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뇌의 가호뿐!
by 뇌의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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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봇의 번뇌: 소녀와 야수 -끝-

 

 

 

엔젤아이는 혼신의 힘을 다해 달렸다. 뒤에서는 미친 기계 괴물이 쫓아오고 있었다. 이런 상황은 지금까지 들어 본 적도 없었다. 소녀에게 직접적인 위해를 가한 것도 아닌데, 그 소녀와 무척 친한 야수가 쫓아오고 있었다. 또한 그 야수를 공격한 적도 없다. 아니, 뇌봇은 야수처럼 보이지만 야수는 아니었다. 적어도 모든 로봇은 인간을 공격할 수 없다. 그것이 인간형 로봇이건, 아니면 동물형―빌어먹을 동물!― 로봇이건. 그것은 제1원칙에 위배되는 행위였다.

다시 한 번 힐끔 뒤를 돌아보던 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동시에 발걸음이 늦추어졌고, 이내 멈추었다.

뭔가 이상했다. 뇌봇이 추격을 멈추는가 싶더니 이내 되돌아가고 있었다. 그 자체가 이상한 것은 아니었다. 로봇이 아닌 생체로 이루어진 동물이라도 마찬가지였다. 위협적인 대상을 내쫓다가 충분히 멀어졌다고 여기면 되돌아가는 것. 그러나 그리핀의 행동은 그것이 아니었다. 몹시 당황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허겁지겁 달려갔다. 마치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처럼.

그리핀은 전력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신체 곳곳에, 모든 관절에 동력을 제공하는 서보모터와 피스톤이 미친 듯이 작동하고 있었다. 이미 출력이 최대치에 달한 동력 장치들은 거의 불타 버릴 것처럼 빠르게 움직였다. 낯선 침입자를 쫓을 때보다 더욱 더.

난간 바로 앞에서 걸음을 멈춘 그리핀은 아래쪽을 내려다보았다. 불과 얼마 전에 소녀와 함께 느긋하고 평온한, 그리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던 자리에서 불과 몇 걸음 거리였다. 난간 너머는 깎아지른 수직의 낭떠러지였다. 둑의 높이가 10미터는 되었다. 그 아래쪽으로는 좁은 물길이 흐르고, 양옆에는 산책로가 이어져 있었다.

소녀는 거기에 누워 있었다. 몸이 이상한 형태로 구겨진 채로. 평소와는 다르게, 살아 있을 때와는 다르게, 몹시 이상한 자세를 한 채로.

소녀의 머리 아래쪽에는 액체가 흥건하게 고여 있었다.

그 피는 코에서 흘러나온 한 줄기 액체와도 같은 붉은 색이었다.

그리핀은 고개를 높이 쳐들고는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

몹시 처절한 목소리로.


 

“결국 그리핀의 섣부른 행동이 일을 크게 만든 거야.”

“그걸 왜 그리핀에게 뒤집어씌우나? 말썽을 일으킨 건 그 빌어먹을 기자 놈이었는데.”

사무적으로 내뱉는 모카카페에게 노벰버는 언성을 높여 반발했다. 한순간 움찔한 모카카페는 이내 마음을 진정시키고는 설명했다.

“그건, 그리핀이 소녀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잖아. 만약 그리핀이―네가 그렇게, 그토록 주장했던 것처럼!― 정말 소녀의 마음을 헤아렸다면, 엔젤아이를 쫓아가진 않았을 거야. 소녀를 지켰겠지. 옆에 남아서 말야.”

“그런 헛소린 집어치워! 그리핀이 거기까지 생각할 수 있다고 생각해? 너라면, 네가 저런 상황에 처했다면 어땠겠어? 그리핀은 이제 겨우 몇 달밖에 안 됐다고. 세상 경험이 턱없이 부족해!”

“그건 그렇지만…… 그렇다 치지만…… 어쨌든 그리핀의 행위가 소녀에게 쓸데없는 불안감을 심어 준 건 사실이야.”

“언제부터 소프트웨어 전문가가 됐지? 지금 내 앞에 서 있는 사람이 모카카페 맞나? 하드웨어의 일인자 모카카페? 아냐?”

“그럼? 무슨 소릴 하고 싶은 건데?”

