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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여, 다시 한 번 - 4륜 장갑 지휘차량 지크프리트

* 이번 제목은 영화 <무기여 잘 있거라>를 패러디한 것이다.




新생산시대 이후 어느새 3년이란 세월이 후닥닥 지나갔다!

2009년 말부터 2010년 2월 사이에는 틈틈이 차량이나 항공기 디자인에 대한 글을 올렸다. 한편으로는 꾸준히 디자인에 매달렸는데 무려 8개월에 걸친 작업이었다. 그러다가 ‘디자인 강좌’를 한 직후 너무 지치고 진저리가 나서(크학학!) 당시 새로 작업하던 신개념 고기동 궤도식 강습차량(THiMAVe) ‘지클린데’는 명암 작업 막바지에서 중단하고 말았다. 강좌를 위해 이전에 완성했던 여러 작품의 작업 과정을 하나하나 스크린샷 하며 편집하는 작업은 디자인 자체보다 훨씬 뇌를 혹사했기 때문이다.

※ 고기동 궤도식 강습차량이란 바이크 형태를 한 소형 무한궤도 장갑차량으로, 영어로는 트래클(track + cycle), 독일어로는 케토레더라고 불리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후 디자인에서는 손을 떼고 있다가 그해 7월에 급히 다시 한 점을 작업하기는 했지만 말 그대로 ‘급히’ 한 것이라서 성의가 부족했다. 그저 욕심만 앞섰다고나 할까? 그나마 그 전년 여름부터 80점 정도를 디자인하며 몸에 밸 대로 밴 감각 덕분에 완성도는 높은 편이었다. 문제는 디자인 자체가 참신하지 않다는 것. 그리고 다시 손을 뗐다. 다른 할 일이 많았기에.

2013년 들어 모처럼 이글뇌스에 들러 이것저것 들춰 보다가 내가 디자인에 대해 연재한 글들을 읽게 되었다. 그동안 이 분야를 떠나 있었던 뇌가 다시금 꿈틀거렸다. 어린 시절부터 평생 관심을 가졌던 것이기에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곧 다시 관심을 갖게 된다. 결국 그 자리로 돌아오니 나는 역시나 우주유목민이다.

당시 내가 썼던 모든 글을 읽고 나자 흥이 났다. 다시 디자인 의욕이 생겨났다. 문제는 이미 3년이 지났는데 감각이 살아 있느냐 하는 것. 뭐든 손을 댔다 하면 집중적으로 매달리다가 손을 떼면 몇 년이고 관심을 두지 않는다. 플래시 애니메이션과 게임 제작도 마찬가지여서 예전에는 수십 점이나 만들었는데 이제는 거의 다 까먹어 버렸다. 하물며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작업하고 그만둔 디자인 작업이 가능할까?

하지만 일단 다시 시작하자 모든 감각이 그대로 되살아났다. 놀라운 일이었다. 그래서 옛 선현들은(?) 이런 말을 남긴 것이다.

“머리로만 기억하지 말고 몸으로 행하라. 머리로 기억한 것은 쉽게 잊어버리지만 몸에 밴 것은 잊지 않는다.”

맞는 말이다. 디자인 작업을 그만둔 지 3년이 지났지만, 내 손은 기억하고 있었다. 굳이 뇌를 굴리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작업을 행한다. 무의식의 힘이다. 이미 3년 전에도 이런 비유를 든 적이 있다.

“당신은 눈앞의 음식을 집어먹기 위해 일일이 뇌에서 계산을 하고 손에 명령을 내릴 필요가 없다. 그것은 자동으로 행해질 뿐이다.”

다만 작업 과정이 워낙 복잡하므로 예전의 작품을 참고하기는 했다.

그렇게 해서 새로 디자인한 작품이 4륜 장갑 지휘차량 지크프리트 “And/DnA”다.


 동기


2010년 초에 디자인을 중단하고 이후 여름부터는 다시 <이기적 유전자> 독중감을 쓰기 시작했다. 거기에 참고 또는 비교 삼아 ‘늘 들어가는’ 인간사에 그때는 아이들 세계의 생생하고 따끈따끈한 이야기를 다루었다.

동네 아이들과의 교류는 그 전년 여름에 아담한 동네 공원에서 운동을 재개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때 내게는 몇 가지 원칙이 있었다.

첫째, 아이들 눈높이에 맞추어 최대한 친절하고 다정하되 사사롭게 친해지지는 않는다. 둘째, 아이들 이름을 묻지도 않고, 내 신상에 대해서도 아무 것도 알려 주지 않는다. 꼭 기록할 만한 아이가 있으면 별명을 사용한다. 이미 초기부터 휴대폰 번호를 묻는 아이도 있었지만 절대로 알려 주지 않고 나도 묻지 않는다. 셋째, 어느 정도의 격식을 유지한다. 따라서 늘 사무적인 말투를 썼다. 아이들은 늘 나를 졸졸 따르며 이것저것 묻거나 내가 운동하는 틈틈이 조경 수풀의 거미들을 관찰하면 함께 했다. 그러나 나는 사무적인 태도를 고수했다.

그 이유는, 우주유목민인 나는 언제 또 떠날지 모르므로 매이지 않으려는 것이다. 이 블뇌그에서도, 아니 다른 모든 곳에서도 그렇게 하고 있듯이. 그나마 온라인 공간에서 알게 된 이들은 물리적 거리가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에 오히려 다시 만나는 일이 많다.

그런데 2010년 여름에 새로 나타난 패거리는 매우 역동적이고 거칠면서 한편으로는 끈끈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나를 이웃 아저씨가 아니라 일가친척처럼 대했고, 어느새 나도 녀석들에게 푹 빠져 버렸다. 녀석들은 ‘공부방’이라는 곳에 다녔는데 그때만 해도 그저 학원의 일종인 줄 알았다. 겨울이 깊어 더 이상 아이들을 만나지 못할 즈음에야 그 정체를 알았는데 지자체에서 관리하는 지역아동센터였다. 말하자면 부모가 바빠서 제대로 돌보지 못하거나 가정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이었는데, 공부방에서 저녁밥까지 주는 이유를 그제야 알아차렸다.

아이들이 어른의 애정을 독차지하기 위해 다투는 것은 가장 일상적인 일이다. 특히 핵가족 사회인 데다 부모 대다수가 맞벌이를 하는 요즘은 애정에 굶주려서 더욱 그런 듯하다. 공부방 패거리는 그 정도가 심하다 했더니 그런 이유가 있었다. 일반적인 아이들보다 더욱 어른의 애정을 갈구했던 것이다.

일반적으로 서로 다투는 것은 저학년 사내아이들이다. 아무래도 상대적으로 온화하고 상호 친화적이며 감성 발달이 빠른 여아들은 그런 일이 별로 없다. 그런데 고학년이 되면 반대로 여학생들끼리 보이지 않는 경쟁을 벌이게 된다. 소년들은 사춘기가 가까워지면 성인과 멀어진다. 자기들끼리 어울리며 세상을 개척하고 기득권에 도전하는 동물적 본능 때문이다. 반대로 소녀들은 가정을 꾸릴 준비를 하므로 보다 사회성이 강해지고 인간관계를 중시한다. (대화가 통하는) 어른들과 교류하며 세상을 배우고 싶어한다. 그러다 보니 절친한 사이가 아니라면 서로 질투가 일어나는데 여성 특성상 사내들처럼 노골적이지 않다.

사극의 한 장면을 떠올리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대문 안의 규수와 문 밖의 도령이 대화를 하는데, 직접 대화를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몸종에게 넌지시 이르는 식으로 대화가 오간다. 그렇듯 소녀들은 서로가 직접 대결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교류하고 싶은 어른에게 내심을 털어놓지도 않은 채 정말 ‘유교적인 느낌이 가득한’ 매우 우회적인 행동을 보인다. 요즘 기준으로, 대체로 3~4학년쯤 되면 그런 특성이 서서히 나타난다.

그 바람에 중간에 끼인 나는 애를 먹는다. 꼬마들끼리 아옹다옹 다투는 거야 오래 가지 못하고 다음날쯤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서로 잘 어울려 놀지만 소녀들은 그렇지 않다. 어느 한쪽을 외면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모두를 내칠 수도 없으니 문제다. 한 번 삐쳐 버리면 참 곤란해지니까. 동네에서 거리에서 종종 마주치는 사이인데, 아이가, 특히 소녀가 어른을 외면하고 지나가면 껄끄러워진다.

그러기에 모두가 잘 어울려 놀기를 바라지만 그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차라리 티격태격 다투는 꼬마들은 나중에는 패거리를 초월해 모두가 친구가 될 수 있지만 이미 ‘생물학적’ 경쟁 상태에 들어간 소녀들은 그럴 수가 없다. 꼭 소녀들뿐 아니라 공부방 패거리들은 사내아이들도 그런 특성이 매우 강했다.

예전부터 아이들을 지극히 사랑했던 나는 그런 문제 때문에 고민하다가 결국 그 스토리를 당시 계속 설계하던 장편소설에 끼워 넣기로 했다. 사실 아이들을 등장시키기로 한 것은 그 전년에 처음 동네 꼬마들과 친해질 때부터 구상한 일이었다. 미래의 내전을 소재로 한 소설에 아이들이 등장하면 그만큼 현실감과 함께 인간적 느낌도 강해진다. 그런데 서로가 암투하는 소녀들 얘기로 더욱 업그레이드 시키자 그만큼 더 복잡해지고 단순히 아이들 얘기가 아니라 인간 세상, 나아가 동물 세계의 축소판처럼 되어 버렸다. 즉 아이들, 소녀들은 내전이라는 상황을 비춰 주는 거울인 것이다.

그 중 두 소녀를 작품에 영입(!)하자 당연히 그 중심에 서는 인물이 필요해졌다. 내전 소설이니 당연히 군인이어야 한다. 그는 정부군과 반군 어느 편도 아니다. 정부군 수석 조종사였지만 사고로 반군 지역에 추락해 부상을 입고, 그곳 주민 가족의 도움을 받아 겨우 회복한 뒤에 세상을 등지고 산다. 비록 빈민이기는 하지만 그가 아는 그 누구보다도 인간적이었기에 오랜 세월 가지고 있던 군인정신을 버린 것이다.

이러한 설정은 당시 내 상황과도 맞아떨어진다. 아이들과 친하게 지내면서도 늘 선을 그었는데, 오히려 불우한 아이들이 그 벽을 깨뜨리고 인간적 애정을 갖게 만들었다.

처음에 정부군과 반군의 구도로 시작한 이 작품은 3년 전에 디자인 관련 연재에서도 말했듯이 제3세력이 추가되었다. 반군의 창궐을 묵과할 수 없었던 애국적인(?) 집단이지만 누군가에게서 사주를 받은 구사대 성격도 있다. 그 중추인물을 구상하기는 했지만 특별한 개성은 없었다. 얼마쯤 차이는 있지만 반군 지도자의 거울상이라고나 할까? 다만 3파전으로 만들기 위해 그 자는 권력 야욕을 가지고 있어 정부와 의견이 엇갈리자 끝내 등을 진 정도로 설정했다. 3년 전에 J H Lee 님의 의견으로 디자인한 신개념 트래클 카산드라도 그 제3세력에서 사용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아이들 때문에 새로 창조한 인물은 그 중간에 낀 세력에 딱 어울렸다. 사실 나 자신의 사상을 얼마쯤 투영하기도 했다. 나는 전방 지역에서 멸공을 부르짖으며 준(俊, semi) 군인 수준의 교련 교육을 받으며 자라고 북한 놈들은 모조리 쓸어 버려야 한다는 사고를 갖고 있었다. 이미 초등학교 시절부터 다음과 같은 노래들을 배우고 자랐으니까.

