요.”

“그리핀? 이 로봇, 아니 뇌봇 이름이 그리핀이야?”

“네.”

“언제 첨 만든 건데?”

“한…… 몇 달 됐을 거예요. 5월에 첨 봤던가?”

고개를 끄덕거린 사내는 보다 집요하게 물었다.

“그 전에는? 전에도 로봇하고 이렇게 재밌게 놀았어?”

“그럼요! 박사님이 새로운 로봇을 개발할 때마다 함께 놀게 해 준 걸요?”

“이렇게 끌어안고?”

“네.”

대답하는 소녀의 얼굴이 문득 굳었다. 그제야 뭔가를 눈치 챈 듯이. 그러나 사내는 아랑곳하지 않고 질문을 계속했다.

“너희 학교에선 성적에 반영 안 돼? 이런 행위가 말이지.”

“저, 저 그게…….”

“아! 안 그런 학교도 있지. 근데, 그러다 잘못하면 로봇이 사고를 친다는 얘긴 못 들어봤어? 무서운 일이 일어날 수도 있는데.”

“저, 서 박사님 로봇은…….”

“괜찮다고? 세상에 괜찮은 건 없지. 늘 예외란 있으니까 말야. 12년 전에 있었던 사고 알아? 로봇이 사람을 죽인 거?”

“모, 몰…… 알긴 하는데…….”

소녀는 더듬거리며 회피하려 했지만 사내는 물러서지 않았다.

“알지? 로봇이 질투에 빠져서, 주인을 죽인 거야. 여자 애완 로봇이, 남자를 말이다. 그 사건 알지? 들어 봤지?”

“모, 몰라요!”

이제 소녀는 겁에 질려 있었다. 그 감정을 알아차린 뇌봇이 고개를 들었다. 소녀가 반사적으로 뒤로 몸을 빼자 뇌봇은 몸을 벌떡 일으켜 사내를 향했다.

“이, 이게…….”

사내는 뒷걸음질을 하며 으름장을 놓듯 말했다.

“로봇이 사람을 해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 텐데?”

그러나 뇌봇은 이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 얼굴에 점점 분노가 들어차고 있었다.

“제기랄!”

사내는 허둥지둥 뒤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외쳤다.

“로봇이 사람을 해치려 한다! 로봇이 사람을 해치려 한다!”

그리핀은 쫓아가지 않았다.

처음에 숨어 있던 나무 밑에 다다른 사내는 뒤를 돌아보고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 빈정거렸다.

“그럼 그렇지. 로봇 따위가 어떻게……. 진짜 야수도 아니고.”

그는 팜탑의 촬영 기능을 작동시키고는 소녀와 뇌봇을 겨누었다. 거리가 멀어서 너무 화면이 작았다. 조작을 하자 금세 줌인이 되어 화면에는 소녀와 로봇이 가득 찼다. 어느새 소녀도 자리에서 일어나 있었다. 수치심과 분노가 가득한 표정이었다.

“그래, 그래! 표정 좋다. 그렇게!”

신이 나서 혼자 중얼거리던 그는 소리쳐서 소녀에게 물었다.

“얘야! 딱 하나! 딱 하나만 더 묻자! 로봇을 끌어안고 잔 적도 있니?”

소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무서운 눈빛으로 노려볼 뿐이었다.

“옳지! 표정 좋고. 그럼 또 하나 묻…….”

그는 말을 마치지 못했다. 뇌봇이 달려오기 시작했다. 수십 걸음 거리에서 보기에도 그 모습은 매우 위압적이었고 충격적이었다. 실제 짐승도 아니고 로봇도 아닌, 마치 이계로부터 튀어나온 괴물 같은 느낌이었다.

사내는 뒤돌아 허둥지둥 달아났다.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저런 행동은 아무래도 문제가 있는데?”

모카카페의 말이었다. 이번에는 노벰버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고, 힘을 얻은 모카카페는 계속했다.

“주인에게…… 그래! 주인이라면 주인이니까, 주인에게, 그 주인에게…… 위해를 가한 것도 아닌데 저런 행동을 했어. 아무리 실제 공격 의사는 없었다고 해도 말이지.”

그러나 이내 노벰버는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갸웃하며 동료를 바라보던 모카카페는 형사에게 동의를 구하는 하소연의 눈길을 보냈다. 그러나 그 무뚝뚝한 형사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을 유지할 뿐이었다. 그런 일관된 면모는 금속과 나노 소재로 이루어진 로봇보다도 더 로봇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거기에 홀로그램과 벽면 스크린의 영상에서 뿜어져 나온 빛이 겹쳐져서 더욱 그랬다. 차가운 푸른빛은 그의 딱딱한 얼굴에 너무나도 잘 어울려 보였다.

“꼭 터미네이터 같네.”