“그때 그리핀이 할 수 있었던 일은, 그저 침입자, 그 추악하기 없는 작자를 내쫓는 것뿐이었어. 그리핀이 소녀 옆에 남아서, 그냥 소녀를 달래 줬다면 어땠을 거 같아? 물론 그리핀은 말을 할 수 없으니까 몸짓으로 달랬겠지만. 그러면 해결이 됐을 거 같아? 소녀가 무사했을 거 같냐고!”

“그럼 엔젤아이가 더 놀렸을 겁니다.”

미뇽의 짧은 한마디가 해답으로 와 닿았다. 노벰버는 그를 향해 크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다시 모카카페를 향했다.

“바로 그거야! 엔젤아이 같은 쓰레기는 계속 그 자리에서 꼴값을 떨었을 거라고. 지랄을 한다는 얘기지! 남의 허점만 물고 늘어지고, 자기에게 물리적인 위해가 없으면 허세를 부려서 더 궁지로 몰아넣지. 인간 세상엔 그런 일들이 너무나도 많아. 그런 작자들이! 설마 그걸 모르는 건 아니겠지? 남의 허점을 잡아 헛소문을 퍼뜨리는 족속들, 가장 더러운 족속들 말야!”

“가장 정확한 지적입니다.”

민 형사가 적극적으로 동의를 표했다. 그의 성격에 어울리지 않게. 노벰버는 흥분을 가라앉히고는, 보다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래서 그리핀은 엔젤아이를 쫓아간 거라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끝까지 지랄을 떨 거니까. 그때 엔젤아이가 술에 취해 있었다는 거 알지? 맨 정신으로는 자신이 없으니까 술을, 술의 힘을 빌려서 허세를 부리고, 술에서 깨면 자신의 쾌거에 또 다시 흥분하겠지. 큰 건수를 얻었다고 말야.”

“아, 알았어, 알았어. 알았다고!”

모카카페는 두 손바닥을 내밀어 다시 흥분이 시작된 동료를 말렸다. 씩씩거리던 노벰버가 숨을 고르며 진정하자, 모카카페는 다음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소녀가 자살한 데 흥분해서, 결국 그리핀은 엔젤아이를 죽였다?”

 

 

엔젤아이는 미친 듯이 달리고 있었다.

등 뒤에서는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야수의 뜨거운 입김이, 숨결이 뒷덜미에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런 착각이 들 정도였다.

달아나는 발걸음이 더욱 빨라졌다.

두 발이 뒤엉켜 한순간 비틀거렸다.

뒤를 돌아보는 순간, 엔젤아이의 낯빛은 더욱 새파래졌다. 공포에 질린 두 눈은 더욱 크게 벌어지고 있었다. 야수는 불과 몇 걸음 뒤까지 바짝 따라붙어 있었다. 그 날카로운 이빨이 뚜렷이 드러났다.

절망은 삽시간에 닥쳐왔고, 두 다리를 경직되게 만들었다. 종아리 근육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 공포, 그 고통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엔젤아이는 처절한 비명을 내질렀다. 그러나 그것도 찰나에 불과했다.

야수의 몸이 공중에 뛰어올랐고, 이내 엔젤아이를 덮쳐 버렸다.

 

 

“결국 그리핀은 소녀의 복수를 한 셈인데, 그게 더 이상해. 복수라는 개념, 그건 기존의 어떤 로봇에게도 없던 거니까.”

모카카페의 말에 노벰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입술이 잔뜩 모아져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숨 막힐 듯한 정적이 흐르다가, 민 형사의 말에 그것은 깨뜨려졌다.

“어떻게 생각합니까? 노벰버 연구원.”

“이미 답은 나와 있습니다. 그리핀은 로봇이 아니라 ‘뇌봇’이니까요. 기존의 개념 같은 건 여기서 아무런 쓸모도 없죠.”

“뇌봇이니까…… 가능하다는 얘긴가요? 살인까지도?”

“그건 별개의 문제입니다. 살인이 아니라 복수심 말입니다. 자신이 가장 사랑…… 존중하던 존재를 위해서는 그 무엇도 할 수 있다는 것 말입니다.”

잠시 묵묵히 생각에 잠겼던 민 형사는 다시 물었다.

“그럼 당신은 그리핀이 영혼―아니, 그 무엇이라고 불러도 좋지만 어쨌든― 그런 개념을 가지고 있다는 얘긴가요?”

“그리핀뿐 아니라 모든 로봇이 느끼고 있는 거죠. 다만 무의식으로 느낄 뿐, 그것을 확실히 인지하지 못하는 것일 겁니다.”