― 쳐부수자, 공산당. 몇 백만이냐~♪

― 원수의 하나까지 쳐서 무찔러~♪ (6.25 기념일 노래)

― 원수야, 오랑캐야~ 압록강 건너서 어서 빨리 물러가라~♪ (북진가)

북한 놈들은 모두 철저한 사상 교육을 받고, 삼호 감시제니 뭐니 해서 모두가 서로 감시하는 인간성 말살의 사회라고 배웠다. (영화 <이퀼리브리엄>에서 보여 주는 전체주의 사회처럼) 아이가 부모를 감시하고 주저 없이 고발할 정도다. 사람을 처형할 때에는 기둥에 묶은 뒤에 어린아이들을 시켜 삽으로 ‘찍어’ 죽인다. 힘없는 아이들이 사람을 죽이려면 몇 시간 동안 찍어야 하니 그보다 고통스러운 죽음은 없다. 죽은 사람은 사과나무 밑에 파묻어 비료가 되게 한다. “사람 피를 마시며 자란 사과는 무척 맛있다고 한다.” 이렇게 배웠다.

그러니 인간이 아닌 북한 ‘것’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쓸어 없애 버려야 하는 것이다.

군 시절에는 멸공/보안 포스터에서 그 과감하고 파격적인 발상으로 상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내 근본적 사고는 인간을 해치자는 것이 아니다. 적, 괴수 집단을 제거, 척결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적이 누구고 괴수 집단이 누구지? 2009년에 독중감 연재 첫 머리에서 이미 언급한 바 있다. 저명한 천체생물학자 칼 세이건의 말처럼, “충성심의 범주를 넓혀 가자.” 무지하면, 혹은 편견을 가지면 누구나 적으로 보이거나 혹은 반대로 친구로 착각할 수도 있다. 새로 등장시킨 인물은 그런 내 사고를 대변한다.

미래 세계에서는 거의 누구나 본명을 쓰지 않고 공식적으로 별명을 사용한다. 이미 인터넷 시대 들어서는 온라인 공간에서 본명을 밝히지 않는 것이 보편적이지만 온갖 사이버 범죄가 발생하면서 특정 사이트에 가입할 때도 예전에 비해 개인정보를 훨씬 적게 기입하게 되었다. 전 세계적인 전쟁으로 황폐하고 인간성이 피폐해진 미래 사회에서는 의심과 반목이 더욱 심하고, 오프라인 세상에서도 자기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 아이들까지 모두가 별명을 사용한다. 조직사회에서는 코드네임이 존재한다.

새로 등장한 인물의 코드네임은 ‘노브레인’인데 ‘No Brain’이 아니라 ‘Nov Rain’이다. 이 명칭 역시 아이들과의 교류 때문에 탄생한 것이다. 2009년 11월에 만든 것인데 2010년에는 또 다른 아이들 패거리 때문에 새로이 창조한 인물의 코드네임으로 쓰게 되었다.

결국 노브레인은 제3세력의 새로운 핵심 인물이 되는데 아무래도 차별화된(돋보이는) 전투 차량이 필요하다. 그렇게 해서 새로 디자인한 차량이 지크프리트이다.


 먼저 트래클 지클린데 얘기부터 


나는 궤도차량 중에서 기동륜(무한궤도를 굴려 주는 톱니바퀴)이 앞쪽에 있고 궤도 위쪽 부분이 축 늘어지는 형태에 매력을 느낀다고 3년 전 당시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그런데 몇몇 분이 장도 문제를 지적했고 J H Lee 님은 기동륜이 뒤쪽에 있는 편이 구동력이 더 나을 것이라는 의견을 주었다. 그 의견을 수렴하여 궤도가 늘어지기는커녕 오히려 위쪽으로 팽팽하게 디자인한 신개념 트래클이 카산드라이다. 카산드라는 운전자가 뒤로 몸을 젖히고 타는 아메리칸 초퍼 스타일 바이크에서 형태를 따왔다.

그런데 카산드라를 디자인하면서 그 앞뒤를 바꾸어 생각해 보니 이것이야말로 애초 내가 추구했던 ‘바이크 형태의 궤도차량’에 가장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얘기는 카산드라 디자인 후기에서 언급한 바 있다.

2010년 1월 28일, 카산드라 디자인을 마치고 다음날까지 디자인 후기를 썼다. 그리고 바로 새로운 트래클 디자인에 들어갔는데 그 명칭은 지클린데로 정했다. 지클린데라는 이름은 북유럽 신화에서 가장 유명한 영웅인 지크프리트의 어머니에게서 따왔다. 북유럽 신화는 북유럽뿐 아니라 독일 등 게르만 민족으로 구성된 국가들 전체에 퍼져 있다. 19세기 후반 독일의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는 그 신화를 오페라로 옮겨 <니벨룽겐의 반지>를 완성했다. 민족의 규합과 부흥을 목적으로 작곡했다고 하는데, 그러니 이 독일산으로 되어 있는 전투차량의 명칭에도 어울린다.

그런데 지클린데는 완성되지 못했다. 아니, 드로잉 작업은 끝났으니 형태 자체는 완성한 셈이다. 문제는 포토샵에서 ‘칠’ 작업을 하다가 대대적인(!) 디자인 강좌를 하느라 중단하고는 마냥 방치했다는 것. 당시 질감 작업은 마치고 입체감 작업도 전반적인 명암 부여는 마쳤다. 남은 것은 더욱 피곤한 세부(특히 바퀴) 명암 및 광택 작업인데, 결국 그것은 마냥 보류하고 내버려둔 것이다.

그러다가 이번에 모처럼 디자인에 다시 의욕이 생겨 새로운 전투 차량 지크프리트를 완성한 뒤 바로 후속 작업에 들어가서 마무리를 지었다. 말이 마무리지, 역시 궤도차량 작업은 손이 매우 많이 간다. 지크프리트의 측면도와 정면도 칠 작업은 각각 하루 정도가 걸렸다. 흙탕물 등 온갖 질감 작업, 그리고 입체감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3년 전보다 더욱 세심하게 작업했음에도 하루면 충분했다. 그런데 궤도차량인 지클린데는 ‘남은’ 얼마쯤의 작업만도 거의 하루가 걸렸다. 하긴 3년 전에 카산드라를 칠할 때는 꼬박 사흘이 걸렸으니까.

카산드라가 그랬듯이 지클린데도 질감 작업은 거의 하지 않았다. 차체나 스커트 같은 장갑판 부분에 재질 느낌을 부여했을 뿐인데 그것도 이미 만들어 둔 것을 복사해서 쓰면 간단히 끝난다. 녹, 먼지, 흙탕물 등은 전혀 넣지 않았는데, 그에 대해서는 예전에 이미 말했다. 카산드라처럼 참신한 형태의 차량은 실전에 투입한 느낌(웨더링 등)을 살리기보다는 디자인 자체를 보여 주는 것을 중시한다고. 즉 전시장에 놓인 차량인 셈이라고 당시 비유했었다. 지클린데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칠(주로 입체감) 작업에만 며칠씩 걸리는데 그만큼 복잡하기 때문이다.



지클린데의 두 얼굴(?)
왼쪽은 2010년 2월 초에 작업을 중단했을 때의 상태이고 오른쪽은 3년만에 마무리한 모습이다. 바퀴에 명암을 부여하고 전체적으로 광택 효과를 살렸을 뿐인데 마치 화장을 안 한 쌩얼(민낯!)과 분장 칠을 한 정도의 차이가 난다. 사실 왼쪽 그림은 쌩얼은커녕 기초화장부터 온갖 효과가 들어간 상태이다. 다만 마스카라와 콧날 강조를 아직 못했다고나 할까?
(삽입된 모든 그림은 ‘콕’ 찍으면 본래 크기로 볼 수 있습니다.)


 독일 전차군단, 빅 캣, 그리고 지크프리트  


이미 말했듯이 지크프리트는 복잡한 아이들 사이의 질시와 역학 관계에서 탄생한 것이다. 애초에는 비교적 유순하고 밋밋한 주변 아이들을 객관적으로 지켜보면서 내전 소설에 아이들을 등장시키기로 했지만, 새로 등장한 공부방 패거리는 매우 거칠고 감정적이면서 인간적, 동물적 느낌이 강했다. 그에 따라 나는 객관적 관찰자에서 벗어나 아이들 사이에 흐르는 강한 기류에 휘말렸고 녀석들과 희로애락의 감정을 공유했다. 나와 멀어질까 두려워하는 아이가 몇몇 있었는데 그만큼 내가 부모의 빈자리를 채워 주기를 바란 것이다.

그렇게 해서 애초 작품에 넣으려던 아이들도 얼마쯤 교체되었고, 작품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더욱 커졌고, 그에 따라 나를 모델로 한 새로운 인물도 추가되었다. 그가 타고 다니는 지휘 차량이 지크프리트이다.

사실 애초에는 나를 모델로 한 인물이 따로 있었다. 이 작품은 주인공 급의 인물만도 10명이 넘는다. 또한 동료 등 그 주변 인물까지 합치면 훨씬 많다. 그 많은 개성을 창조하려면 영화 등에서 등장인물을 참고하거나, 혹은 대인 교류 폭이 넓다면 주변 인물에서 따오는 방법이 있다.

그 중 정부군 장갑순찰대 소속의 병사가 나를 모델로 한 것이다. 나는 장갑차 조종수였으니까. 그런데 전역한 지 오래되고 보다 넓은 세상에서 보다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사고와 감성, 관심사 등에 변화도 생기고 연륜도 쌓이다 보니 아무래도 팔팔하고 도발적인 그 인물과는 다소 격이 있었다. 10년만 젊었어도! (크학학!) 그러다 뒤늦게 합류한 새로운 등장인물 노브레인에 내 내면이 투사되었다.

그런데 (2010년 7월 당시) 새로 디자인한 장갑차량 지크프리트는 너무 개성이 부족했다. 전년 여름부터 워낙 많은 디자인을 했으니 기술적으로는 꽤 숙련되었지만 디자인 자체에 한계가 보였다. 당시 새로운 아이들 패거리와 점점 친해지면서 아직 인간 세상에 조련되지 않은 그 싱싱하고 순수한 야성의 감성을 받아들이느라 자신에게 큰 변화가 일고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모처럼 디자인한 지크프리트에는 예술은 없고 기술만 있는 셈이었다.


이것이 오리지널 지크프리트이다. 일반적인 현대 전투차량에 비하면 특이해 보이지만 나의 많은 창조물 중에서는 전혀 그렇지 못하다. 아래의 두 차량과 비교해 볼 것. 둘 다 2009년 11월에 디자인한 것으로, 전자는 정부군 소속의 ‘타이거비틀’이고 후자는 반군 소속의 “The Colonel”이다.
지크프리트는 부속물 외곽선이나 분할선이 희미한 데 비해 아래쪽 둘은 매우 뚜렷한데, 제4기부터는 단순한 일러스트가 아닌 실물 비슷하게 보이도록 선의 색을 너무 두드러지지 않게 했기 때문이다. 그 이전에는 검정(RGB=000000)이었다가 짙은 회색(292929)으로 바꾸었다. 보다 희미한 선은 좀 더 밝은 회색(444444)로 처리했다.



오리지널 지크프리트는 그 형태가 요즘 기준으로 보면 특이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내가 무척 좋아하는 구축전차(전차사냥꾼) 형태이기 때문이다. 대전차 미사일이 발달한 뒤로 구축전차 개념은 사라졌지만 과거에는 흔한 것이었다. 2차 대전 당시에 독일을 필두로 하여 주로 소련과 미국 등에서 발달했다.