모카카페는 눈길을 되돌리며 형사가 듣지 못하도록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그러나 노벰버는 들을 수 있었다. 그는 동료 대신 슬쩍 형사의 반응을 확인했다. 형사는 그저 슬쩍 눈을 깔아 모카카페를 힐끔 내려다보았을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노벰버는 이내 동료에게 눈길을 돌리며 말했다.

“분명히 위해를 가했어.”

“뭐?”

민 형사가 풍기는 기괴한 분위기 때문에 어느새 대화의 주제를 잊고 있던 모카카페는 어리둥절한 반응을 보였다. 노벰버는 손짓으로 주의를 환기시키며 설명했다.

“잘 생각해 봐. 저 작자는 소녀를 협박했어.”

“협박하지 않았어.”

“그게 바로 너의 한계야. 자꾸 하드웨어적으로만 생각한다니까. 정신적으로 위해를 가했잖아. 저 빌어먹을 작자가 말야.”

“그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공격할 순 없지. 로봇공학 원칙에도…….”

“분명히 나와 있지.”

“뭐?”

“나와 있다고!”

거듭 반발하는 동료 때문에 노벰버는 고집스럽게 언성을 높였다. 그때였다. 그 자리에 있는지 없는지조차 알 수 없었던 미뇽이 끼어든 것은.

“분명히 나와 있습니다.”

“네?”

모카카페가 반응했고 미뇽은 설명했다.

“물질적, 또는 물리적, 즉 육체적이니 정신적이니 하는 세부적인 조항은 없으니까요. 만약 누군가 당신을 모독하고 명예를 훼손했다면, 그건 위해를 가한 게 아닙니까?”

“아, 그거야! 물론 위해를 가한 거죠. 오히려 그게 더 중범죄죠!”

모카카페는 약간 흥분한 목소리를 냈지만 형사의 시선은 어느새 그를 떠나 노벰버를 향하고 있었다.

“계속하세요.”

빠르게 고개를 끄덕여 보인 노벰버는 뒤를 이었다.

“그리핀은 그것 때문에 저 쓰레기를 공격하는…… ‘척’ 한 겁니다. 물론 이미 아시겠지만요.”

민 형사의 입이 오므라들었다. 그답지 않은 표정에 노벰버는 어리둥절했다. 형사는 곧 물었다.

“‘척’ 했다는 건, 저 쓰레기, 엔젤아이가 실제로는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미 알았다는 것 아닙니까? 그리핀이 말입니다.”

“그, 그렇다고…… 볼 수도 있죠.”

“그런데도 공격 행동을 보였다는 건, 아무리 페이크였다고 해도 이해할 수 없는데요? 아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죠. 그런 행동 자체도 인간에게 위해를 끼치는 것이니까요. 당신이 즐겨 쓰는 말처럼, 정신적, 소프트웨어적으로 말입니다. 즉 그리핀은 그 빌어먹을 쓰레기에게 정신적 쇼크를 준 겁니다. 그 야수처럼 생긴 뇌봇은 그런 사실을 몰랐을까요?”

“어쨌든 엔젤아이가 소녀에게 실질적인 피해를 준 건 사실이니까요.”

“하지만 그때만 해도 아직 그리핀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죠. 아니, 아직 그 일은 일어나지 않았죠. 설마, 그리핀이 미래 예측 능력이 있다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니겠죠?”

“무, 물론…… 그런 건 아니지만, 어쨌든 소녀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는 사실을 느꼈을 겁니다. 네! ‘느낀’ 겁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말 그대로 느낌입니다. 그리핀의 느낌. 그 뇌봇은 소녀가 몹시 두려워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으니까요.”

“그건 인정하지만, 한 사람이 두려워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을 공격한다?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인간 세상에서 린치, 즉 사사로운 형 집행이 허용되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아무리 범죄자라도 일단 법정에 세우고, 정법적인 절차에 따라서 처리한다는 사실을 잘 아실 겁니다. 인간이 사사롭게 인간을 처벌―또는 처단!―할 수는 없습니다. 기독교에서는 그 이유를 하나님만이 벌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데, 그런 허튼 소리는 집어치우고라도, 어쨌든 법치주의 국가에서는 하나님 격인 법을 무시하는 사사로운 공격…… 또는 처단 행위는 있을 수 없죠. 그런데 그리핀은 그런 행동을 보였습니다. 이미 저 상황에서 말입니다. 거기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건 저도,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좀 더 많은 정보가 주어지기 전까진 말입니다.”

“그럼 계속하죠?”

“네.”

형사의 권유에 노벰버의 눈은 다시 화면을 향했다.

그리고 정지된 화면을 다시 실행시켰다.

 

 

                                                                                ☞ 다음 편으로……

by 뇌의가호 | 2011/09/24 13:35 | 뇌블 Noevel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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