“그러나 복수를 한 로봇은 없었습니다. 아니, 그런 생각을 한 로봇이 없었죠.”

“그건…… 그걸…… 복수심을 무의식에 가지고 있느냐, 아니면 스스로가 인지하느냐, 그 차이일 겁니다. 아마도 다른 로봇들은…… 그런 마이너적인 사고를, 즉 불필요한―불필요하다고 여겨지는!― 사고를…… 오류라고 생각하고 삭제해 버렸을 겁니다. 네, 오류요! 아무런 쓸모가 없으니까, 아니 쓸모가 없다고 생각하니까 오류로 단정한 거죠.”

“그런데 그리핀은 그게 오류가 아니라, 현실이라고 생각한 거고요?”

“그렇죠.”

해체된 머리 부분 안쪽으로 보이는 그리핀의 두뇌에는 보다 많은 전극들이 연결되어 있었다. 또한 주변에는 레이저 탐침이 몇 개 설치되어 가끔씩 푸른빛을 인공두뇌에 발사하고는 했다.

노벰버는 계속 데이터 글러브를 조작해서 정보를 끄집어내려 노력하고, 모카카페는 그리핀의 두뇌에 매달려 수시로 전극이나 레이저를 조작했다. 그 모습이 마치 벌집을 쑤시는 어설픈 사냥꾼처럼 보이기도 했다.

“서 박사님 신개발품은 이래서 피곤하다니까.”

모카카페가 계속 전극을 만지작거리며 투덜거렸다.

“기존의 상식을 뒤흔들어 버리거든.”

“덕분에 우리도 배울 게 있는 거지.”

노벰버는 무덤덤한 태도로 대꾸했다.

“근데 너무 배울 게 많아서 탈이라는 거지. 제기랄! 이미 이 바닥 물을 먹은 게 10년이 넘었는데, 이럴 땐 유치원 시절로 되돌아가는 기분이거든?”

“좋은 쪽으로 생각해. 그만큼 머리가 녹슬지 않잖아.”

“녹슬지 않는 건 서 박사님이지. 오십이 넘은 나이에도 언제나 새로운 콘셉트를 내놓으셨으니까.”

두 사람의 작업을 묵묵히 지켜보던 민 형사, 미뇽이 말했다.

“계속 얘기를 듣다 보니까, 서제도 박사님은 참 대단한 분인 것 같군요?”

“여태 그걸 모르셨어요? 그 유명한 분을요?”

모카카페가 슬쩍 나무라듯 물었다. 애정 어린 웃음과 함께. 미뇽은 여전히 표정에는 변화가 없지만 보다 겸허한 목소리를 냈다.

“유명한 거야 온 국민이 다 아는 사실이지만, 전 이쪽 분야엔 젬병이라서, 그저 유명하다는 것만 알고 있습니다.”

“얼마나 알고 계세요? 서 박사님에 대해서.”

“말 그대로 유명하다는 정도입니다. 한국 로봇 개발 분야의 첨병, 아니 세계적인 트렌드를 이끄는 분이라는 정도?”

손에 들고 있던 팜탑을 잠시 조작한 뒤 화면을 들여다보면서 미뇽은 계속했다.

“본명 스티븐 제이 도킨스. 서울 출생으로 추정. 한 살 무렵 미국인 양부모에 입양되어 뉴욕에서 성장. 스물한 살에 동물행동학 박사 학위 취득. 스물여섯에 인공두뇌학 박사 학위 취득. 서른두 살에는 한국으로 영구 귀국, 또는 귀화? 서제도라는 한국식 이름을 사용함. 이후 한국에서 연구 생활을 계속함.”

“거의 껍데기만 알고 계시는군요? 그 정도는 인터넷 뒤지면 다 나오는 단순 정보 아닙니까?”

노벰버가 씩 웃으며 물었다. 고개를 끄덕여 보인 미뇽은 그 무표정한 얼굴에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이미 말했다시피.”

다시 모카카페가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애드나에 ‘원칙’이 들어 있지 않다는 건 정말 충격적이었어. 상식 밖의 일이라고. 유치원생이라도 다 알고 있는 상식인데 말야.”

“그러니까 그걸 찾는 거잖아.”

“대뇌에서? 그걸, 3원칙을 본능이 아닌 학습 개념으로 삼는다는 게 말이나 돼? 당연히 애드나에 들어 있어야지.”