그 중 미국의 구축전차는 M-18이나 M-36 등처럼 ‘뚜껑 열린’ 회전 포탑을 탑재한 형태인데, 그만큼 주포가 타국 구축전차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을 수밖에 없다. 또한 보병들의 기습에도 취약할 것이다. 그에 비해 독일이나 소련의 구축전차는 차체와 결합된 널찍한 고정식 포탑에 구경이 크고 포신이 매우 긴 대전차포를 탑재했다. 2010년 지크프리트의 차체가 바로 그런 형태를 하고 있다. 그런데 지크프리트 하나만 그렇다면 나름 개성이 있겠지만 이미 그보다 앞서 디자인한 정부군 소속의 타이거비틀과 반군의 “The Colonel”도 그런 형태이니 참신하지 못한 것이다. 또한 앞의 두 차량은 섬세한 선의 흐름이 개성 있고, 특히 ‘코널’은 차체에 반응장갑을 더덕더덕 붙여서 보다 강력해 보인다. 그에 비해 지크프리트는 윤곽도 그리 아름답지 못하고 개성도 없다. 디자인을 마친 직후에 봐도 전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질감과 입체감 작업에 있어서는 앞의 두 차량보다 훨씬 공이 많이 들어갔지만 근본 형태가 매력적이지 못하다.

미국의 구축전차는 주포도 작은 편에 포탑 뚜껑도 없어서 원거리에서 쏘는 저격수 성격을 띠어야 했지만 나중에는 비로소 구축전차다운 전차를 개발하는데 그것이 T-95이다. 거의 괴물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투박하게 생겼지만 실용화되지는 못했다. T-95는 독일의 구축전차를 닮아 있었다.

전에도 그랬듯이, 디자인 얘기를 과학 밸리에 끼워 넣으려면(크학학!) 또 그와 관련한 얘기가 들어가야 한다. 즉 군사학(military science)이 그것이다. 이제 그 얘기를 해 보자.

2차 대전 당시 전차전 경험이 숱하게 쌓인 독일에서 개발한 궁극의 구축전차 형태는 타이거비틀과 흡사하고, 소련도 그 영향을 받았다. 애초에는 독일도 구축전차가 그런 형태가 아니었다. 구축전차를 영어로는 ‘tank destroyer’라고 부르지만 독일에서는 ‘Panzerjäger’(판처예거) 또는 ‘Jagdpanzer’(야크트판처)라고 부른다. 말 그대로 ‘전차사냥꾼’이란 뜻이다. 대전 초기만 해도 각국의 전차들은 매우 작은 경전차들이었다. 구축전차 역시 작았고 뚜껑도 없었다.

어떤 이의 의견에 의하면 판처예거는 ‘전차 저격수’이고 야크트판처는 중장갑을 갖춘 전차사냥꾼이라고 한다. 초기에 쓰였던 판처예거는 경량 차체에 비교적 큰 대전차포를 탑재했는데 장갑판도 얇고 위쪽이 트여 있어 근접전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그즈음 독일에서는 신개념의 장갑 전투차량을 개발했는데 그것이 강습포이다. 독일어로 슈투름게쉬츠(Sturmgeschütz)이고 영어로는 ‘assault gun’이다. 강습포는 포탑과 하나로 결합된 납작한 차체에 장갑을 강화해 적진을 돌파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제1차 대전 당시 독일과 연합군 양측이 기나긴 참호를 겹겹이 구축하고 땅따먹기 식 전투를 하는 양상을 타개하기 위해 처음 전차가 등장했으니 강습포는 그 연장선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강습포는 전차보다 구조도 단순한 데다 더 자세가 낮고 튼튼해서 온갖 전선에서 사용되었고, 보다 강한 주포를 장비하면 대전차전에서도 유용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주포는 더욱 구경이 커지면서 포신도 길어졌고, 이후 진정한 전차사냥꾼이 등장한다. 4호 전차의 차대를 이용한 구축전차 ‘랑’(Lang)이나 5호 구축전차 ‘야크트판터’(JagdPanther, 사냥꾼 표범)가 그것이다. 특히 야크트판터는 2차 대전에 있어 최고의 구축전차로 평가받고 있다. 타이거비틀이나 ‘코널’이 바로 그런 형태를 하고 있다.

※ 야크트판터는 흔히 야크트판처 형식으로 알려져 있지만 독일 군 당국의 공식 자료에는 판처예거로 표기되어 있다 하니 이 또한 헷갈린다. 어쨌든 일반적으로 대전 후기의 전차사냥꾼은 ‘Jagdpanzer’로 표기되니 그 사람의 분류가 크게 틀리지는 않는 듯하다.

독일과 숱한 전차전을 치렀던 소련도 그 영향을 받아 당시 주력전차였던 T-34의 차체를 이용해 강습포나 구축전차를 개발했다. SU-85나 SU-100은 장포신의 구축전차로, 그 명칭에 들어간 숫자가 바로 주포의 구경(밀리미터)이다. (당시 전차들 주포의 표준은 75~76밀리미터였다.) 보다 구경이 크고 대신 포신이 매우 짧은 SU-122는 강습포이다. 그밖에 보다 무거운 전차들의 차대를 이용한 SU-152, ISU-152 등도 개발되었다.

1944년 6월의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후 서방측 연합군은 본격적으로 독일군과 전면전을 치러야 했다. 당시 독일은 소련과의 숱한 전투에서 피해가 극심했던 데다 북아프리카 전선, 이어 이탈리아 전선에서 계속 패퇴하여 이미 패전 기색을 보였다. 그럼에도 연합군의 진격은 순탄치 못했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6호 전차 ‘티거'(Tiger)의 존재였다.

동부전선의 소련군도 티거 때문에 고전했지만 물량으로 만회했다. 그러나 서방 연합군은 그렇지 못했다. 동부전선처럼 너른 평지에서 전투를 벌이는 것이 아니라 ‘길을 따라’ 진격해야 했기 때문인데, 곳곳에 매복한 독일군의 기습을 받는가 하면 장판교에서 배짱으로 승부한 삼국지의 장비처럼 떡 버티고 기다리는 티거가 골칫거리였다. 티거가 장비한 88밀리미터 대전차포는 대공포를 개량한 것으로, 대공포는 발사 속도가 매우 높기 때문에 대전차포로도 가장 훌륭했던 것이다. 북아프리카 전선의 영국군은 88밀리미터 대전차포라면 치를 떨었다고 한다.

또한 티거는 당시로서는 매우 두꺼운 전면 장갑(100밀리미터, 포방패 100밀리미터 추가)을 가지고 있어 미군의 주력전차인 M4 셔먼의 주포로는 관통하기가 힘들었다. 그에 비해 미군 전차는 티거의 주포를 감당할 수가 없었다. 한마디로 호랑이의 밥인 셈이었다. 따라서 미군 사령부는 “타이거와 대치한 전차부대는 후퇴해도 처벌하지 않는다”는 지침까지 내세웠다고 한다. 승산도 없이 괜한 소모전을 벌이고 인명 피해를 입을 필요가 없다는 뜻인데, 늘 ‘인민’을 강조하면서도 인명을 소모품으로 여겼던 소련과의 근본적 차이다.

※ 참고로 소련은 스탈린이 집권하면서 수천만 명을 숙청했다. 당시의 대한민국(사실은 일제 치하의 한민족) 인구만큼을 없앤 셈이다. 마찬가지로 중공의 마오쩌둥도 1950년대 문화대혁명 당시 4천만 명을 학살했는데, 비공식 집계로는 7천만에 이른다고 한다. 당시 한반도, 즉 남북한 인구보다 더 많은 수를 죽인 셈이다.

그렇게 해서 타이거라는 이름은 대전 후까지도 전설이 되어 미군 사이에 계속 회자되었다. 2차 대전의 유럽 전선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한국에서도 훗날 갑자기 타이거가 꽤 유명해졌는데, ‘석양의 무법자’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주연한 전쟁오락영화 <전략대작전>(원제: Kelly's Heroes)의 영향이었다. 나는 말로만 전해 들었지만 그 영화에는 이런 대사가 있다고 한다.

“타이거를 정면에서 깨뜨리려면 50발은 맞혀야 하고 옆에서는 20발, 뒤에서는 10발을 명중시켜야 한다.”

후일 자료를 살펴보니 사실과는 거리가 있다. 티거의 장갑은 측면이나 후면이나 같은 80밀리미터이다.

영화 얘기가 나온 김에 잠시 그쪽으로 새자.

이 영화는 2000년대 들어 텔레비전에서 잠깐 본 적 있다. 알고 보니 흔한 스파게티 웨스턴 스타일의 도둑놈이 주인공인 오락영화인데 웬 제목이 <전략대작전>이지? 아무래도 보수적인 유교적 전통이 있고, 왕정에서 식민지를 거쳐 겨우 해방된 상태로 동족상잔 전쟁까지 치르고 장기적인 독재 정권 아래 살아온 매우 경직된 한국인들 정서에는 저런 제목이 잘 먹혔을 것이다. B급 오락 전쟁영화들도 제목이 늘 그런 식이었다. <The Dirty Bastards>라는 영화도 범죄를 짓고 탈영한 미군 병사들이 주인공인 오락영화인데 국내 개봉 제명은 거창하게도 <V2 폭파대작전>으로 둔갑해 있었다.

※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니 <석양의 무법자>처럼 미국인을 주인공으로 이탈리아에서 제작된 이른바 ‘스파게티 워무비’라 원제는 이탈리아어로 되어 있다. 또한 이번에 알고 보니 영어 제목도 <The Inglorious Bastards>로 의역하자면 ‘쪽팔리는 새끼들’쯤 되는데 간혹 <The Dirty Bastards>로도 쓰인 듯하다. <V2 폭파대작전>이라는 국내 개봉 제명과 매치가 되는가? 원제는 영화 내용을 잘 함축하고 있지만 국내 제목은 과대 포장인 셈이다.

더욱 경직된 일본의 영향도 있었다. 예로 전쟁영화의 최고 걸작 중 하나로 꼽히는 <철십자훈장>은 90년대쯤부터는 늘 원제(Cross of Iron) 그대로 번역해서 소개된다. 아마 텔레비전 방영 제목의 영향 덕일 것이다. 그런데 처음 개봉되던 당시의 제목은 <17인의 푸로펫쇼날>이었다. 이건 뭐, 전쟁을 성찰하는 영화 내용과는 전혀 관계없이 특공대 스타일 오락영화 제목이 되어 버렸는데,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빡빡머리 배우 율 브리너를 ‘더욱’ 유명하게 만든 <황야의 7인>은 일본의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7인의 사무라이>를 서부극으로 만든 것이다. ‘**인의 **’ 식의 표기는 한국어 어법에서 벗어난다고 하지만 이미 너무 유명해져 버렸다. 차라리 <황야의 7인>은 거기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7인의 사무라이>의 영향인지는 모르겠지만, 혹은 일본 개봉 제목을 다시 번역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후 그런 제목들이 많아졌다. <9인의 무뢰한>, <11인의 카우보이>, <3인의 협객> 등등. 끝내는 ‘17인’까지 갔는데 나는 <철십자훈장>을 보고 또 보면서 주인공을 포함한 동료들(소대원) 숫자가 정말 17명인지 세어 보려고 애썼다. 하지만 전원(?)을 한 화면에 보여 준 적이 없어 결국 실패했다. 주요 인물 외에는 얼굴도 알기 어려웠다. (아마 <17인의 사자들>이라는 할리우드 전쟁영화 제목을 슬쩍 흉내 낸 듯하다.)

그런데 갑자기 왜 ‘**인의 **’을 과거의 경직된 한국인 정서에 연결시키지? 일본 제명 때문에 나온 말이다. <철십자훈장>의 일본 제명은 <戰爭の はらわた>인데, ‘전쟁의 근성’ 정도의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이 일본식 제명이 한국 책자에서는 <전쟁의 근본정신>으로 번역되었다.) 철십자훈장이라는 상징물 하나로 통치자의 헛된 야욕과 애꿎은 인명의 피해, 그리고 갈 곳을 잃고 전투에만 매달리는 주인공 인물과 훈장을 타기 위해서는 추악한 짓도 서슴지 않는 장교, 나치당 등의 구도를 보여 주는 비극적이면서도 인간적인 영화이다. 그런데 웬 저런 제목으로 둔갑한 거지? 경직되어 있던 당시의 일본이나 한국에는 그런 ‘거창한’ 번안 제목이 꽤 많았다.