동료의 칭얼거림에 신물을 느낀 노벰버는 고개를 돌렸다. 문득 그의 눈에 형사의 얼굴이 들어왔다. 형사는 그 가는 입술을 모은 채 모카카페를 바라보고 있었다. 고개가 약간 갸웃해 있었다. 금세 눈치를 챈 노벰버가 물었다.

“애드나가 뭔지 궁금한 거죠?”

형사의 눈은 노벰버에게 돌아왔다.

“아! 네.”

“애드나는…….”

“에이디엔에이! 즉 인공 디엔에이를 말하는 거죠.”

모카카페가 재빨리 끼어들어 가로챘다. 그리고 기회라도 만났다는 듯 신이 나서 떠벌렸다.

“일종의 롬 말입니다. 다만 일반적인 로봇의 롬과는 개념이 다르죠. 말 그대로 디엔에이를 많이 모방했어요.”

“어떻게 말입니까?”

“그건…… 아무래도 형사님이 이해하려면……. 너무 전문 분야라서 말이죠.”

형사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때였다.

문득 형사의 팜탑에서 신호음이 들렸다. 그는 기기를 눈앞으로 가져갔다. 잠시 화면을 들여다보던 그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그러한 표정의 변화는 두 연구원으로서는 처음 보는 것이었다.

노벰버가 재빨리 물었다.

“무슨 일이죠?”

“서 박사님 자료들을 분석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네? 어떤?”

“그리핀에는 원칙이 심어져 있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직까진 말이죠.”

“‘아직까진’이요?”

이번에는 모카카페가 물었다. 형사는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대답했다.

“첨부된 자료가 있는데, 한 번 보시죠?”

그는 팜탑을 벽면 스크린에 겨누었다. 그리고 가볍게 손가락으로 눌렀다. 다음 순간 화면에는 문서가 나타났다. 모두의 눈이 거기 집중되었다.

얼마쯤 자료를 읽던 노벰버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본능 영역에 넣을지, 아니면 학습 영역에 넣을지, 그게 고민이었다? 그래서 일단…….”

모카카페가 말을 받았다.

“몇 달에 걸쳐 그리핀의 행동을 테스트한 담에, 그 결과를 분석해서 결정하기로 한다. 그게 말이나 돼? 원칙이면 당연히 애드나에 넣어야지!”

모카카페는 금세 흥분한 목소리를 냈다. 노벰버가 일침을 가했다.

“네가 서 박사님보다 낫다는 얘기냐?”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박사님이 괜히 그런 고민을 했겠나? 뭔가 뜻이 있어서 그런 거지.”

“아무리 그렇다 해도…….”

“어쨌든 간에!”

형사가 끼어들어 두 사람의 설전을 중단시켰다. 연구원들의 시선이 모아지자 형사는 차근차근 말을 꺼냈다.

“그러니까 결국은, 그리핀이 인명을 살해한 행위는 원칙이 심어지지 않아서 그렇다는 뜻 아닙니까?”

“맞습니다.”

두 연구원이 입을 모아 대답했다.

“이런 경우는 물론 처음이죠?”

“당연한 일이죠!”

모카카페가 대답했다.

“기존의 로봇은 모두 롬에 3원칙을 갖고 있으니까요. 생산 과정에서, 행동 제어 파트를 조립할 때 맨 먼저 장착됩니다. 일단 그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 테스트 한 뒤에 기동 파트의 조립 작업에 들어가는 거죠. 사고를 철저히 방지하기 위해서 애초 조립 단계부터 그런 순서를 밟습니다. 그러니 그리핀은…….”

“그리핀은 양산 제품이 아니란 건 잊지 마.”

비난하듯 내뱉는 동료의 말을 노벰버가 잠재웠다. 모카카페는 금세 기가 죽어 웅얼거렸다.

“아무리 양산 제품이 아니라도…….”

“서 박사님이 그 정도를 염두에 두지 않았겠어? 아직 원칙은 심어 두지 않았지만 모니터는 쭉 하고 있었잖아.”

“그게 중단돼서 문제인 거지. 만약 모니터가 계속됐다면 사고가 없었겠지. 그런데 박사님이 갑자기…….”

모카카페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마무리를 지은 것은 미뇽이었다.

“갑자기 심장마비를 일으킬 줄은 모르셨겠죠. 주치의조차도 몰랐다고 하니까요.”