액션 영화 제목에는 ‘지옥’이나 ‘죽음’, ‘악마’ 등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단어도 흔히 쓰였는데 역시 일본 영향인 듯하다.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제목으로는 <지옥의 사자들>, <지옥의 결사대>, <지옥의 특전대> 등이 있는데 후자는 원제가 <Wild Geese>로 이른바 “The old friend”들로 구성된 용병 특공대의 암호명에서 비롯된 것이다. 요즘 같으면 그냥 <와일드 기스>로 표기할 것이다. 영화 내용을 보면 지옥의 특전대라고 할 것도 없고 은퇴했던 노병들이 다시 뭉쳐 작전을 펼치니 비교적 경쾌하고 우스꽝스러운 분위기이다. 진 해크먼 주연에 <람보 2>와 비슷한 줄거리를 가진 80년대 영화 <지옥의 7인>은 원제가 <Uncommon Valor>였다. (실제로 그 감독인 테드 코체프는 람보 1편의 감독이었다.)

당시 그런 자극적인 제목을 내세우는 영화 수입업자들을 지탄하던 나는 ‘천당의 결사대’, ‘예수의 특공대’ 식으로 비꼬기도 했다. 민요 가사처럼 “짜증은 내어서 무엇하나~” 풍자의 기능이 그것 아닌가. 즐기는 가운데 핵심을 꼬집어 비판하는 것.

다시 타이거 얘기로 돌아가자.

그러나 보다 강한 전차가 있었으니 바로 ‘킹타이거’, 정식 명칭은 6호 전차 B형, 별칭은 티거2, 일명 ‘쾨니히스티거’이다. 원조 티거인 티거1은 유명한 88밀리미터 대전차포를 탑재했다고는 하지만 포신을 얼마쯤 짧게 한(구경장 56) 버전이다. 그에 비해 티거2는 진정한 88밀리미터 대전차포(구경장 71)를 장비하여 그 파괴력이 더욱 강했고, 장갑도 더 두꺼워서 포탑 정면이 180밀리미터에 포방패 100밀리미터 추가, 차체 정면이 150밀리미터였다. 다만 대전 말기에 개발되어 대량으로 생산되지 못했고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연료 등 보급의 부족이었다. 총 489대가 생산되었는데 그 위력이 일당백이라 할 수 있으니 충분히 가용만 되었어도 훨씬 나았을 것이다.

미군은 이런 독일의 중전차들을 ‘캣’이라고 불렀는데 고양잇과라는 뜻이다. 독일은 장갑차량에 고양잇과 동물의 이름을 붙이는 것을 즐겼(?)다. 전에도 언급했던, 경전차인 2호 전차의 장갑을 강화한 룩스(Luchs; Lynx, 살쾡이, 스라소니)는 그 조그만 차체에 어울리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스라소니는 유럽대륙에서 가장 큰 고양잇과 동물이다. 5호 전차 판터(Panther)는 표범이라는 뜻이다. 8륜 장갑차에는 푸마라는 이름을 가진 것도 있었다. 미국 해군 전투기 중에서는 그루먼 사의 기종들은 고양잇과 이름이 붙었는데 와일드캣, 헬캣, 그리고 지금까지 그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는 F-14 톰캣 등이 유명하다.

대전 후에도 구축전차의 개념은 지속되었다. 미국은 괴물 같은 T-95를 개발했지만 실전 부대에 배치되지는 못했고, 패전국 독일(서독)은 동서 냉전 시대에 다시 무장을 하면서 처음에는 미국산 전차를 사용하다가 나중에는 자체적으로 전차를 개발했는데, ‘또’ 새로운 구축전차를 탄생시켰으니 그것이 야구아르(Jaguar. 철자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재규어를 뜻한다.)이다. 역시 고양잇과다.

내가 이 야구아르의 존재를 처음 안 것은 어린 시절에 한창 싸구려 국산 전차 모형을 만들던 때였다. 당시 전차는 합동과학이 꽉 잡고 있었는데 주로 1/48 규격이었다. 국산에서는 아직 (세계적으로 가장 표준인) 1/35 규격이 생산되기 전이었다. ‘물론’ 일제를 베낀 것으로, 상자 일러스트도 똑같다. 그런데 상자에 표기된 그 명칭이 기가 막힌다. ‘캐논 전차’, 이거이 뭐지?

그 철자는 ‘Kanone’인데, 몇 년 뒤에 알고 보니 영어의 ‘cannon’, 즉 ‘대포’를 뜻하는 독일어였다. 그럼 전차 이름이 ‘대포’란 말인가? 이 무슨 우스꽝스러운 이름인가. 더욱이 재치 있고 감각적인 명칭을 잘 붙이는 독일에서.

재치라고 말한 김에 잠시 열거해 보자. 4호 구축전차 ‘랑’(Lang)은 영어의 ‘Long’과 같은 뜻으로, 차체에 비해 주포가 매우 길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구경 75밀리미터에 구경장이 70인데 그 이전에는 48이 가장 길었다. 4호 전차 차대에 그 유명한 88밀리미터 대전차포를 탑재한 대전차 자주포 나스호른(Nashorn)은 코뿔소라는 뜻인데 호르니셰(Hornisse, 말벌)이라는 별칭도 있다. 4호 차대에 20밀리미터 4련장 고사포를 탑재한 대공전차 비르벨빈트(Wirbelwind)는 회오리바람이란 뜻이고, 37밀리미터 고사포를 탑재한 오스트빈트(Ostwind)는 동풍(東風)이란 뜻이다. 6호 전차 선정에서 밀려난 업체의 차대에 88밀리미터 대전차포를 탑재한 차종에는 엘레판트(Elefant)라는 별칭을 붙였다. 차중이 65톤에 달해 57톤인 티거1보다 무거웠으니 딱 어울리는 이름이다.

진정으로 재치가 느껴지는 이름을 가진 차량들은 따로 있다. 길이 1.5미터에 중량 400킬로그램 정도인 유선조종 궤도식 자폭차량은 체구에 걸맞지 않게 이름이 골리앗이다. 반대로 역사상 가장 컸던 전차, 차중 188톤에 달했던 초중전차(super heavy tank)의 이름은 마우스(Maus)로 영어의 ‘Mouse’와 같은 뜻이다. 당시 표준 전차 5~6대 중량에 달하는 이 거대 전차에게 생쥐라는 이름을 붙인 데서 유머 감각을 엿볼 수 있다. (이번에 다시 생각해 보니 보다 진가가 엿보이는 명칭이다. 단순히 작은 동물이라는 점을 초월하여, 중전차들을 모두 고양잇과로 만들어 놓고 그보다 훨씬 큰 초중전차는 고양이의 밥인 생쥐로 만들었다!)

※ 자주포는 영어로 ‘self-propelled gun’이고 거기에 대응하는 독일어도 있지만 간단하게는 ‘Geschützwagen’으로 표기한다. 직역하면 ‘포차’가 된다. 판처예거와의 차이는 말 그대로 ‘포를 싣고 다니는 차’라는 것이지만 보다 포괄적이다. 대전차자주포, 자주곡사포 등이 포함된다. 중장갑 차체에 대전차포를 탑재한 엘레판트는 강습포로 규정되어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전차사냥꾼인데, 포탑이 뒤쪽으로 치우친 형태를 보면 자주포 느낌도 든다. 여기 참고한 2차 대전 관련 자료는 피터 챔벌레인과 힐러리 L. 도일이 쓴 <제2차 세계대전의 독일 전차 백과사전>(1978)인데 시대적 여건상 ‘당연히’ 일본어 번역판(1986)을 구입한(1993) 것이다.

그런데 ‘대포’ 전차라는 어이없는 이름은 도대체 뭐냐? 대포폰이나 대포차처럼 훔쳐서 팔아먹은 것도 아니고.

1990년대 들어 일본 서적들을 사서 읽다가 진실을 깨달았다. 그 구축전차의 실제 이름은 ‘야구아르’이고, 두 가지 형식이 있다. 대전 후 서독이 다시 전차를 개발하던 초기에는 습관처럼 구축전차도 개발했지만 곧 대전차미사일의 발달로 헛짓이 되었다. 당시 서독이 개발한 주력전차는 레오파르트(Leopard)였는데 이 또한 고양잇과다. 대전 이후 자유진영의 종주국인 미국은 90밀리미터 주포를 사용했다. 그런데 영국이 비커스사의 105밀리미터를 사용하면서 서독도 받아들여 레오파르트에 탑재했다. 미국도 당시의 주력전차였던 M48의 개량형 M60에는 105밀리미터 주포를 사용했다.

그런데 서독의 야구아르는 90밀리미터 주포로, 구축전차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주력전차보다 공격력에서 떨어진다. 결국 야구아르는 대전차미사일을 장착한 형식으로 거듭나면서 ‘야구아르 로켓’(Jaguar Raketten) 버전이 되었다. 그리고 대전차포를 단 기존의 형식은 ‘야구아르 대포’(Jaguar Kanone)로 불렸다. 그런데 워낙 정보가 부족해서 관련 상식이 빈약했던 당시의 한국에서는 그것을 ‘캐논 탱크’라고 번역한 것이다. 그뿐 아니라 독일의 판터 전차를 ‘팬저 탱크’라고 표기했는데, 전차를 뜻하는 판처(Panzer)와 판터(Panther)를 혼동한 듯하다. 그 정도로 당시 한국은 보편적으로 외국어에 익숙지 못했다.

※ 아무래도 온갖 서구 문물을 일본에서 들여오던 시절이라 거기서 비롯된 착오도 있을 것이다. 판터의 영어식 발음 ‘팬서’를 일본식으로 표기하면 ‘판사’(ぱんさ)가 되는데, 그것을 판처의 영어식 발음 ‘팬저’와 혼동했을 수도 있다.

야구아르의 차체 형태는 2차 대전 당시의 걸작이었던 야크트판터와 흡사하다. 즉 내가 즐겨 디자인하는 장갑차량 형태의 원조이기도 하다.

이렇듯 독일은 전후에도 장갑차량에 고양잇과 이름을 붙이는 전통(!)이 있는데 8륜 장갑차 룩스도 그 중 하나이다. 2차 대전 때는 판터(표범)와 티거(호랑이)가 대형 고양잇과였고, 대전 후에는 레오파르트(표범=아메리카표범=재규어)와 야구아르(재규어)가 대형 고양잇과이다. 70년대 후반에는 보다 커지고 120밀리미터 주포를 탑재한 레오파르트2가 개발되어 각국으로 수출되고 현재까지 운용되고 있다. (참고로 한국의 K1 전차도 이 레오파르트2 계열의 엔진을 탑재하고 있다고 한다.) 2차 대전 당시 6호 전차 경쟁해서 패한 시험 차종 중에도 레오파르트라는 별칭이 있었다.

그런데 왜 ‘뢰베’(Löwe, 사자)라는 이름은 붙이지 않지? 대형 고양잇과는 있는 대로 동원시키느라 호랑이, 표범, 재규어, 푸마, 나아가 레오파르트까지 써먹었으면서 서양에서 가장 유명한 동물을 왜 배제했을까?

아마도 사자를 왕의 문장으로 사용하는 영국을 의식해서 그럴 것이다. 실제로 대전 당시 독일군 전투기들의 상징적인 마크 중에는 ‘사자 영국’을 조롱하는 내용도 있다.