“결국 박사님이 미완의 작품을 남겨둔 채로 떠나시는 바람에, 그런 사고가 일어난 셈이지. 원칙이 심어졌어야 하는데.”

노벰버의 말에 문득 모카카페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박사님은, 어느 쪽으로 계획하고 있었을까? 이미 몇 달을 지켜봤다면 어느 정도 판단을 하고 있었을 텐데. 너라면 어떻게 생각해? 역시나 학습 쪽은 아니겠지? 아무래도 가장 중요한 거니까 본능 영역, 애드나에…….”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서 박사님도 그걸 알아내기 위해 몇 달이나 테스트를 해온 건데.”

“궁금한 게 있습니다.”

형사가 말했다. 거기 대답한 것은 모카카페였다.

“뭐가 말입니까?”

“서 박사님의 사망으로 모니터가 중단된 상태에서, 그리핀은 물론 통제가 전혀 없이 움직였겠죠? 그러니까 살인까지 저지른 것이고요.”

“물론입니다.”

노벰버가 대답했다.

“그렇다면, 서 박사님이 사망한 뒤에도 그리핀이 소녀를 찾아간 건, 물론 습관이 돼서 그런 것이겠죠? 당신들 표현을 빌리자면 ‘학습’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당연한 일이죠!”

노벰버의 뒤를 이어 모카카페가 대답했다.

잠시 침묵이 이어지다가 형사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원칙이 심어지지 않은 결과로…… 그저 자의지에 의해서…… 동물적인―본능적인?― 행동을 한 것이고요.”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제3원칙 말입니다.”

 

 

스스스스……!

위쪽에서 소리 죽인 기계의 소음이 들려왔다. 관개수로 옆으로 난 둑을 따라 걷던 그리핀은 발걸음을 멈추고 소리가 들려오는 쪽을 쳐다보았다. 경찰 소속의 브이톨 두 대가 저공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소리는 그 덕트팬에서 들려오는 것이었다.

무심히 지켜보던 그리핀은 다시 발걸음을 옮기려 했다. 그때 브이톨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는 브이 셋! 표적 발견! 표적 발견! 위치는…….”

그제야 상황을 인지한 그리핀은 발걸음을 재촉했다. 점점 속도가 빨라졌다. 브이톨은 방향을 바꾸어 달아나는 뇌봇을 따라붙었다. 그 거리가 점점 좁혀지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쯤 달렸을 때, 그리핀은 들을 수 있었다.

“여기는 알파 다섯! 표적 확인!”

저 앞쪽 수풀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비록 나지막하게 속삭이고 있었지만 고감도인 그리핀의 청각은 그 소리를 잡아챌 수 있었다.

시각을 열화상 모드로 바꾸었다. 붉은 빛의 덩어리 여러 개가 눈에 들어왔다. 수풀 속에 몸을 숨기고 있는 경찰 병력이 틀림없었다.

제자리에 선 채 잠시 지켜보던 그리핀은 이내 천천히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뭔가 이상한데?”

알파 다섯 대장은 나지막하게 혼잣말을 내뱉었다. 그 목소리는 거의 신음에 가까웠다. 미간은 잔뜩 좁혀져 있었다.

옆에 있는 대원이 그의 말을 받았다.

“분명히 우리가 잠복해 있다는 걸 눈치 챘을 텐데요?”

“말하면 잔소리지.”

“그런데 왜…….”

“확실히 조준이나 해.”

“네.”

대장의 지시에 대원은 다시 조준경에 집중했다. 커다란 중화기, 로봇 파괴 전용인 안티봇이었다. 양옆으로는 똑같은 중화기를 갖춘 대원들 여럿이 엎드려 다가오는 뇌봇을 겨냥하고 있었다. 모두가 잔뜩 긴장해 있었다.

대장이 무전기에 대고 나지막한 소리로 지시했다.

“모두 긴장을 늦추지 마라. 놈은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 이미 사람을 둘이나 죽인 살인마다. 조준을 하고 있다가, 내가…….”

문득 그의 말이 끊어졌다. 그러나 입은 천천히 벌어지고 있었다. 동시에 눈도 크게 벌어졌다.

표적은 천천히 걸어 나지막한 둔덕 위로 올라갔다. 불과 수십 미터 거리였다. 둔덕에 오른 뇌봇은 거기서 걸음을 멈추었다. 천천히 좌에서 우로 고개를 돌리는 것이, 잠복해 있는 경찰 병력을 파악하는 것 같았다.