고양이 얘기가 나온 김에 잠시 옆으로 새서 보다 과학적인(크학학!) 얘기를 하자. 대형 고양잇과 동물 중 얼굴이 꽤 이상하게 생긴 녀석이 있는데 바로 치타다. 조금 이상하게 보이는 놈으로는 푸마를 들 수 있다. 아니? 푸마가 어디가 어때서? 덩치는 큰데 생긴 건 (집)고양이 같지 않은가? 몸집에 대한 머리 비율과 형태, 그리고 얼굴(이목구비)까지 그렇다. 호랑이나 표범보다는 고양이를 닮았다. 나는 그저 유라시아 대륙과 동떨어진 북미 출신이라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최근에 고양잇과의 분류를 유심히 살펴보니 다른 대형 동물은 물론 고양이와는 거리가 있는 표범아과(亞科, sub family)에 속하지만 푸마는 고양이아과였다. 역시나! 그럼 그렇지! 그렇다면 치타는? 역시 고양이아과다. 어쩐지, 요즘 온 국민이 강박관념이 생길 정도로 유행하는 표현처럼, “머리가 조막만 하다”는 데서 이미 알아봤어.

고양이는 고양이과-고양이아과-고양이속의 동물이고 치타는 치타속이다. 나머지 대형 ‘고양이’들은 모두 표범아과에 표범속(屬, genus)까지 같고 종만 다르다. 즉 호랑이, 사자, 표범, 재규어는 혈통적으로 매우 가까운 사이고, 이들 모두는 서로 교배해서 잡종을 만들 수 있다. 잘 알려진 라이거(lion + tiger) 외에도 타이곤(tiger + lion), 레오폰(leopard + lion), 재규파드(jaguar + leopard) 등등. 이러한 단어들의 조합에서 앞쪽이 수컷이고 뒤쪽은 암컷이다.

내친 김에 하나 더 짚고 넘어가자. 동식물의 분류 단위는 문-강-목-과-속-종의 6단계가 기본이고 경우에 따라 아(亞, sub), 하(下, infra), 혹은 반대로 상(上, super) 등이 중간 단계로 끼어들기도 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단위를 무시하고 그냥 ‘과’를 갖다 붙인다. 전공과 거리가 멀다 보면 초중고 때 잠깐 배운 건 쉽게 잊어서 그렇다 치고, 심지어 케이블 TV의 외국 자연 다큐멘터리 번역에도 심한 오류가 있다. 예로 ‘양서류과’라는 표현이 그렇다. 그렇다면 양서류의 실질적 지위(?)는 어디?

척삭동물문-(척추동물아문-사지상강-)양서강이다. 같은 단위에 파충강, 조강, 포유강이 포함된다. 그런데 ‘과’라니? 설마 대학교에 양서류만 전공하는 척삭동물학부(척추동물아학부, 사지상학과) 양서류과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겠지? 아니면 척삭동물대학교-척추동물대-사지학부-양서류과인가?

너무 멀리 갔다! 다시 제자리!

2010년 7월에 디자인한 오리지널 지크프리트는 이러한 독일 구축전차 영향권에 있으면서도 차체 앞부분에 굴곡이 있어 얼마쯤은 현대 유럽의 소형 장갑차량 느낌도 든다. 그리 개성적이지 못한 셈이다. 그러기에 2013년 들어 모처럼 디자인에 다시 손을 대면서 지크프리트부터 다시 그리기로 했다.


 새로운 지크프리트  


3년 만에 다시 차량을 디자인하자니 감각은 남아 있지만 능력이 떨어졌다. 아무래도 한동안 전투차량은 전혀 들여다보지 않았으니까 어쩔 수 없다.

어쨌든 노브레인은 새로 추가한 인물이지만 오히려 작품 전체를 이끌어 가는 중핵이 되었다. 그만큼 차량도 독창적으로 디자인해야 했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는 사이 취향 혹은 성향에 약간 변화가 생겼다. 무조건 위압적이고 강력한 모습을 보이기보다는 색다르게 하고 싶었다. 3년 전 新산시 말기에 SF 냄새가 풀풀 풍기는 신개념 트래클들을 디자인했던 생각이 나서 그런 미래적인 분위기를 지향하기로 했다.

이래저래 뇌를 굴리다가 양쪽 앞바퀴가 2개 1조로 되어 있는 형태를 구상했다. 드디어 SF 형태로 가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아마도 비서인간(飛鼠人間, 날아다니는 쥐 인간; 즉 박쥐인간. 크학학!)이 몰고 다니는 배트카가 어렴풋이 떠올랐던 모양이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이니 특별할 것도 없다.

일단 드로잉 작업을 시작했다. 그런데 점점 더 욕심이 나서 축 양쪽에 앞바퀴가 달린 형식이 아니라 각각 따로 연결된 것을 생각했다. 각각 두 개의 바퀴 사이에 회전축이 있고, 그 동력은 뒤쪽에서 뻗어 나온 암을 통해 전해진다. 앞바퀴가 많아진 만큼 차체 앞부분은 매우 좁아지고 상대적으로 중앙 부분이 매우 넓어 보인다. 거기서 아이디어를 떠올린 것이다. 좁은 앞부분에는 무기 등을 장착하고, 구동 관련 장치들은 뒤쪽으로 뺀다. 매우 독특한 디자인인데 SF 또는 콘셉트 바이크에서 따온 아이디어이다.

바퀴 두 짝 사이에 구동장치가 들어가려면 두 바퀴의 간격은 더욱 커져야 하고, 폭도 많이 차지하므로 그만큼 차체 앞부분은 더 좁아져야 한다. 좋다! 어차피 참신한 디자인을 목표로 한 것이니까.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측면 형태는 영 신통치 못했다. 처음에는 욕구를 가지고 과감한 선의 흐름을 만들었지만 그리 색다르지 못했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차체 앞이 좁고 바퀴가 양옆으로 노출된 것은 버기카 개념이다. 따라서 차체의 기본 흐름도 그렇다. 버기카는 이미 여럿 디자인했으니 거기서 벗어나야 하는데, 바퀴가 굵고 크다는 것은 중량이 많이 나감을 의미한다. 그만큼 크기를 키우려다 보니 영 어정쩡한 모양새가 되었다. 그저 현대 유럽의 군용 차량 느낌에 지나지 않는다.

그날 밤 잠자리에 눕자 머릿속에 또 다른 그림이 그려졌다. 결국 다음날 기존의 디자인을 집어치우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바퀴 등 기본 개념은 같지만 버기카 느낌에서 벗어나도록 오히려 차체를 앞쪽으로 치우치게 했다. 전고후저(前高後低)의 이른바 ‘북미 들소’ 형태이다.

그런데 한참 디자인에 열중하다 보니 구동장치에서 근본적인 문제가 눈에 띄었다. 이것은 궤도차량이 아니다! 또한 도시형 세단도 아니다! 궤도차량은 기동륜 따로, 보기륜 따로 논다. 궤도 위를 구르는 보기륜은 충격을 흡수하는 완충장치에 붙어 있다. 그렇다면 차륜차량은? 바퀴가 구동축과 연결이 된 한편으로 완충장치도 붙어 있다. 세단을 비롯한 일반 승용차라면 앞바퀴는 완충장치만 필요할 뿐 구동축은 신경 쓸 필요 없다. 그러나 전투차량이라면 4륜구동이어야 한다. 양쪽 앞바퀴가 하나의 구동축에 연결된 것이 아니라 바이크의 것처럼 단순히 매달려 있으면서 동력 전달은 어떻게 하지? 미안하지만 바이크는 앞바퀴는 구동하지 않는다! 이런!

이것이 궤도차량과 2륜 차량(바이크) 메커니즘에 익숙한 내가 4륜 차량을 디자인할 때 발생하는 문제이다. 그동안 4륜 차량도 많이 디자인했지만 선의 흐름만 중시했을 뿐 구동장치나 현수장치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차체에 가려서 눈에 보이지도 않으니까.

문득 토션바가 다시금 의식의 전면에 부각되었다. 신개념 구동장치는 그렇다 치고, 일반 4륜구동 차량에는 토션바를 어떻게 장치했을까? 3년 전에 디자인에 관한 연재를 할 때 코란도에 토션바가 달렸다고 잠깐 언급한 바 있다. 나선 스프링이나 겹판스프링을 붙이는 형식은 전통적이지만 토션바는 다소 낯설다. 힘의 작용 방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나선이든 겹판이든 구동축을 지탱해 상하로 움직인다. 그에 비해 토션바는 말 그대로 비틀리는 것이므로 궤도차량에서는 크랭크 형태의 보기암과 연결되고 관절처럼 움직인다. 토션바를 장착한 4륜구동 차량을 직접 살펴본 적이 없어서 어떤 식으로 했는지는 모르겠다.

물론 당시 말했듯이 꼭 관절처럼 움직이는 현수장치 보기암이 아니라도, 전투차량은 차체 위쪽의 각종 해치(뚜껑)에도 토션바를 사용한다. 다만 그 토션바는 경첩 기능까지 하므로 그 자리에 하나의 축으로 고정되어 있을 뿐이다. 차륜차량 현수장치의 토션바는 바퀴를 오르내리게 해야 하므로 개념이 다르다. 또한 그 바퀴는 구동축에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하물며 구동축이 뒤쪽에서 뻗어 나오고 완충 기능까지 갖추었다는 것은 무리가 있다.

결국 그 독특한 구동방식은 포기했고, 덩달아 2개 1조라는 개념까지 버렸다. 그리 참신한 것이 남지 않은 셈이다. 대신 처음의 차체 형태를 더욱 부각시켜 독특한 선의 흐름을 만들었다. 일부러 펜더도 붙이지 않고 차체 앞부분이 뒤에 비해 좁은 형태를 유지했다. 즉 ‘층’을 두는 것이다. 차체 상판 뒷부분은 긴 경사를 그린 것으로 했다.

그런데 그 경사 때문에 내부 공간이 매우 좁아진다. 과연 세 사람이 탈 수 있을까? 운전자와 지휘관 둘만 타게 할까? 총사령관 차에 단 둘만 탄다는 것은 다소 문제가 있다. 트래클처럼 강습 전투차량도 아니므로 운전자와 전투병 겸 전령(심부름꾼)을 따로 둘 필요도 있다. 결국 지휘관의 위치를 좀 더 뒤로 이동시켜야 했는데, 해치를 뒤로 빼자 오히려 선의 흐름이 더 나아졌다. 그러나 앞바퀴의 독특한 구동방식을 포기한 까닭에 전체적으로 그리 참신하지는 못했다. 또 하나, 뒤쪽의 긴 경사 때문에 가뜩이나 내부 공간이 좁은데 지휘관을 더 뒤로 빼면 엔진은 어디로 가나? (크학학!) 장갑차량에 경차 엔진을 붙이나? 그래서 작지만 출력이 높은 터빈 엔진을 장착할까 생각도 했지만 보수유지에 무리가 있다. 정부군도 아니고, 그렇다고 매우 세력이 크고 비교적 체계적인 반군도 아닌, 급조된 제3세력에 그런 것까지 관리할 인력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선의 흐름에 변화도 줄 겸 엔진 부분이 위로 불룩 튀어나오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차체 폭 전체를 잡아먹으면 또 평범한 형태가 되므로 차체보다는 좁게 해서 ‘층’을 부여했다. 또한 애초에는 차체 선이 비교적 단순했지만 독특한 앞바퀴 구조를 버린 대신 윤곽선에 변화를 주기 위해 위쪽에 약간의 굴곡을 만들었다.

이 글을 쓰다 보니 뒤늦게 독창적인 2개 1조 바퀴와 뒤쪽으로 연결된 구동축의 해결책이 떠올랐다. 가장 쉬운 방법은 체인을 사용하는 것이다. 체인 구동의 축은 완충장치의 축과 같으니 무리가 없다. 그런데 바이크도 아니고 일반 승용차도 아닌 장갑차량에 체인을 사용한다? 이건 무리가 있다. 결국은 샤프트를 사용해야 하는데 그 샤프트를 토션바나 다른 스프링이 지지해 주면 될 듯하다. 어차피 일반 차량도 그러고 있으니까. 다만 구동축의 방향이 다를 뿐. 그렇다면 너무 성급하게 그런 디자인을 포기한 건가? 된장! (크학학!)

이래저래 생각하다 보니 차륜차량 완충장치로 토션바를 사용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오히려 더 단순하다. 그것을 즉시 그림으로 묘사했다.



위쪽 그림은 토션바의 힘 작용 방향과 바퀴의 구동축이 동일 선상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림을 그리고 나서 생각하니 꼭 그럴 필요가 없었다. 직각 방향으로 힘이 작용해도 문제는 없다. 물질적으로는 오히려 구동축과 같은 선상에 놓이게 된다. 아래쪽 그림이 그것이다.


샤프트로 동력을 전달할 경우 토션바와 축은 같지만 힘 작용 방향은 직각이 된다. 그러나 두 번째 도안에서 보듯 아무런 문제가 없다. 휴~! 어렵다. 차륜차량에는 그리 익숙지 못하다 보니(크학학!) 이렇듯 애를 먹는다. 예전에 차륜차량 모형도 여럿 만들었지만 궤도차량보다는 훨씬 적었고 일단 현수장치가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 까닭에 쉽게 잊어버린다.

※ 완충장치 관련한 여담

예전에 연재했던 궤도차량의 메커니즘을 읽다 보니 깜빡 잊고 빼먹은 것이 있었다. 이리저리 가지를 치다 보니 잠깐 짚고 넘어가려던 것을 까먹은 것이다.

완충장치에 토션바 대신 유압을 사용하여 차체의 앞뒤나 좌우를 자유롭게 오르내리는 현대의 전차에 대해 언급했었다. 그러면서 유압은 원리가 다소 복잡하고 동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역시 고형의 완충장치로서는 토션바가 가장 단순하고 공간도 적게 차지한다고 말했다. 내가 몰던 장갑차는 물론 완충장치가 토션바였지만 후문을 오르내리는 데는 유압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얘기도 했다.

그런데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예전의 장갑차 중에도 현수장치에 유압을 사용하는 것이 있었다. 내부구조도는 본 적이 있다. 그것은 일반적인 전투차량이 아닌 (미사일 같은 화력?) 지원차량이었는데 토션바가 들어갈 자리에 유압 파이프가 줄줄이 늘어서 있고 고무호스들이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동료들은 그때 잠깐 보고 까맣게 잊었겠지만 마니아인 나는 유심히 살폈다. 또한 이미 산업용 유압 기기도 본 적이 있어서 보다 익숙했다. 그때 내가 떠올린 생각은 이것이었다.

‘정비가 용이하지 않겠구나.’

겨우 후문 하나를 오르내리는 장치도 정비에 애를 먹는데 바닥판 밑에 깔린 그 많은 호스를 어찌 관리할지. 낡아서 새기라도 하면 정말 끔찍하다. 수리에 앞서 일단 기름(선회유)을 다 빼내야 하고, 호스를 바꿔 끼우고, 다시 기름을 채우고, 누출된 기름을 깨끗이 닦아내야 하는데 당시 보급 형편에서는 세척도 지극히 힘든 일이었다. 바닥판 아래 별로 기름기가 없는 차량도 구석구석 닦으려면 애를 먹는데 하물며 오일이 누출되었다면 곱절로 고생할 것이다. 또한 그 많은 호스를 건드리지 않도록 무척 신경 써야 할 것이고.

물론 요즘처럼 부속품 공급이 원활하고 정비 시설도 잘 되어 있는 시대라면 큰 문제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세상사에는 언제나 예외라는 게 있다. 또한 기계가 복잡해지는 만큼 일거리도 늘어난다.

처음 신생산시대가 시작될 때만 해도 차량의 정면도는 그리지 않았다. 그러다 나중에 정면도를 그리다 보니 종종 문제가 발견되었는데 측면도와 잘 어울리지 않거나 혹은 측면도에 맞춰 그리면 볼품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후로는 애초 설계를 할 때 측면도와 정면도를 함께 그려 나갔다. 그렇게 하다 보면 측면도 역시 더 사실적이고 개성도 부각된다.

지크프리트는 2개 1조인 앞바퀴와 특이한 구동방식을 버리는 바람에 정면도는 더욱 볼 것이 없게 되었다. 결국 차체 측면 선의 흐름에 초점을 맞추어야 했다. 처음에는 위쪽 부분은 경사지고 아래쪽은 수직인 ‘전형적인’ 형태였다. 어차피 바퀴가 독창적 개성을 부여할 테니까. 그러나 그걸 버리자 보다 선의 흐름에 치중했고 처음에는 각이 1개뿐이었던 측면 흐름이 3개의 각으로 바뀌었다. 보다 듬직한 느낌을 주면서 개성도 살리기 위함이다. 그 바람에 측면도와 정면도의 느낌이 너무 달랐지만 계속 서로를 보완해서 비슷하게 만들었다.

윤곽선 흐름에 변화를 주고 보다 전투적으로 보이려면 듬직한 펜더를 달면 된다. 그러나 지크프리트는 기존의 장갑차량들과 차별화를 꾀한 까닭에 그렇지도 못했다. 따라서 차체 자체의 선 흐름에 좀 더 신경 쓴 것이다.

핵심을 포기한 대신 차체에 색다른 무기를 달거나 또는 반응장갑 따위로 변화를 주려고 했다. 그러나 그것도 너무 많이 써먹어서 오히려 참신하지 못하다. 그래서 ‘모든 것을 초월한’ 노브레인의 개성에 맞게 되도록 잡다한 부착물을 붙이지 않았다. 대신 조그만 고리 따위로 그 밋밋한 벽면에 변화를 주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저런 고리 따위는 필요도 없다. 온갖 장비를 잔뜩 싣고 다니는 전투차량도 아니고 그저 지휘차량일 뿐이니까.

※ 잠깐! 반응장갑이 뭥미?

반응장갑 얘기가 나온 김에 잠시 들먹이자. 전에는 그저 디자인에 대한 얘기만 하느라 일반인들이 잘 알지도 못하는 이 장갑을 언급하면서도 설명 하나 하지 않았다.

군사 분야 문외한이라도 장갑차량이 두꺼운 철판으로 둘러싸여 있다는 정도는 안다. 다만 그 이상은 모를 것이다. 이 장갑판은 애초 물리 에너지 무기로부터 차량을 보호하기 위해 발달한 것이다. 즉 총포의 공격을 막아내는 것인데, 정확하게 말하면 관통을 못하게 하는 것이다. 총탄이라면 으레 그러려니 하겠지만 대체로 포탄이라면 그저 폭발하는 쪽으로 생각한다. 군대에 다녀온 이들은 그렇지 않겠지만. 폭발하는 포탄은 유탄(榴彈)이라 부르는데 현대에는 고폭탄(高爆彈, high explosive)이라는 명칭이 대신 쓰인다. 하지만 폭발력이 강하지 않다면 高폭탄은 아니니 그냥 유탄이라고 불러야 한다.

그에 비해 철갑탄(鐵甲彈? 徹甲彈! armor-piercing shell)은 내부에 화약이 없고 탄체가 장갑판을 뚫는 것이 목적이다. (함포 따위에서는 장갑을 뚫고 들어가 폭발하는 것도 있다.) 워드프로세서에서 ‘고폭탄’을 치고 한자로 바꾸자 엉뚱한 한자어가 나타났다. 사실 나도 어렸을 때는 저것인 줄 알았다. 그러나 ‘쇠 鐵’이 아닌 ‘뚫을 徹’이 맞다. 철판을 뚫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는 속도다. 그래서 대전차포는 발사 속도가 매우 빨라 음속의 몇 배에 이른다. 그래서 물리 에너지 탄이다.

그런데 2차 대전 때부터는 화학 에너지 탄이 흔히 쓰이게 되었는데, 그 중 하나가 대전차로켓이다. 이 신무기는 말 그대로 로켓 추진으로 날아가고, 물체에 맞으면 폭발하면서 ‘성형작약’ 원리에 의해 그 에너지를 앞쪽으로 뿜어낸다. 내부에 든 화약과 녹은 구리가 고열로 철판을 뚫고 들어가는데, 따라서 발사 속도가 그리 빠를 필요도 없어서 병사 휴대용으로도 사용하게 되었다. 그 유명한 미군의 바주카나 독일의 판처파우스트가 그것이다. 독일군에는 판처슈렉이라는 보다 강력한 로켓도 있는데 대다수 사람들은 만화영화에 나오는 녹색 괴물부터 떠올릴 것이다. (크학학!)

이 대전차로켓이 더욱 위협적인 것은, 전차 같은 커다란 차량에서 발사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전차는 쉽게 눈에 띄지만 보병이 숨어서 공격하면 대책이 없다. 현재 이라크 등지에 진출한 미군도 이 때문에 애를 많이 먹었다.

그러나 유행어처럼 ‘꿈의 무기’인 것처럼 보이는 이 화학 에너지 탄에도 한계는 있다. 꼭 대전차로켓이 아니라도, 전차 포탄에도 같은 기능을 하는 것이 있는데 이런 탄들을 대전차고폭탄(high explosive anti tank, HEAT)라고 부른다. 그런데 폭발의 고열로 장갑판을 뚫는 이런 무기는 일단 뭔가를 뚫고 나면 분산되어 버린다는 단점이 있다. 화력이 약한 휴대용 로켓은 더욱 그렇다. 장갑차량의 사이드스커트도 그런 용도로 부착한 것이다. 철갑탄을 방어한다는 것은 어림도 없고, 대전차로켓 따위를 막기 위함이다. 심지어 독일군은 철판이 아닌 석쇠 형태의 철망을 측면에 부착하기도 했다. 거기다 고기 200인분을 구우려고? (크학학!) 아니다. 대전차로켓은 그 그물에만 부딪쳐도 폭발하면서 에너지를 잃기 때문이다.

1970년대 중동전에서는 더욱 새롭고 강력한 무기가 사용되었다. 이집트군이 운용한 소련제 대전차미사일이 그것이다. 이제는 로켓이 아니라 미사일이다. 로켓은 연료와 산화제를 태워 날아가는 모든 발사체를 말하는 것이고, 미사일은 ‘유도’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다. 그 유도 방식에는 와이어가 사용되었다. 즉 미사일이 연처럼 실타래를 풀며 날아가고, 표적에 명중할 때까지 사수가 조종하는 것이다. 따라서 초기의 제1세대 대전차미사일은 발사 후 적에게 들킬 경우 총격을 받아 먼저 죽을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그 신무기에 대해 전혀 몰랐던 이스라엘 전차부대는 적병이 별로 숨을 곳도 없는 사막에서도 미사일 공격에 대처하지 못했고 큰 손실을 입었다. 보병 몇 명 때문에 많은 전차를 잃은 것이다.

이후 대전차미사일은 점점 발전하고 보다 강력해졌다. 이제는 ‘석쇠’나 얇은 바깥 철판 정도로 방어할 수 있는 시대가 지났다. 그럼 뭘로 막지? 그 해결책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반응장갑(explosive reactive armor, ERA)이다. 직역하면 폭발반응장갑인데 흔히 반응장갑이라 부른다. 그런데 폭발과 장갑, 이 두 단어가 어울리나? 어울린다. 단어 자체뿐 아니라 기능면에서도. 말 그대로 폭발을 이용해 방어하는 장갑이다.

인터넷은 고사하고 케이블TV도 없어 정보가 지극히 빈약하고 딱히 취미용 자료도 구할 수 없던 예전에는 주로 조립식 모형이나 일본 서적을 통해 반응장갑의 존재가 알려졌다. 맨 처음 채용한 것은 이스라엘군이었고, 이어 다른 군사 강국들도 사용했지만 벽돌처럼 더덕더덕 들러붙은 소련 전차의 반응장갑이야말로 한눈에 알아볼 수 있고 또한 가장 관심을 끌었다.