대장은 자신도 모르게 숨을 죽이고는, 잔뜩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놈이 눈치 챘어. 아니, 이미 알고 있었겠지만.”

“어떻게 하실 겁니까?”

바로 옆의 대원이 조준경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물었다. 잠깐 생각에 잠겼던 대장은 무전기에 대고 말했다.

“여기는 알파 다섯. 사냥 준비는 끝났다.”

곧 회신이 있었다.

“여기는 오메가 제로. 지시가 있을 때까지 기다리도록 하라. 놈이 어떤 행동을 취할지 잠시 지켜보도록 한다. 이미 독 안에 든 쥐니까.”

“알았다.”

사실이 그랬다. 야수는 이미 여러 정의 안티봇 시야에 들어와 있었다. 머리 위에는 브이톨 두 대가 빙빙 돌아다니며 감시하고 있었다.

짧지만 긴장된 시간이 흘렀다. 모두가 뇌봇의 행동에 주목하고 있었다. 그러나 뇌봇은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그 자리에 얼어붙은 것처럼. 그러한 모습은 하나의 동상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렇게 얼마쯤 시간이 흘렀을 때였다.

문득 뇌봇의 얼굴에 변화가 일었다. 천천히 입술이 벌어지면서, 하얀 이빨들이 드러났다. 입술은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우워어!

한순간 야수는 크게 포효했다. 그 소리가 들판을 쩌렁쩌렁 울릴 정도였다. 다음 순간, 야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앞다리를 높이 쳐들었다. 그 자세가 매우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알파 다섯 대장은 관자놀이를 타고 흐르는 땀방울을 느낄 수 있었다. 당장이라도 질식할 것만 같은 순간이었다.

“놈은 너무 위험하다.”

그는 나지막하게 혼잣말을 내뱉었다. 이어 무전기를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짧게 명령했다.

“사격 개시!”

 

 

“참으로 그리핀스러운 결말이네.”

모카카페가 허망한 목소리를 냈다.

벽면의 스크린은 그저 파란색으로 가득했다. 그 장면만 본다면 대기 화면 정도로 생각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어디선가 들려오는 희미한 덕트팬 소음이 변화를 주었고, 여전히 영상이 재생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곧 그 파란 화면을 가로지르는 물체가 있었다. 경찰 브이톨이었다. 아래쪽에서 본 모습. 구름 한 점 없이 파란 하늘을 브이톨이 날아가고 있었다.

“모두 조심하도록 하라!”

가까이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었다. 그리고 발소리들. 다시 목소리.

“절대로 긴장을 늦추지 말고!”

파란 화면은 점점 어두워져 감청색으로 변해 갔다. 그 사이에도 발소리는 계속 다가왔다. 중얼거리는 목소리들도 끼어 있었다.

감청색의 화면은 더욱 어두워지면서 검게 변했다. 발소리도 점점 사그라졌다. 더 이상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저것이 야수의 최후였군요.”

겸허하게 내뱉는 목소리에 연구원들의 눈은 형사에게 돌아갔다. 연구원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미뇽은 허무한 목소리로 물었다.

“제3원칙이 입력돼 있었다면…… 저런 선택은 하지 않았겠죠?”

“물론이죠.”

“글쎄요?”

두 연구원의 대답이 엇갈렸다. 형사의 눈길은 노벰버를 향했다. 무슨 뜻이죠? 그 표정은 그렇게 묻고 있었다. 노벰버는 이내 대답했다.

“제3원칙, 로봇은 제1원칙과 제2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자신을 지켜야 한다. 그리핀에게는 아직 원칙이 입력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그래서 살인을…… 복수를 한 겁니다. 소녀의 복수를 말이죠. 그러나 경찰의 추격을 받자 스스로 죽음을 택했습니다. 살인 행위가 범죄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던 거죠. 굳이 원칙을 입력시키지 않았어도 말입니다.”

“그래서…….”

모카카페가 멍한 눈으로 동료를 바라보며 말끝을 흐렸다. 어느새 그의 손끝은 안경테를 긁어대고 있었다.

노벰버는 계속했다.