이스라엘군이 맨 먼저 채용했으니 당연히 이스라엘의 발명품인 줄 알았고 마니아들은 “역시나, 이스라엘!”이라고 찬탄했다. 꼭 먼저 채용해서 그렇게 생각한 것은 아니다. 많은 적국에 둘러싸인 그 조그만 나라는 수십 년 동안 버텨오면서 온갖 전투 경험을 바탕으로 다양한 신 개념 전술을 선보였다. 그런데 그 투박하면서 원시적인(?) 반응장갑이 뛰어난 방어 효과를 가지고 있으니 딱 그 나라다운 발상으로 본 것이다. 그 신기술을 발명한 존재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다. 운이 좋아서 거기 대해 다룬 책을 만나게 된다는 보장도 없으니까.

근년에 다큐 채널인 디스커버리의 군사 무기 특집 덕분에 진실을 알았다. 그 발명가는 엉뚱하게도(?) 유대인과 철천지원수였던 독일의 무기 개발자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유대인에게 2천 년 만에 영토를 준 일등 공신도 독일이다. 히틀러의 대학살을 계기로 유대인은 대전이 끝난 뒤 국제사회의 지원 아래 유럽을 떠나 나라를 세웠으니까.) 중동전쟁에서 파괴되어 사막에 널려 있는 아랍군 전차들(소련제)은 좋은 시험 대상이다. 한국에서도 폐기된 구식 “자사 기존 제품!”(크학학!) 전차들을 전차 포 사격 훈련의 표적으로 사용했다.

독일의 무기 개발자로서는 사막에 널린 고철 전차들처럼 현실감 넘치는 시험 대상이 없었을 것이다. 거기에 대전차 무기를 사용했는데 한 번은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공격을 당한 전차가 멀쩡했던 것이다. 그 이유를 알아보니 전차 내부에 있던 포탄이 폭발을 일으키면서 공격을 상쇄한 것이다. 거기서 폭발반응장갑의 아이디어는 탄생한다. 반응장갑은 조그만 상자에 든 폭약이 외부로부터 공격을 받으면 폭발하면서 에너지를 상쇄시키고 차체를 보호하는 것이다.

참고로 요즘은 아예 능동방어 시스템까지 등장했다. 적군의 미사일이 날아오면 그것을 감지하고 요격 미사일을 발사해 폭발시켜 버리는 것이다.

물론 요격 미사일 개념은 이미 반세기 전부터 있었고 사용되어 왔다. 전술 미사일, 전략 미사일(대륙간탄도탄)에 대응하는 요격 체계가 있었는데 이를 ABM이라 부른다. 그러나 근거리에서 날아오는 적의 소형 미사일을 짧은 시간에 감지하고 바로 요격하는 것은 신개념이다.

2차 대전 당시의 독일군과 소련군에 대해서 흔히들 이런 평을 한다.

“독일군은 게르만식 합리주의, 소련군은 슬라브식 합리주의를 가지고 있었다.”

독일군은 무기를 고도로 정교하고 위력적으로 만들어 적은 수로 많은 적을 격파한다. 예로 동부전선의 한 전투에서는 전차 여섯 대가 40대가 넘는 소련 전차를 파괴한 적도 있으니 비록 값은 비싸지만 투자 대비 소득이 매우 컸다. 물론 전술도 중요하고 병사들 개개인의 숙달도 필요하다. 이러니 독일 전차는 이른바 ‘명품 백’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쉬지 않고 생산해서 끝없이 쏟아 붓는 소련군의 방식은 결국 상대를 질리게 한다. 값싸고, 생산성 높고, 누구나 쉽게 운용할 수 있는 무기 체계, 이게 바로 슬라브식 합리주의이다. 결국 끝없이 쏟아내는 T-34 전차에 독일군은 진저리를 쳤다. 특히 인명을 경시하는 소련 놈들은 전차 승무원의 편의성 따위는 철저하게 무시했다. 편의성은 무슨 얼어 죽을, 인간이 아닌 부품에 불과하니 소모하면 그것으로 그만이다. 굳이 복잡하고 어려운 훈련도 필요 없다. 병사들 역시 대량생산 체제의 일부였다.

대전 이후에도 그 개념은 이어져 최고의 걸작 무기가 탄생했으니 그게 바로 AK-47 보병총(소총)이다. 연발 사격이 가능하면서 육박전도 할 수 있고 튼튼한 데다 단순해서 잘 고장도 나지 않는다. 거기다 생산과 분해조립도 간단하니 금상첨화이다. 결국 이 소총은 공산권뿐 아니라 전 세계의 반군 세력이나 무장 집단들도 사용하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단, 그 베스트셀러에 끼지 않은 사제 물품도 많다. 제조 공법이 간단해서 후진국의 대장간에서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걸 상대해야 하는 미군의 M16은 명품 백이 되었다. 야전에서 보수유지가 쉽지 않다는 점도 명품 백과 비슷한 처지다.

AK-47은 온갖 국가에서 자체 생산했는데 당연히 중공이나 북한도 거기 해당한다. 과거 시대에 한국군이 미국제 M16을 사용하던 당시, 병사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늘 AK와 비교했다.

“사거리가 더 길고, 명중률이 높고, 육박전에서는 총이 더 길어서 적을 제압할 수 있다.”

그런데 M16은 사실 육박전에 적합하지 않다. 윗덮개라 불리는 부분이 두 개의 플라스틱 부품으로 조합되어 있는데, 웬만한 충격을 받아도 분리되어 버린다. 그 속에는 바로 총열이 들어 있다. 그 따끈따끈하게(크학학!) 달궈진 총열을 붙잡고 육박전을 벌인다고? 설사 달궈지지 않다 해도 미끈한 파이프에 불과하므로 육박전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연발 사격에도 그리 적합하지 않다. 총구가 위로 올라가기 때문이다. M16은 한국군의 소총 역사에 있어 가장 단명한 소총이 되었다.

미국이나 독일 등 서방측 군사 강국은 반응장갑을 사용하면서도 차체를 매끈하게 만들었다. 그에 비해 소련군―이제는 러시아군― 전차들은 그냥 더덕더덕 붙이고 다닌다. 마치 무너진 가옥을 뒤집어쓰고 다니는 것에 비교해야 할까? 그런데 그런 모습이 매력적이다. 반응장갑 채용 초기에만 해도 포탑과 차체 일부에만 붙였는데 갈수록 정도가 심해졌다. 미군의 대전차미사일이 다시 한 단계 진화하여 표적에 가까워지면 위로 솟았다가 상부를 공격하기 때문이다. 서방측 전차에 비하면 작은 차체에 온갖 장비를 탑재해서 전차가 아니라 움직이는 건물, 혹은 육상 군함처럼 보이는 차량도 있다. 인터넷에서 T-72, T-80, T-90 등을 검색해 보면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페인팅 작업

지크프리트 정면도

노란색을 칠한 부분은 기관총 덮개인데 너무 단순해서 그냥 눈알을 그린 것처럼 보였다. 따라서 질감과 입체감을 살리느라 애썼다. 지금 다시 보니 꼭 저렇게 단순한 형태 한 쌍으로 할 게 아니라 서로 연결된 것으로 했으면 보다 독특하고 멋진 구조가 되었을 듯하다. 그런데 드로잉을 할 때만 해도 몇 년 만에 작업하자니 뇌가 따라주지 않아서 되도록 단순하게 설계하려 노력했다. 뒤늦게 아쉬움을 느낀다.

입체감 작업을 거의 마무리할 즈음, 그러한 단순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결국 주변에 눈매 형태를 추가로 그렸다. 물론 부속물이 아닌 ‘그림’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도록 질감 작업에서 퇴색, 마모시켜 노란 부분과 차별을 두었다.


지크프리트의 페인팅 작업에 있어, 기술적인 면에 대해서는 3년 전에 연재한 드로잉&페인팅 과정을 그대로 따랐으므로 딱히 설명할 것이 없다.

다만 이 차량은 굴곡이 좀 많은 편이어서 시점 방향의 굴곡을 살리기가 쉽지 않았다. 차체 앞부분과 그것을 감싸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뒷부분의 경사각 차이 때문에 더욱 그랬다. 그래서 그 원근감을 살리기 위해 더 애썼고, 기존의 방식을 약간 변형, 응용하기도 했다.

차체 정면의 세 부분이 그렇다. 기관총 주변에 눈알을 그린 경사면 부분, 그 주변을 둘러싼 ‘DnA’ 부분, 그리고 맨 위의 ‘AnD’ 부분에 그 기법을 썼는데 특히 눈알과 ‘AnD’ 부분의 경사가 커서 좀 더 강조했다. 경험이 쌓일수록 점점 진화해서 현재는 제3세대(?)에 이르렀다.

* 관찰자 시점에서 왼쪽 위에 조명이 있다고 했을 때,

제1세대: 왼쪽이나 위로 경사진 부분에 경사각이 클수록 밝게 한다. 이 방법은 원근법의 이치에 의해 변이 큰 부분이 가깝게 보인다는 한계가 있다. 차량의 경우 실제로 변이 큰 부분이 가까운 편이지만 그저 직사각형으로 보일 경우에는 아예 원근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제2세대: 관찰자 시점에서 볼 때 저편으로 경사각이 큰 경우는 ‘흐리게’ 기법을 써서 먼 쪽과 가까운 쪽의 명도에 차이를 둔다. 흰색을 사용하므로 가까운 쪽은 진하고(밝고) 먼 쪽은 흐리게 한다. 이렇게 하면 어느 정도 원근감이 느껴진다.

제3세대: 조명이 왼쪽으로 기울어 있다는 점을 감안하여, 왼쪽 위에서 오른쪽 아래로 사선을 이룬 도형을 그리고 ‘흐리게’ 기법을 쓴다. 단, 직선으로 그리지 않고 ‘올가미’ 도구를 써서 감을 살려 적절하게 불규칙한 선을 그린다.

이렇게 이번에는 3단계 기법을 썼더니 좀 더 원근감이 나아졌다.

이번 페인팅 작업에서 가장 난감했던 것은 정면도의 바퀴였다. 전에는 바퀴의 입체감이나 사실감에 그리 연연하지 않았고, 복합전투차량 ‘개마’ 디자인 이후 입체감, 원근감에 훨씬 치중하게 되었지만 그때부터 디자인한 것은 거의 궤도차량이었다. 그러다 보니 그 까다로운 궤도 정면도 드로잉은 그만큼 발전하고 익숙해졌지만 상대적으로 쉽다고 여겼던 차바퀴 정면도가 오히려 생소했다. 제대로 페인팅 작업을 한 일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그 이전 시기에 꽤 성의를 들였던 ‘코널’도 바퀴 아래쪽 절반만 작업한 상태였는데, 위쪽은 펜더가 가리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 그렸던 차륜식 장갑차량 대부분이 그런 식이었다.

지크프리트는 작업의 용이성을 위해 ‘코널’의 바퀴를 그대로 채용했고 측면도는 입체감 표현을 그대로 복사해 붙였지만 정면도는 아래쪽 반쪽뿐이다. 그래서 나머지 위쪽 절반만 그리려다가 아무래도 차이가 드러날 것 같아서 모두 다시 그렸다. 그런데 막상 작업해 보니 그리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궤도차량인 지클린데 측면도의 바퀴 몇 개에 명암 작업을 하는 것이 더 많은 시간을 잡아먹었다.

전조등은 ‘개마’의 전조등을 복사해 축소해서 붙였다. 다만 개마의 것은 2개인데 지크프리트는 4개이므로 두 개는 회전 각도를 주어 변형시켰다. 굴곡진 거울 반사면에 비친 명암은 저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그 단순한 전조등을 굳이 복사해 쓰는 데는 이유가 있다. 거기에 어른거리며 나타나는 형상은 ‘도형 작업’이 아니라 손으로 일일이 그려야 하기 때문이다. 필기구로 작업한다면 예전에 워낙 많이 전조등을 그려 본 까닭에 별 것도 아니지만 마우스로 그 작업을 하기는 쉽지 않다. 어찌어째 해 놓고 보면 사실감이 떨어져서 다시 그려야 한다. 순수한 미술적 감각이 아니라 ‘기능’ 작업으로 그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꽤 많은 시간을 잡아먹는 까닭에 차라리 복사해서 썼다.

이미 지난 일이지만, 전조등의 변천도 잠시 주목할 만하다. 나는 컬러로 그림을 그릴 때는 전조등의 바탕은 희게, 반사된 무늬는 하늘색이나 파란색으로 그렸다. 유화 따위로 정교하거나 사실적인 그림을 그려 본 일이 없고 그저 만화의 연장선에 있는 보다 단순한 색감으로 표현하던 습관 때문이다. 예로 간단한 설경을 그릴 때 눈을 묘사하려면 여기저기 하늘색으로 적당한 곡선 따위를 그려 주면 된다. 플래시 애니메이션 작업 때도 마찬가지였다.

군대 시절부터는 색감이 단순한 12색 사인펜이나 12색 연필을 사용해 그림을 그렸던 것도 하나의 이유이다. 전역 후에는 내가 좋아하는 바이크 사진을 보고 비교적 정교하게 그린 적도 있는데 역시 사인펜을 사용했다. 거기서 알루미늄은 하늘색을 사용하고, 스테인리스는 파란색으로 묘사하고, 전조등은 이 두 색을 조화시킨다.

그 습관 때문에 이 디지털 시대의 차량 디자인에서도 그런 색상으로 작업했는데, ‘개마’를 그리기 위해 이런저런 차량 사진을 참조하다 보니 전조등은 거의 무채색에 가까웠다. 그때부터 전조등을 그런 색으로 그렸는데 훨씬 사실적인 느낌이 났다.

이 글을 쓰다가 확인해 보니 이 카테고리에서 가장 집중적으로 다루었던 트래클 시리즈에는 근본적인 문제가 하나 있다! 하나같이 전조등이 없는 것이다! 왜 그 가장 기본적인 걸 빼먹었지? 조종수가 야시경을 쓴 건가? (크학학!) 아니면 열화상 장비?

잠시 마크에 대해 설명하자면, ‘AnD’와 ‘DnA’는 ‘천사와 악마’라는 뜻이다. 정부군은 정체불명의 반군 지도자를 악마에 비교한다. 노브레인도 정부군 조종사 시절에는 그렇게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새로운 시각에서 보니 누가 천사이고 누가 악마인지 의구심이 들었는데, 수십 년째 독재하는 국가 지도자가 요새 같은 종합청사 깊은 곳에 숨어 얼굴을 내비치지 않기 때문이다. 전에는 군인으로서 맹목적 충성을 했지만 사고에 변화가 생겼고, 따라서 ‘천사와 악마’를 뒤집어 ‘악마와 천사’를 함께 표기한 것이다. 노브레인의 사명은 이 두 세력 혹은 양측 지도자를 어떻게 ‘잘’ 처리하는가 하는 것이다.

잠깐 여담, 인류 역사상 가장 유명한 라이벌이며 가장 추악한 학살자로 꼽히는 두 인물은 2차 대전 당시의 ‘인종 말살자’ 히틀러와 ‘개백정’ 스탈린이다. 오래 전에 읽었던 서양의 유머에는 그에 관한 것이 있다.

A: 파시스트와 공산당이 싸우면 어느 편에서 싸울래?

B: 물론 공산당이지.

A: 왜?

B: 파시스트에게 잡히면 살아날 가망이 있지만 공산당에게 잡히면 거의 불가능하거든.

히틀러는 특히 슬라브족을 천시하여 포로를 남기지 말고 모두 죽이라고 명했다. 1차 대전 직후 극도의 혼란 속에 정치 전선에 뛰어들면서 당시 가장 날뛰던 공산주의 세력과 늘 무력 충돌을 일으켰던 것도 또 하나의 이유일 것이다. 소련이 공산주의의 종주국이니 당연히 슬라브족은 ‘웬수’다. “고귀한 아리안주의”를 부르짖던 히틀러의 측근 세력도 주로 깡패 같은 자들이었다. 고귀한 이상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조폭과 손을 잡아도 된다. 목적이 그 어떤 수단도 정당화시키는 것인데, 대한민국의 정치사도 그리 다르지 않다.

이승만 독재 때는 정치깡패들이 야당 인사들에게 각목을 휘둘렀고, 이후 많이 정화되기는 했지만 방법만 약간 다를 뿐 수십 년 동안 지속되었다. 미국도 매카시즘 열풍이 불던 1950년대에는 정부의 의도에 어긋나는 이들(희극배우 찰리 채플린 포함)을 빨갱이로 내몰았고, 동족상잔의 전쟁까지 치른 한국은 그 이후로도 한동안 그랬다. 지금도 극단적인 ‘자칭’ 우파들은 “자기 입맛에 맞지 않는” 대상은 무조건 빨갱이에 연결시키기도 한다.

※ 1차 대전 직후 독일의 상황을 보면 광복 직후의 한국이 그대로 보인다. 매카시즘 시대의 미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외부의 위협을 핑계로 자국민을 탄압하는 방식인데, 한국에서는 훨씬 오랜 세월 이어져 ‘관행’이 되었고 불감증으로 이어졌다. 그러다 보면 또 거기 대한 반발로 빗나가는 이들이 생긴다. 이래서 늘 뇌거울을 작동시켜야 하는 것이다.

어쨌든 1차 대전에서의 패배로 국토가 잿더미가 된 가운데 엄청난 국제적 채무까지 지고 있는 당시의 상황에서 ‘빡 돌아 버린’ 히틀러는 그 극치여서 인종말살 정책까지 들고 나왔다. 그런데 앞에서 말했듯이 “북한 놈들은 싹 죽여 없애야 한다”고 가르쳤던 이 땅의 교육도 다를 게 없다. 이념은 모든 것을 초월해 동족 말살까지 세뇌시킨다. 이 정도면 히틀러가 울고 갈 지경인데, 개백정 스탈린도 동족 학살로 유명했다.

그러나 골수 나치당원이 아닌 일반 독일 병사들은 양심상 포로들을 처형하기가 쉽지 않다. 더욱이 독일은 근대철학과 법이 가장 발달한 나라였다. 그에 비해 소련군에게 잡힌 독일군은 사상 비판까지 받는 등 보다 가혹했는데 대표적인 것이 스탈린그라드에서 잡힌 수십만의 병사들이다. 그들 대다수는 눈벌판에 버려져 얼어 죽고 굶어 죽었다. 아까운 총알을 쓸 필요도 없다.

그러니 히틀러나 스탈린이나 가치관의 차이가 있을 뿐 똑같은 놈들이다. 흔히 쓰는 표현처럼 “그놈이 그놈”이다. 노브레인의 심경도 그와 같은 것이다. 수십 년 동안 베일 속에 숨어 통치하는 독재자나, 민중을 선동해 무력으로 정권을 잡으려는 정체불명의 반군 지도자나, “그놈이 그놈”이다.

이 작품의 전작 <누가 빌어먹을 천사를 쏘았는가?>는 2009년 여름에 약속대로 이곳에 일시적으로 연재하고 일단 폐쇄한 바 있다. 그 작품의 배경은 <AnD>보다 10년쯤 전인데 독재자는 물론 그때도 국가 지도자였다. 전쟁으로 황폐화된 세상에서 각각 속한 계층이 다른 몇몇 주인공이 암투를 벌여 서로를 죽이고 죽는 줄거리이다.

서울 각 지역 빈민촌 대표들은 연합하여 정부에게 경제적 지원을 촉구한다. 그러나 정부의 반응은 미적지근하고, 빈민 대표들은 강경파와 온건파로 갈린다. 강경파 내에서도 의견이 엇갈려 서로를 청부 살해하는 일이 횡행한다. 요지가 뭐지? 뭐든 극단적으로 과격하게 나가는 이들은 결국 서로를, 그리고 모두를 적으로 만든다는 얘기다.

정부 앞잡이인 ‘공식 테러리스트’, 청부 살인자, 인간사냥에 미친 미군 특수부대 저격병, 신분 상승을 꿈꾸는 가난한 벽화 미술가가 주요 등장인물인데 마지막에 살아남는 자는 미술가이다. 그는 사상이고 뭐고 없이 그저 일신의 안위만을 챙기다가 막판에 운 좋게 떡고물, 아니 알짜배기를 챙기고 튄다. 가장 볼품없는 자가 최후의 승자가 된 것이다. 여기서 잠시 다룬 지론에 잘 맞아떨어지는 인물이다.

그 작품은 연재에 앞서 밝혔듯이 <이기적 유전자>를 읽다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런데 <이기적 유전자>에도 나중에 비슷한 얘기가 나온다. 자연 생태계 전반적으로도 마찬가지다. 남들 눈치 때문에 괜히 허세 부리며 설치는 것보다는 그냥 곱게 물러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맹수의 세계에서는 서로 싸우면 패자나 승자나 모두 다치고 자칫 사냥을 못해서 굶어 죽을 수도 있다. 그러기에 되도록 싸우지 않고 물러나는 것이다. 그러니 ‘만물의 영장’을 자처하는 인간들 중에는 그 야수들보다 못한 이들도 많은 셈이다.

이쯤에서 디자인 얘기로 돌아가자!

마크에 쓰인 두 약어 ‘AnD’와 ‘DnA’는 모두 흔히 쓰이는 영어 단어이기도 하다. 굳이 차량에까지 저런 마크를 넣은 것은 서로 대립하던 두 소녀를 상징하기 위함이었다.

측면도에 이어 정면도까지 모두 마치고 나서, 나중에 생각하니 좀 더 상징적인(?) 마크를 부여하기로 했다. 디자인에 몰두하던 2009년 당시부터 저녁에 운동을 하면서 관심을 갖게 된 거미다. 2011년부터는 더욱 관찰에 열중했고 특히 2012년에는 아예 함께 살다시피 했다.

그래서 3년이 지난 오날날 노브레인의 차량에는 거미 마크가 추가되었다. 처음에는 거미를 아주 단순화한 문양을 떠올렸다. 머리가슴 부분을 동그라미로, 배 부분을 좀 더 큰 동그라미로 그리고 다리 여덟 개를 긋는 것이다. 그러나 막상 작업을 시작하자 ‘이왕이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닷거미를 그리기로 했다. 닷거미 평면도는 배 부분의 선 흐름이 장난이 아니다. 다른 거미들과 달라서 매우 절묘한 윤곽선을 갖고 있는데 눈썰미가 있는 이들은 쉽게 느낄 것이다. 또한 머리가슴 부분도 다른 거미들과 차이를 보인다. 주둥이 부분도 특이하고 다리 모양도 그렇다.

되도록 그 형태를 살리려 노력하다 보니 처음 생각했던 것에 비해 열 배 이상 긴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축소를 하자 세부적인 부분은 다 묻혀 버렸다.

3년 만에 디자인과 군사 무기에 대한 글을 썼다. 당시 몇몇 분의 의견 덕분에 새로운 아이디어도 샘솟고 의욕도 증폭되었는데 얼마 후 손을 떼고 또 다른 세상으로 떠난 점이 미안하다. 우주유목민이니 어쩔 수 없다.

어쨌든 이 자리를 빌려 그 마음을 전하고 응원해야겠다. 이레아 님, J H Lee 님, 트릴리언 님, 르혼 님, 그리고 만슈타인 님! 새해에도 모든 일이 잘 풀리시기를!

늘 그렇듯 이번 글도 많은 부분을 뇌억력에 의거해 쓴 것이므로 다소 오류가 있을 수 있다. 워낙 잡다한 내용이 뒤섞여 있어 다시 읽을 때마다 손을 보게 되는데, 그러다 너무 질질 늘어질 것 같아서 이쯤에서 그만하고 올리기로 했다.

오류가 보이면 지적해 주시고, 넓은 뇌 주름으로 오해(!)해 주시라! (크학학!)

by 뇌의가호 | 2013/01/19 15:33 | 메카뇌즘 Mechanoesm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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