“어차피 몇 달에 걸친 학습으로 그 정도는 상식으로 알고 있었을 겁니다. 꼭 3원칙, 로봇공학의 원칙이 아니라 해도, 살인이 범죄라는 사실 정도는 잘 아는 겁니다. 그렇다면 그 처벌 방법도 알고 있었겠죠. 모든 인공지능 로봇은 호기심 기능이 기본적으로 심어져 있으니까요. 다만 로봇에 대한 처벌은 몰랐을 겁니다. 그런 전례가 없었으니까요. 그저 원칙이 존재할 뿐이죠. 어쩌면, 자신이 폐기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리핀의, 살인을 저지른 뒤의 행동을 본다면 꼭 그런 것 같지도 않습니다. 그저 태연하게 돌아다니고 있었으니까요.”

“그렇다면 마지막에 한 짓은…… 두 발로 벌떡 일어서서 크게 울부짖은 행동, 그건 왜 그랬을까?”

모카카페가 물었고 노벰버는 대답했다.

“그건 나도 모르지. 로봇의 정신세계는 창조자인 인간들도 완벽하게 알 수는 없으니까. 다만 갈등이 있었던 것은 분명해. 첫째, 자신을 가장 아껴 주었던 소녀가 죽었고, 자살했고, 둘째, 복수심에 살인을 저질렀으니까. 그때 만약 제3원칙만이 입력되어 있었다면? 그리핀은 스스로의 목숨을 유지하려 애썼을까?”

“글쎄?”

“이미 결과를 알고 있다면, 즉 자신이 처벌, 폐기될 거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혼란이 일어나겠지. 자신을 지켜야 하니까. 제1원칙과 제2원칙이 그에 앞서지만, 이미 저질러진 일이니 돌이킬 수도 없지. 그 상태에서 제3원칙을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방법이 없겠군요.”

미뇽이 넌지시 말했고 노벰버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죠. 그 때문에 그리핀의 심리는 무척 복잡했을 겁니다. 어차피 사람과 크게 다르지도 않으니까요. 후회…… 비슷한 감정도 생겨나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리핀에게는 원칙이 심어져 있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인간의 생명을 존중할 필요도 없고, 명령을 들을 필요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그리핀은 소녀를 위해 복수를 했습니다. 소녀에게 복종하고 충성하라는 원칙은 없지만, 소녀가 자신을 아껴 줬다는 사실만은 잘 알고 있었던 겁니다. 그 소녀의 마음에 부응…… 소녀의 마음이 전해진 거죠. 그렇듯 원칙은 없었어도 감정이라는 것은 생겨나 있었고, 그에 따라 행동한 겁니다. 어쨌든 우리는 그 당시 그리핀의 마음을 영원히 모를 수도 있지만, 확실한 것 하나는 있죠.”

“그게 뭔데?”

“그리핀이 심하게 갈등하고 고뇌했다는 거지.”

노벰버는 동료의 질문에 대답하고는 덧붙였다.

“그 결과가 죽음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것이었고.”

모두가 숙연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렇게 얼마간 침묵이 흘렀다.

문득 형사의 몸짓에 변화가 일어났다. 출입문을 향해 반쯤 돌아서더니, 연구원들에게 부탁하듯 말했다.

“재생한 기록은 잘 보관해 두시기 바랍니다.”

연구원들은 끄덕거리는 고갯짓으로 답했다.

형사는 거듭 다짐을 주었다.

“인공두뇌, 그리핀의 두뇌도 문제가 없도록 잘 유지해 주시고요.”

“물론이죠.”

이번에는 모카카페가 목소리를 내어 대답했다.

“그럼 전 가 보겠습니다. 두 분, 수고 많으셨습니다.”

“수고는 형사님이 했죠.”

모카카페가 답례하자 이내 형사는 등을 돌리고 출입문을 향해 터벅터벅 걸었다. 연구원들은 그저 멍하니 그의 뒷모습만을 바라볼 뿐이었다.

형사가 문 앞에 이르고, 자동문이 열렸을 때, 문득 노벰버가 목청을 높여 물었다.

“참! 이 사건에 대해서, 형사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형사는 슬쩍 뒤를 돌아보며 대답했다.

“보신 그대로입니다.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한 셈이죠.”

다시 발걸음을 떼려다가, 고개를 갸웃하더니 한마디 덧붙였다.

“또 하나, 야수는 소녀를 사랑했다는 점도 말이죠.”

 

 

구상: 2011.09.02. 새벽

시작: 2011.09.02.

완성: 2011.09.03.

최종 보강: 09.23.

by 뇌의가호 | 2011/09/26 16:50 | 뇌블 Noevel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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